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타이인들은 인류학 관점에서 보면 황인종(몽골형)으로 키가 크지 않고 마른 체격에 조금 사팔뜨기 눈을 갖고 있다. 겸손하고 손님을 좋아하고 재능 있는 이야기꾼이다. 남자들은 철학에 타고난 재능이 있고 여자들은 뛰어난 살림꾼이다. 알타이인들은 밝고 선명한 직물과 화려한 재료를 좋아하고 선홍색과 검붉은색, 보라색을 좋아하며, 의상과 주택을 꾸미는 데 비로도와 아틀라스 직물, 금박 같은 화려한 재료를 사용한다.
전통적인 알타이의 양털 양탄자(씨르마끼)는 펠트천의 검은색과 흰 무늬가 만들어 내는 직물과 무늬의 조화가 특징이다. 알타이 여자들은 전통적으로 길게 머리를 기르는데 명절 같은 때는 머리를 땋아 두 가닥은 얼굴 앞으로 내놓는다. 전통 악기에는 꼬뮈스, 또프슈르, 이키리가 있다. 알타이인들의 독창적인 세계관은 현대와 고전을 아우르고, 자연과 친하고 주변에 대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인식한 데서 나온다. 아쉽게도 그 동안 알타이인들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시고 밀주가 널리 유통되어 그런 전통적인 문화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북 알타이의 알타이인들은 축산업이 주업인데 특히 주로 말을 기른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버터제조업이 널리 퍼지면서 우유를 공급하는 암소를 많이 기르기 시작하였다. 러시아인들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주로 보리, 호밀, 밀, 삼, 아마 같은 작물을 화전을 만들어 경작했고, 19세기 중엽에 채소밭이 등장했다. 집안 살림에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것은 사냥이었는데, 모피용 짐승, 침엽수림의 들새들을 잡았다. 삼나무 열매나 식용식물, 칡 같은 것을 모으는 일을 하고, 어업, 방직, 방적, 풀무질, 신발제조, 펠트제조, 그물제조 같은 업종도 발달했었다. 가죽에 무늬를 찍는 일과 나무 가지고 조각하는 것도 유명했다. 러시아 농부들로부터 농사 짓는 법을 배웠으며, 꿀을 모으는 양봉업도 나타났다. 알타이인들 가운데 일부는 마차 수송업에도 열중하였다. 남 알타이 사람들은 추야스텝의 산간에서 보리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말, 양, 암소, 염소, 야크와 낙타를 키우는 목축업에 종사한다.
북 알타이 사람들의 전통적인 주거 형태는 천막이나 펠트로 만든 것(유르타), 또는 작은 통나무로 벽을 세우고 자작나무 껍질이나 활엽수로 원추형의 지붕을 덮은 나무집이었다. 천장과 마루는 없지만 지붕 가운데 연기구멍이 있는 육각형 유르타도 있었다. 19세기 중엽부터 알타이인들은 러시아식으로 집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나무로 집과 창고 , 마굿간과 곡식창고를 지었다. 현대 알타이인 들은 전통적인 유르타를 여름 부엌으로 사용하고 더 큰 집에서 사는 것을 좋아한다.
유르타 안쪽은 그다지 넓지는 않다. 마루 한 가운데 먹을 것을 조리할 수 있는 화덕이 있는데, 불 옆에 둘려 막은 울타리에 치즈나 고기를 말린다. 화덕을 아주 성스러운 곳으로 보는데, 특히 화덕 오른쪽은 신성한 장소이다. 유르타 안에서는 여자가 해야 하는 일과 남자가 해야 할 일이 나뉘어 있는데, 양쪽을 나누는 선은 없지만 알타이인들은 정확히 알고 있다. 여자의 중요한 의무는 불과 함께 불 주위를 지키는 일과 요리를 하는 일이다. 낮고 둥그런 식탁에서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식사한다. 알타이 남자들의 전통적인 일은 목축과 사냥이다.
알타이 사람들의 주식은 야생 고기와 가축의 고기, 들새, 생선, 유제품이다. 또한 곡식과 다양한 식용 식물로 야생 파, 미나리과의 구리때, 시베리아산 나리, 여러 가지 딸기를 먹는다. 남 알타이 사람들은 육류와 유제품을 주로 먹고, 북 알타이 사람들은 야채와 육류, 어류를 주로 섭취한다. 아침에는 차에 우유 또는 스메따나(신 크림)를 섞어 마시고, 보리를 잘게 다져서 구운 것을 먹는다. 점심에는 고기로 만든 스프와 보리 퓨레를 먹고, 저녁에는 주로 삶은 고기와 고기육수 같은 육류 음식을 먹는다. 구운 음식으로는 가축을 잡아서 붉은 선지로 순대(소시지의 일종)를 만드는 '칸'이라는 음식이 있고, 양의 내장으로 만드는 지오르겜이라는 것이 있다. 쩰루츠는 잘게 간 고기를 비장에 채워 넣은 것이 있고, 까아즈이는 말의 긴 창자를 데친 것이고, 고기 국물에 염분이 없는 반죽을 끓인 뚜뜨바츠가 있다.
유제품으로는 체겐이란 것이 있다. 이것은 끓인 우유에 지방을 제거한 신 산유를 말한다. 그리고 브이쉬딱(응고된 우유와 양젖으로 만든 치즈의 중간 정도)이 있다. 아라크 술(쌀 사탕 야자나무의 열매로 만든 독주)은 12~16도의 알콜이 든 음료이지만 많이 먹으면 취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알타이의 샤먼바위
12시 40분 알타이인의 유르타를 떠나 계곡 안쪽으로 30분 남짓 더 들어가면 좁은 평지가 나오는데 여기에 선돌과 꾸르간, 제사 유적 등의 고대 유적이 자리하고 있었다. 먼저 볼 수 있는 것이 선돌인데 높이가 185cm 가량 되며 모양이 꼭 광개토태왕비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원래 이 선돌은 청동기 시대의 돌인데 100년 전쯤 이 지역 샤먼들이 이 돌을 이곳으로 옮겨 자신들의 모습을 새긴 것이라고 한다. 그림을 자세히 뜯어보면 맨 위에 샤먼이 춤을 추고 있고, 그 아래 홀로 춤을 추는 사람과, 2명, 3명, 5명이 손을 잡고 무리를 이루어 춤을 추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 아래 부분은 다시 샤먼이 한 사람과 함께 춤을 추고 이어서 아래 7명이 손을 잡고 춤을 춘다. 맨 아래는 샤먼이 말이지 무엇인지 모르지만 짐승을 타고 북을 들고 있다. 꾸바레프 교수는 "알타이신 울게느이에게 7명의 딸이 있었는데 샤먼의 도우미 노릇을 하였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를 그린 것이라고 하였다.
이 그림에서 샤먼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유일한 특징이 북이다. 시베리아에서 '샤먼이 있는 곳에는 북이 있다'고 할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북은 샤먼을 초인간적인 세계로 보내줄 수 있으며, 북소리는 정령을 불러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도구인 것이다.
반자로프라는 학자에 따르면 샤먼(shaman)이란 말은 북아시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즉, saman은 만주어인데 흥분하는, 감동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또 퉁구스의 śamman(shaman이라고 읽는다)도 같은 뜻이라고 한다. 샤먼은 여성 샤먼과 사내 샤먼이 있는데 알타이족을 비롯하여 주변의 부리야트족, 야쿠트족, 키르기즈족들은 여성 샤먼을 우다간(utagan, udagan)과 비슷하게 부르지만 남성 샤먼은 종족마다 서로 다르게 부른다. 앞에서 보았듯이 퉁구스족은 샤만, 몽골족과 부리아트족은 buge, 키르기즈족은 baksa, 타타르족과 알타이족은 kam이라고 부른다(챠플리카, 『시베리아의 샤머니즘』). 우리가 흔히 부르는 샤먼은 퉁구스 계의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에서 사내 무당을 '박수'라고 한다는 것이다. 키르기즈족의 '박사'와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이다.
비어빅키에 따르면 알타이족에게는 캄(Kam)이라는 사내 무당 말고 다음과 같은 샤먼이 있다고 한다(『시베리아의 샤머니즘』에서 재인용).
1) 린치(rynchi) : 고통이 따르는 병이 걸렸을 때 미래를 예언할 수 있다.
2) 텔고치(telgochi) : 알아맞히는 사람이다(guessers).
3) 야린치(Yarinchi) : 어깨뼈를 가지고 점치는 사람이다.
4) 콜-쿠레치(koll-kurechi) : 손으로 점치는 사람이다.
5) 야다치(yadachi) : 바람이 잦지 않은 좁은 계곡에서 얻은 야다-타쉬(Yada-tash)라는 돌멩이를 가지고 날씨를 조절하는 사람이다. 야다치는 이 돌멩이를 얻기 위해 그의 모든 소유물을 포기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가난하고 외로운데, 대개는 홀아비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여기서 마지막 꼬리말 '치'는 점을 치는 '사람'을 뜻하는 것인데, 우리말에서 '치'라는 꼬리말이 '사람을 낮추어 부르는 말'로 쓰이는 것과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이치', '저치'라고 낮추어 부르거나 거지를 '양아치'라고 하는 것 같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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