선돌을 보고 다시 계곡을 1.2㎞쯤 되돌아 나오니 처음 들어갔던 입구가 나온다. 여기서 바르부르가즤강을 건너서 강을 따라 서쪽으로 5㎞쯤 가니 산 아래 다시 높이가 3m가 넘을 것으로 보이는 큰 선돌(1892m, N49°49'928", E89°07'920")이 하나 서 있다. 선돌에서 350m쯤 남쪽 아래쪽에 꾸르간과 제사 터 유적(1895m, N49°49'751", E89°08'008")이 있는데 제사 터는 8개의 큰 강돌을 땅에 둥글게 박아 넣어 만든 것으로 이미 지금까지 여러 군데서 본 것과 같다. 이 제사 터는 발굴을 했는데 금제품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전체적인 위치를 살펴보니 맨 북쪽에 바위그림이 있는 산이 자리하고 있고 산 아래에는 선돌이, 서쪽에는 꾸르간이 10기 남짓, 남쪽에 제사 터가 있는 배치 구조였다. 상당히 중요한 제사 터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르부르가즤강은 알타이공화국과 몽골·투바공화국의 국경을 이루는 치카쳬바(Chiikhacheva)산맥에서 발원하는데, 특히 알타이공화국, 몽골, 투바공화국의 모두 경계를 이루는 정점에 있는 아스카틴-다바니-캬아르(Askhatiin-Dabani-Khyar, 3094m)라는 아주 긴 이름을 가진 산이 주된 수원이다. 이 강이 조금 전에 봤던 유적이 있는 곳에 와서는 유스띄트강과 평행을 이루면서 두 강물이 넓고 푸른 초원을 형성한다. 바로 이 지역에 여러 가지 고대 유적들이 곳곳에 분포되어 있다. 선돌 있는 곳에서 멀리 바라보니 얼마 안 가서 다시 유적이 보인다. 우리는 바로 그곳으로 이동하였다.
2㎞도 안 가 온 들판에 꾸르간과 선돌이 꽉 차 있다고 할 정도로 많이 분포되어 있는 곳에 다다랐다(선돌 1번 자리 : 1972m, N49°50'321", E89°07'394").
"뚜루-알띄(Turu-Alty)"
꾸바레프 교수가 이곳을 이렇게 불렀다. 내가 상당히 자세한 지도를 가지고 있었는데 나오지 않은 지명이다. 이 유적 바로 앞에 큰 여름목장이 하나 있지만 마을이 없기 때문에 지도에 지명이 나올 리가 없다.
"아, 이곳은 범상한 곳이 아니구나!"
도착하자마자 몸에 느끼는 기운이 다른 곳과 다르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바르부르가즤강 북쪽에 갑자기 솟아오른 산봉우리에는 위엄을 갖춘 바위들이 주변을 압도하듯 내려다보고 있고, 정상에서 흘러내리는 산줄기는 좌청룡 우백호가 되어 흘러내리면서 둥그렇게 3면을 둘러쌓아 그 안이 마치 '닭이 알을 품은' 것 같은 명당 자리를 만들었다.
이 곳 지세는 어제 보았던 쟐긔즈-또베와 같이 자연적인 원형극장을 꼴을 하고 있다. 이 지점은 실제로 음향효과가 좋아 아주 작은 소리도 수백 미터 밖에서 뚜렷이 들린다고 한다. 먼 옛 사람들은 이러한 지형이 바람을 막아주고 독특한 음향효과를 내기 때문에 모든 소리가 잘 들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쟐긔즈-또배와 마찬가지로 이곳도 성스러운 의식을 행할 장소로서 아주 알맞은 곳이다. 이런 곳을 택해 제사와 축제를 벌였던 선인들의 지혜가 새삼스럽게 돋보여 저절로 머리가 끄덕인다. 이곳은 1992~93년에 꾸바레프 교수가 미국과 공동으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수 천 년 간 잊혔던 고대 유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불과 10년밖에 되지 않았으니 우리가 이곳을 찾는 것도 상당히 이른 시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조사에 들어가고 싶지만 시간은 이미 오후 2시가 되어 민생고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였다. 우리는 먼저 낮밥부터 해 먹기로 했다. 이리나와 꾸바레프 교수가 낮밥을 준비하는 동안 한국 팀은 참지 못하고 주변 조사에 나섰다. 주변에 수없이 솟아 있는 선돌을 바라보며 도저히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선 원철이와 화동이, 두 고고학도가 들판 여기저기에 서 있는 선돌들을 하나하나 조사하면서 GPS로 위치를 측정해서 기록하였다.
이 책에서는 약간 부담이 될 정도로 자세한 것이지만 앞으로 이곳을 찾을 전문가들을 위해 선돌들의 분포와 상태를 정확하게 기록해 두고자 한다. 전문가가 아니라 하더라도 선돌들이 도대체 어떻게 서 있으며 어떤 모양새를 가지고 있는지 모두가 궁금할 것이기 때문에 현지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선돌은 모두 13군데서 발견되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상태 그대로 본다면 1~4개로 이루어졌으며, 높이는 50~200㎝까지 아주 다양하다. 절반 정도가 둘레에 널돌로 네모난 울타리를 만들었는데 선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제사 터처럼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는 자세하게 모르겠다. 선돌은 대부분 북 → 남, 북서 → 남동, 북동 → 남서 방향을 향하고 있는데 그 동안 있었을 약간의 변동을 감안한다면 거의가 산꼭대기에서 넓은 초원을 향해 바라보고 있는 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분포된 지역도 높이가 1959~1984m로 25m 높이의 차이가 나는데, 가장 높은 6번 선돌은 산이 있는 북쪽에 있는 테라스 위에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분포 상황은 어떤 규칙성이 발견되지 않아 마치 자연이 이곳을 찾는 이에게 주는 수수께끼 같은 생각이 든다. 넓은 초원 한 구석에 25개나 되는 선돌들이 한 군데 모여 있는 것은 그 자체가 감동이고, 매일 강행군하여 생긴 피로를 한 순간에 녹여주는 빛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꾸바레프 교수는 여기 서 있는 선돌들을 '하늘의 기둥'이라고 했다. 네모난 울타리와 제사 터가 땅위에서 영혼을 위해 음식을 바치는 성스러운 곳이라면 바로 영혼이 있는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기둥은 하늘을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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