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우리는 산으로 올라가 유스띄트 강과 평원 전체를 내려다 보며 이 지역 꾸르간에 대한 전반적인 공부를 시작하였다. 차가 높은 산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제법 충분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이곳은 꾸비레프 교수가 발굴을 하여 책까지 냈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최고 전문가를 모신 것이다. 넓은 유스띄트 평원을 내려다보는 우리는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온 계곡과 평원이 이렇게 많은 유적으로 꽉 차 있을 수 있는가? 바로 수 년 동안 찾아다녔던 고구려 국내성의 무덤떼가 떠올랐다. 고구려 국내성 지역에 비해 무덤의 수는 적지만 분포범위는 훨씬 넓고, 천추능이나 태왕능처럼 높은 단은 없지만 크기와 독특한 형식에 있어서는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이런 돌무지무덤들이 고구려보다 아주 이른 시기인 청동기의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두 지역의 돌무지무덤에 대한 상관관계를 연구할 필요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에 서서 내려다보는 유스띄트 평원의 꾸르간들은 <그림 23>에서 보는 바와 같이 크게 7개 지역의 무덤떼로 나눌 수 있다(이하 꾸바레프, 『유스띄트 구르간』, 1991 참조). 이 가운데 6개 지역 무덤떼는 모두 강북에 있는데 7번 지역 무덤떼만 강남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답사하며 GPS로 표시한 <그림 24>와 비교해 보면 우리는 1, 2, 3, 4지역 무덤떼만 직접 답사하고 나머지는 답사를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2005년 헬기에서 전체 무덤떼의 분포와 형태를 관찰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설명의 편의를 위해서 우리가 처음 께렉수르에 도착하여 야영지로 갔던 서쪽 → 동쪽 순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이 순서는 <그림 23>에 나오는 무덤떼에 붙인 순서 1, 2, 3, 4 순서와 같은 것이다. 한다.
지도에 나오는 1지역(<그림 25>)은 '유스띄트-ⅩⅢ 무덤떼'인데 께렉수르에서 동남쪽 강가로 얼마 안 가서 바로 따샨타 가는 마을길 옆에 있다. '유스띄트-ⅩⅢ'이란 번호는 이곳을 발굴한 순서대로 붙인 것이기 때문에 이 무덤떼는 13번째로 발굴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무덤떼는 1번 꾸르간만 길 남쪽에 있고, 나머지 꾸르간들은 모두 길 북쪽에 있다. 남북 한 줄로 이어져 있는 것이 특징인데 한 가족의 무덤일 가능성이 크다. 9개의 무덤 가운데 5, 9번만 발굴을 하였다. 5번 무덤에서는 나무로 만든 그릇조각들이 나왔으나 유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9번 무덤에서는 두 사람의 뼈가 나온 것으로 보아 부부를 합장한 무덤으로 보인다. 토기를 비롯하여 9점의 유물이 나왔다.
지도에 나오는 2지역(<그림 >)은 우리가 답사했던 선돌 주변의 무덤떼이다. 이 무덤떼에는 꾸르간이 30기이고 작은 선돌을 둥그렇게 박아 만든 제사터가 무려 103개가 몰려 있다. 이 무덤떼를 유스띄트-ⅩⅡ 무덤떼라고 이름을 붙인 것을 보면 1지점보다 먼저 발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발굴도 대대적으로 이루어져 무려 28기의 꾸르간을 발굴하였다. <그림 >에서 보는 바와 같이 통나무로 방을 만들고 그 안에 관을 놓고 주검을 안치했는데, 무덤 방 밖에 말이 한 마리 함께 묻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매장 형태는 앞에서 우코크의 빠지릭 문화를 볼 때 이미 보았기 때문에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겠다.
3지역의 무덤떼는 발굴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에 자세한 것이 나와 있지 않다. 4지역의 무덤떼는 우리가 야영을 하는 곳에서 아주 가까운 곳으로 GPS 199지점(2,176m, N49°47'708", E89°19'976")에서 가까운 곳이다. 발굴 번호를 "유스띄트-Ⅰ 무덤떼"로 붙인 것을 보면 이곳을 가장 먼저 발굴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에서는 10기의 꾸르간을 발굴했다. 유스띄트 강가에 아주 대형 께렉수르가 있어 이곳도 상당히 중요한 지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지역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바로 '발발(Balbal)'이라고 하는 작은 선돌들이다. 대부분의 무덤 앞에 서 있는 발발은 1호 32개, 2호 14개, 3호 4개, 4호 7개, 5호 3개, 6호 4개, 7호 없음, 8호 없음, 9호 2개, 10호 14개로 차이가 많이 난다. 없는 것부터 가장 많은 1호는 무려 32개나 서 있다. 물론 그 동안 일부 없어진 것도 있겠지만 발발의 끝에는 둥그런 제사 터가 있는 것으로 보아 현재의 상태가 거의 맞는 것으로 본다. 발발은 하나 같이 해가 뜨는 동쪽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도 큰 특징이다. 이 지역에서는 길을 잃어버려도 꾸르간의 발발만 보면 방향을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선돌들을 둥그렇게 세워 만든 제사 터들은 대부분 발발의 동쪽 끝이나 꾸르간의 서쪽에 자리 잡고 있어 꾸르간과 일정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5지역과 6지역으로 표시된 죨린(Dzolin)지역은 우리가 야영했던 곳에서 상류로 더 올라가야 다다른다. 야영지는 바로 강가 절벽 아래 있었기 때문에 두 지역을 가려면 산 위까지 올라가 돌아가거나 물을 건너 버드나무 숲을 지나서 가야 했다. 이 두 지역에서는 모두 18기의 꾸르간이 있는데 7기의 꾸르간을 발굴했다. 특별히 주목할 만한 무덤 형태는 없고 유물도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이 나오지 않은 편이라는 점이었다.
강 남쪽에 있는 7지역(유스띄트-ⅩⅩⅡ호)은 가장 늦게 발굴한 지역이다. 이 지역에는 께렉수르와 네모난 돌담이 쌓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께렉수르의 생김새도 여러 가지여서 처음 본 것처럼 둥근꼴이 있는가 하면 네모꼴도 있고 동서남북으로 이어지는 복도가 없는 것도 있다. 1호와 2호를 발굴했는데, 1호에서는 청동 거울, 청동 단검, 전투용 도끼 같은 많은 유물이 나왔으나 2호에서는 토기 2점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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