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내려와 잠깐동안 원주민의 유르타에 들렸다. 꾸바레프 교수가 "강을 사이에 두고 강 건너에는 카자흐인이, 이쪽에는 알타이인들이 나누어 살며, 서로 왔다 갔다 하지 않고 적대시하며 산다"고 했는데 뜻밖에 카자흐인 집이다. 우리 눈에는 같은 알타이 원주민으로 보이지만 카자흐인들은 후대에 흘러들어온 민족이기 때문에 서로 융합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꼭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서로 자신의 언어, 문화, 습관을 지켜 스스로 정체성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카자흐인들이 당당하게 강을 건너와 목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곳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이 셰릭이라는 젊은 주인은 32세이지만 경제적으로 상당한 기반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두고 있는 이들 부부는 원래 마을에서 집을 가지고 살고 있는데 여름에는 풀이 많은 강가에 와서 유르타를 치고 목축을 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양과 염소가 1200마리, 말 4마리, 소 20마리, 개 3마리에 자동차가 2대라고 하는데 이 정도면 규모가 큰 농장이다. 1200마리가 1년 사이에 300~400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양 1마리가 1000루블(35$)이라니 러시아 경제사정으로 보았을 때 작은 수입이 아니다. 가장 큰 수입은 역시 양털을 깎아 파는 것이기 때문에 고정수입에다 매년 자산이 늘어나기 때문에 제법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유르타 안에는 난로를 피우고 있어 따뜻했고 몸을 녹일 수 있어 좋았으며, 카자흐 음식을 대접해주어 색다른 맛도 볼 수 있었다. 먼저 '우류'라는 마실 것을 주는데, 이것은 우유 가운데 농도가 짙은 위 부분을 끓인 것이라고 한다. 이'우류'에 홍차와 따뜻한 물을 타서 만든 차와 빵(바울싹), 버터(마이), 치즈(구루), 세르치크(요쿠르트), 비스킷 같은 음식을 정성껏 내놓아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카자흐 음악을 듣고 싶다고 했더니 바로 옆에 서 있는 전통악기를 들어 연주를 해 주었다. 전문가처럼 잘 치는 것은 아니지만 생활화된 담백한 멜로디가 듣기 좋았다. 온 가족이 함께하는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더니 내일 날이 밝으면 전통 옷을 입고 찍을 테니 그 때 다시 오라고 한다. 시간이 아쉽지만 이미 9시가 다 되어 야영지로 돌아왔다.
비가 떨어지기 시작하여 부지런히 식사를 했지만 이미 10시가 넘었다. 이곳은 다행히 모기가 없어 천국이지만 바람이 불어 춥고 비까지 와서 일찍 텐트에 들어가 제법 세찬 유스띄트의 물소리를 자장가로 잠자리에 든다.
하루를 여는 유쾌한 이야기 반찬
7월 12일(토), 오늘로 답사 2주(14일)가 되는 날이다. 아침 6시 기상하여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기록을 하려고 밖에 나오니 온도가 10℃로 완전히 이른 봄의 쌀쌀한 날씨다. 그냥 텐트 안에서 기록하고 나니 7시가 넘는다.
8시부터 아침밥을 먹었다. 밥 먹을 때는 먹는 것 자체가 좋지만 그 보다 더 좋은 것이 즐거운 분위기다. 우리처럼 밥만 뚝딱 먹어치우는 것이 아니라 많은 이야기도 함께 반찬이 된다. 오늘 아침도 예외는 아니다.
콜라 이야기
이 이야기는 어제부터 시작되었다. 한국 X세대의 대표주자 화동이가 그 어려운 조건에서도 콜라와 사이다를 사가지고 다니면서 먹는 것을 보고 플루스닌 교수가 가라사대 "콜라와 사이다는 위(밥통)를 아주 나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콜라나 사이다를 자동차에나 쓰지 마시지는 않는다."
오늘도 아침도 한국 X세대의 대표주자 화동이가 콜라를 마시려 하자 플루스닌 교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다시 몇 마디 한다.
"콜라는 도끼를 씻을 때나 기계가 더러워져 그 때를 씻어낼 때만 쓴다."
유리 할아버지와 꾸바레프 교수도 이 말에 동의하며 몇 마디씩 거든다. 힘든 하루하루를 콜라와 사이다로 버티고 있는 화동이에게는 아침밥 맛이 확 달아나버리는 이야기다. 그러나 러시아의 50대 이상 할아버지들은 대체로 이런 사고방식이다. 콜라에 대한 반감은 반드시 식품의 위생학적 관점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콜라가 가지고 있는 미국주의에 대한 강한 반발심이고 자본주의에 대한 거부감이다. 이러한 현상은 러시아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볼 수 있다. 1973년 독일에서 열린 세계에스페란토 청년대회에 참가했을 때 자본주의를 사랑하는 유럽 청년들도 콜라병을 깨는 행사를 벌이며 반미 성향을 드러내는 것을 보았다.
내가 "보드카가 가짜가 많다는데 콜라는 가짜 보드카 먹는 것보다는 더 낫다"고 하자 모든 러시아 대원들이 한 목소리로"No, No"를 외친다. "사람 밥통은 아무 거나 먹기 때문에 더러운 것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콜라를 먹어서 깨끗하게 청소를 해야 한다"고 했더니, 러시아 대원들은 또 다시 소리친다. "No, No"
배터리 이야기
코쉬아가치에서 GPS에 사용하기 위해 12개의 배터리를 샀다. 그러나 한 번 넣어 한 시간을 못 간다. 결국 3시간도 못 되 12개 배터리가 다 끝나버렸다. 1주일 이상 쓰려고 했던 계획은 이로써 좌절되었다. 결국 다시 쓰다 남은 것을 넣어 간신히 연명하게 됐다. 아침밥을 먹으며 이 이야기를 했더니 모두 웃으며 말한다.
"하나도 이상할 것 없다."
"이미 쓴 헌 것을 다시 파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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