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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 평원의 거대한 수수께끼 '께렉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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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타이 평원의 거대한 수수께끼 '께렉수르'

서길수 교수의 '알타이 답사기' 〈31〉

추야도로의 마지막 마을 따샨타

4시 40분 따샨타로 출발했다.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더니 따샨타로 가는 대로에 접어들었을 때는 천둥번개가 치고 빗줄기가 굵어지고 하늘이 시커멓게 변한다. 쟈나-아울(Zhana-Aul, 918㎞)을 지나 5시 20분 드디어 추야도로의 마지막 마을 따샨타에 다다른다. 여기서 20㎞만 더 가면 몽골 국경이고 그 사이에는 마을이 없기 때문에 따샨타는 사실상 국경이나 마찬가지다. 20㎞를 더 가 샤일류겜 산맥의 낮은 부분인 두르벳-다바(2481m)라는 고개 길로 벗어나면 바로 몽골인 것이다.

따샨타에는 간이식당이나 상점들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마을 입구에서 사진 한 장만 찍고 바로 왼쪽 길로 빠져버렸다. 따샨타는 국경마을이고 또 국경수비대 때문에 시간을 잡아먹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북쪽으로 난 비포장도로를 조금 달려가니 갈림길이 나온다.
▲ 따샨타마을 ⓒ 프레시안

계속 가면 꼬꼬랴라는 마을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바로 우리가 가려는 유스띄트강이다. 소존뚜(Sozontu)라는 고개를 하나 넘으니 바로 유스띄트(Yustyt)강이 나온다. 유스띄트강은 몽골과 국경을 이루는 치하체바(Chikhacheva) 가운데 가장 높은 봉우리인 뚜르겐-우울(Turgen-Uul, 4029m)의 빙하에서 녹은 물이 보구틔(Boguty)호수와 킨듹띄꿀(Kindyktykul)호수를 이루고, 여기서 흘러내린 물이 보구띄(Boguty)강으로 흘러 작은 개울들을 합쳐나가며 2,250m 지점부터는 유스띄트강이 된다.

유스띄트강은 북쪽으로 산 하나 넘은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바르부르가즤(Bar-burgazy)강을 받아들이고, 꼬고랴마을 옆으로 흐르는 끠즬쉰(Kyzylshin)강과 합쳐 추야강으로 흘러들어간다. 유스띄트는 '100그루의 낙엽송'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그런 낙엽송을 찾아볼 수 없다.

유스띄트강 줄기를 두 번 건너니 넓은 초원 평야가 펼쳐진다. 강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갈수록 넓어진 평원은 결국 추야도로를 넘어 추야스텝으로 이어진다. 초원에 들어서 잠깐 달려가더니 차가 대형 유적 앞에 선다.

유스띄트 평원의 수수께끼 '께렉수르'

"께렉수르."

이 단어는 여기서 처음 들으며, 알타이에서 이렇게 큰 유적도 처음 본다. 우선 그 생김새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모두 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전체적인 꼴이 마치 옛날 만화에서 본 우주선을 떠올리게 한다. 가운데 대형 꾸르간처럼 둥그런 돌무지가 있고, 그 중심에서 50m쯤 떨어진 동그라미가 다시 그려진다. 그러니까 가운데 꾸르간에다 중심을 세우고 콤파스로 반지름 50m짜리 원을 그렸다고 보면 된다. 가운데 중심과 밖의 원 사이에는 동서남북 4곳에 연결하는 선이 있는데 마치 우주선의 복도 같이 보인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동차 운전대처럼 생겼다고 해도 좋다. GPS로 재보니 지름이 90m가 조금 넘는데 어느 기록에 보니 100m라고 나와 있으니 엄청나게 큰 규모다. 이 께렉수르는 유스띄트 평원의 한 복판에 자리하고 있으며 남쪽에 이보다 더 작은 것이 하나 더 있다고 한다.

"청동기 시대의 유적이다."

청동기라면 멀리 5000년 전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가 있는데 도대체 그 옛날 어떤 종족이 이런 거대한 유적을 만들 수 있었을까? 그리고 돌로 쌓은 이 유적의 어디다 쓰는 것일까?

"꾸르간이 아니다."

꾸바레프 교수의 이 대답은 우리를 더 어려운 상상으로 몰아넣었다. 솔직히 처음 보자마자 '참 거대하고 이상하게 생긴 무덤이다'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추측이 여지없이 무너진 것이다. 운전대 손잡이는 아니더라도 한 가운데 있는 돌무지는 무덤이 아니냐고 되물었더니 그곳에서는 청동기 사람 뼈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2개의 께렉수르는 이미 꾸바레프 교수가 발굴을 했는데 아무런 유물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따만 뼈만 나왔는데 이 뼈도 이 께렉수르를 만든 청동기시대 사람의 뼈가 아니라 후대에 묻은 것이라고 한다. 원래는 사슴돌이 서 있었는데 그 뒤 성전(聖殿)이 되고, 나중에 스키타이(빠지릭) 시대와 뚜르크 시대 사람들이 그 위에다 무덤을 썼으리라고 본다는 것이다. 결국 께렉수르는 제사를 지내던 성소(聖所)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꾸바레프 교수의 결론이다. 여기서 제물로 사람을 바쳤다고 하며 주위에서 발굴된 유골들은 '카우카즈'인의 것인데 모두 유럽인종에 속한다고 한다. 이 유적을 "기르기즈 유르타"라고 부른다고 했다. 운전대처럼 둥그런 원의 바깥에는 8~9개의 작은 선돌로 이루어진 제사터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하나씩 떨어진 고리처럼 이어져 있다. 그런데 이 둥그런 제사터들은 초기유목시대의 것과 같아 청동기시대에 함께 만든 것이 아니고 나중에 덧붙인 것일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이 께렉수르에 대한 수수께끼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채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우주와의 영적 교신을 위한 곳이라는 해석도 나오는데 투바공화국에서 발견된 께렉수르에 대해서 현지의 고고학자 그라치스는 이 유적을 '태양의 신전'이라는 구체적인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께렉수르는 몽골알타이와 중국 쪽 알타이에서도 모두 발견되었다.
▲ ⓒ 프레시안

▲ 지상에서 직은 께렉수르 ⓒ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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