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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의 '가짜 항복'에 안 속는 네팔 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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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의 '가짜 항복'에 안 속는 네팔 민중

시위 사태 더 격화…국제사회 압력도 '미지근'

  갸넨드라 국왕이 21일 "국민들에게 주권을 돌려주겠다"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민주주의를 바라는 네팔 국민들의 시위 사태는 수그러들 줄 모르고 있다.
 
  끝없는 권력욕을 보여 온 국왕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 불명확하고 미진한 '항복 선언', 계속되는 통금령에 대한 반발은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다.
 
  22일 수도 카드만두에는 20여만 명의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 국왕의 '항복 선언'은 '사기극'에 불과하며 야당측에 행정권만 넘기겠다는 갸넨드라 국왕의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네팔 정부는 고무총탄과 최루탄을 쏘며 전과 다름없는 강경 진압을 폈고 23일에는 오전 9시부터 11시간 동안 주간 통금령을 또다시 내려 국왕의 선언이 고조된 여론을 가라앉혀 보려는 '꼼수'에 불과하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시위 분위기 가라앉히기 위한 술책
 
  갸넨드라 국왕의 독재에 반대하는 시위가 20일째 계속되면서 시위대의 세력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특히 경찰의 발포와 강경진압으로 14명의 시위대가 사망하면서 국제사회의 압력은 높아졌고 국민감정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이같은 시위는 300명의 사망자를 냈던 1990년 민주화운동 이후 최대 규모로 평가된다. 네팔 국민들은 당시 절대왕정을 이끌던 비렌드라 왕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총선을 통해 입헌군주제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갸넨드라 국왕은 지난해 2월 셰르 바하두르 데우바 총리가 마오반군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총선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정부를 전격 해산하면서 전권을 장악하고 과거 절대왕정으로의 회귀를 꾀했다.
 
  갸넨드라는 쿠데타 당시 인권을 존중하고 3년 내에 민주주의와 평화를 가져오겠다고 약속하며 국민들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그는 부패 척결을 명분으로 야당 지도자들을 체포해 자신의 하수인격인 기관에 의한 조사를 명령했다.
 
  그러자 야당을 중심으로 갸넨드라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네팔 대법원이 갸넨드라의 수중에 있는 수사기관을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마오반군의 힘
 
  네팔 사태에서 중요한 변수는 마오주의를 추종하는 반군들의 활동이다. 주요 도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농촌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마오반군들은 국왕이 권력을 완전히 포기하고 입헌군주제로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강력히 저항하고 있다.
 
  페루의 마오주의 게릴라 '빛나는 길'을 전범으로 삼고 있는 마오반군은 정부군의 토벌이 시작되면 산으로 숨어 들어가 조직을 보전하면서 일부 도시나 거점 지역을 포위해 그 지역의 경제를 마비시키는 전략으로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마오반군은 화력면에서 정부군에 밀리지만 익숙한 산악 지형을 이용하는 작전과 민심을 얻는 활동을 통해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마오반군은 1만~1만5000명의 정예 조직원과 그들을 지원하는 5만 명의 '민병대'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네팔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10년에 걸친 마오반군과 정부군의 전투로 1만3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그중 대부분은 민간인이었다. 마오반군은 한때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언했다가 올 초 그를 무효화하면서 정부군과의 충돌이 더욱 첨예화됐다.
 
  마오반군의 사령관 프라찬다("열렬한 동지"라는 뜻)는 지난 2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갸넨드라 왕이 입헌군주제를 위한 자유선거를 실시한다면 왕정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자신들의 기존 입장을 재고할 수 있다고 말해 타협의 여지를 내비쳤다.
 
  정부와 반군은 최근 몇년간 수차례의 협상을 벌여 왔지만 입헌군주제의 모습에 대한 핵심 쟁점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특히 정권을 차지하고 2002년 10월 국회 해산 이후 자신이 지명해 왔던 총리들을 내쫓았던 갸넨드라의 강경 노선은 양측의 협상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인도의 선택
 
  국제사회는 네팔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서남아의 맹주인 인도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다.
 
  인도는 지난 1989년에 네팔과의 관계가 냉각되자 15개월간 '대륙봉쇄령'을 발동해 네팔 경제를 파산 일보 직전까지 몰고간 적이 있는 등 현실적으로 네팔의 '명줄'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갸넨드라가 21일 '항복 선언'을 한 것은 인도가 20일 특사를 보내 만모한 싱 총리의 친서를 전달하는 등 사실상의 '최후 통첩'을 하면서 갸넨드라를 궁지로 몰았기 때문이라고 분석된다.
 
  그러나 인도는 갸넨드라의 폭정 보다 마오반군들의 활동에 더 큰 관심과 우려를 가지고 있어 반군과 첨예하고 대립하고 있는 갸넨드라 정권에 무작정 압력만을 넣을 수는 없는 입장이다.
 
  마오반군들은 네팔뿐만 아니라 인도의 일부 지방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면서 인도 정부를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군들은 개발에서 소외된 인도의 농촌 지역에서 인도의 토지와 빈곤 문제를 제기하며 민심을 얻고 있어 인도 정부는 이들과 네팔 반군들의 연계를 차단하는 문제에 더 고심하고 있다.
 
  인도의 야당인 인민당(BJP) 당수의 말은 인도의 이같은 입장을 잘 보여준다. 라즈나트 싱 당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마오반군들이 네팔에서 영향력 있는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인도가 압력을 가해야 한다며 반군을 억누를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인도는 갸넨드라에 반대하고 있는 7개 야당연합의 뜻대로 네팔 정국이 흘러갈 경우 마오반군들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마오반군은 이번 시위사태를 직접 지휘하고 있지 않지만 지난해 11월 "전제적인" 왕정을 종식해야 한다는 협정을 야당연합과 맺은 바 있다.
 
  야권 분열은 또하나의 과제
  
  이같은 상황 속에서 네팔 국민들은 갸넨드라의 직접 지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신들이 '가짜 항복'에 속지 않고 시위를 계속하는 길밖에 없음을 알고 있는 듯 보인다.
 
  야당과 시위대들은 갸넨드라가 구체적인 총선 일정을 적시하지 않은 점, 입헌군주제로 복귀하더라도 정부해산권 등 국왕이 누려온 권한이 제한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이유로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며 일반 총선이 아닌 제헌의회의 구성을 위한 선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 내부에서는 네팔이 향후 어떤 정치체제를 택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입장이 서로 달라 경우에 따라서는 야권의 분열로 정국 불안이 더욱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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