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긔즈-또베(Jalgyz-Tobe)의 바위그림
7월 11일(금), 5시에 일어나 밖을 내다보니 구름이 잔뜩 끼었다. 오늘도 해돋이를 촬영하는 것은 실패한 것이다. 6시부터 밖으로 나와 산기슭 바위에 앉아 답사기록을 한다. 이른 아침부터 모기들의 공격은 시작되었지만 겉옷을 뒤집어쓰고 하니 견딜만하다. 모두들 치쳤는지 7시가 되어도 조용하다. 조금 있으니 유리 할아버지가 일어나 이리나를 깨운다. 이리나는 8살, 13살 아이들의 어머니인데 이 어려운 탐사를 잘 견디어 낸다. 그 저력은 바로 이리나 자신이 이 탐사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유리 할아버지는 조용히 한쪽으로 가서 소똥으로 불을 피우더니 커피 물을 끓인다. 이른 아침 손수 커피를 끓여 먹는 것은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유리의 특권이다. 소똥 불에 고기를 굽는 것은 생각해 봐야겠지만 커피 물 끓이는 것은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바로 바위산에 올라가 바위그림 조사를 시작했다. 잘긔즈-또베는 추야 평원 동남쪽 끝에 갑자기 혼자 우뚝 솟아 있는 바위산이기 때문에 평원에서 쉽게 눈에 띠는 위치에 있다. 지금뿐만 아니라 고대에도 지나는 길의 이정표 역할을 했던 곳이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어제 저녁에 잠시 살펴보았지만 올라가서 보니 아주 많은 바위그림이 곳곳에 그려져 있었다. 산 아래부터 꼭대기에 있는 기상대에 이르기까지 바위산 전체가 바위그림으로 덮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주제는 이루비스뚜에서 보았던 것과 같이 뿔이 강조되고 주둥이가 긴 형태의 사슴과 뿔과 꼬리, 네 다리, 심지어 성기까지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된 큰사슴, 소에 짐을 실은 그림, 그리고 활과 지팡이, 곡괭이 따위를 들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 모습, 지팡이를 들고 발기된 성기가 사실적으로 표현된 남자와 그 남자의 지팡이를 잡고 아이를 낳고 있는 여자의 모습, 꼽추인 샤먼의 모습 등, 사람과 동물을 주제로 한 다양한 형태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특히 다른 지역에 비해 사람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 많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시기는 청동기시대부터 9세기 뚜르크시대,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간 범위도 아주 넓었다. 뚜르크 문자도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위에서 올려다 볼 때도 그랬지만 아래로 내려다보아도 둥그렇게 병풍처럼 산이 에워싼 곳이 있는데, 이곳은 마치 대형 원형극장처럼 생겼으며 실제로 밑에서 얘기하면 온 산에서 들린다고 한다. 원형극장 쪽으로 내려와 밑에 이르자 잘 남아있는 꾸르간이 하나 나타났다. 이곳은 이미 발굴을 하였는데 무덤에서 파낸 돌에 바위그림이 그려져 있어 화제가 되었던 꾸르간이고, 토기도 많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찾아봐도 무덤 돌에는 그림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꾸바레프 교수가 누워 있는 돌덩이 두 개를 일으켜 세웠다. 바로 그곳에 아주 예쁜 그림들이 나타났다. 발굴하고 일부러 감추어 놓았던 것이다.
그림 83) 계곡 아래는 꾸르간과 원형극장이 있다
그림 84)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 그림은 드물다
그림 85) 뚜르크시대의 말 탄 무사
그림 86) 무덤 돌에 새겨진 바위그림
꾸르만-따우(Kurman-Tau) 바위그림
11시 30분 잘긔즈-또베를 떠나 10분쯤 가니 바로 꾸르만-따우(Kurman-Tau)라는 바위그림 지역이 나온다. 뚜르만-따우(1859m, N49°52'404", E88°44'615")는 낮은 바위산으로 몇몇 바위 면에 20여 점의 바위그림들이 새겨져 있다. 이곳 바위그림은 수량은 많지 않았지만 추야 스텝에서 가장 오래된 바위그림이 있는 곳이었다. 꾸바레프 교수는 바위그림의 크기와 새긴 기법 등을 통해 신석기 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바위그림은 소와 사슴 4마리를 위에서 아래로 병렬 배치하여 표현하였는데 가장 위쪽과 가장 아래쪽에 소를 그리고 그 사이에 사슴 2마리를 배치하였다. 한 개체의 크기가 50cm 이상으로 다른 바위그림들에 비해 상당히 큰 편이었다. 그리고 새긴 기법도 청동기 시대의 바위그림에 비해 윤곽선이 훨씬 굵고 거칠며 원시적이어서 기법에서 분명한 차이가 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돌로 찍어서 그리는 기법을 쓴 것이다.
그림 87) 꾸루만-따우(멀리 뒤로 잘긔즈-또베가 보인다)
그림 88) 신석기시대 바위그림
미쉘듸크(Misheldyk) 바위그림(1819m, N49° 53'240", E88° 46'240")
12시 반 꾸르만-따우을 떠나 추야도로 쪽으로 5분을 가니 또 다시 자그마한 산이 하나 나오고 여기에도 어김없이 바위그림이 있다. 미쉘디크에는 그림이 몇 점 되지 않아 찾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만 크기가 1m나 되는 대형 사슴이 바위 한 면을 차지했는데 참 인상적이었다. 높지 않는 곳에 그림을 그리기에 아주 적당한 캠퍼스가 길게 이어져 있는데 그림은 10점 안팎으로 아주 적어 뜻밖이었다.
그림 89) 미쉘듸크 바위그림
그림 90) 대형 사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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