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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눈길이 멈춘 곳에

[정찬주 연재소설] '하늘의 도' 제2장 살아남은 자의 노래〈9〉

동암은 일찍이 혜공의 도반이 머물렀으나 그가 떠난 뒤 오랫동안 비어 있었으므로 폐사나 다름없었다. 그러한 동암이 다시 옛 모습을 되찾은 것은 양팽손이 조광조의 초상화를 그리고자 머물게 되면서부터였다. 양팽손은 월곡마을 본가의 노비를 불러 암자 주변의 잡초를 뽑고 썩은 사립문을 바꾸는 등 도량을 말끔하게 정비했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양팽손을 동암의 암주(庵主)라 불러도 무방했다.
양팽손은 능주로 낙향한 뒤부터 차를 즐겨 마시곤 하여 동암의 서화실에도 차도구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는 쌍봉사 입구 연못에서 보았던 연(蓮)과 지초(芝草), 그리고 자신이 아끼는 다관(茶罐)을 소재 삼아 연지도(蓮芝圖)를 틈나는 대로 그렸는데, 암자 방 벽에도 연지도가 한 점 붙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방 한쪽에는 연지도는 물론이고 산수도와 묵죽도의 습작들이 차곡차곡 개어져 있었다.
양팽손은 여인에게 석간수가 솟는 옹달샘의 위치와 차솥이 걸린 곳을 알려주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다회는 벌써 시작되고 있었다. 방 안쪽에 앉은 혜공이 팽주(烹主)가 되어 차 마실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팽주란 다회를 이끌며 달인 차를 보시하는 사람을 말했다. 이런 때 여인은 팽주의 시자가 되는 셈이었다. 여인이 부엌에서 차를 달이는 동안 송흠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우리가 보았다시피 정암의 초상화는 잘 그려진 것 같소. 내일 사당에서 초상화를 봉안할 터인데, 사시에 하면 어떻겠소."
동암의 방안 분위기는 무겁고 침통했다. 양팽손이 그린 조광조의 초상화를 보는 순간 모인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일그러졌던 것이다. 초상화를 잘못 그려서가 아니라 기묘년에 받았던 고통과 절망이 되살아났고, 초상화는 살아 생전의 조광조와 너무도 흡사하여 마치 옆에 그가 함께 앉아 있는 듯하였기 때문이었다. 좌장인 송흠이 어렵사리 또 입을 열었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면 내일 사시에 하도록 합시다. 이 늙은이에게 한 마디 더 하라고 한다면 정암은 죽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소. 정암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오. 정암이 우리 곁을 떠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오. 오늘 우리들이 쌍봉사에 모인 것은 정암이 죽어서 모인 것이 아니라 정암이 우리를 불러서 온 것이오. 그러니 정암은 부활한 것이오. 도학의 강물이 도도하게 흐르고 그 강물이 마르지 않는 한 유림(儒林)의 역사는 정암을 잊지 않을 것이오. 잊지 않고 내내 고마워할 것이오."
송흠이 낮은 목소리로 비통하게 말을 맺자, 최산두가 겨우 입을 열어 말했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동부승지 어른 말씀이 옳습니다. 능주향교, 동복향교 교생들에게 이제 정암은 사사 당하기 전의 정암이 아닙니다."
"무슨 말씀이오."
"정암은 개혁을 했던 단순한 정치가가 아니라 이제 도학의 군자입니다."
"그건 평소에 정암이 바라던 바가 아닌가요."
"동부승지 어른, 그렇습니다. 정암은 행복한 선비입니다. 살아남은 저희가 오히려 불행할 뿐입니다."
최산두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전라도의 향교 교생들은 생전의 조광조에 대해서 중종의 신임을 이용하여 측근만 중용한다는 불만도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살신성인한 군자로 떠받들어지고 있었다. 조광조는 남곤, 심정 등에게 죽임을 당함으로써 오히려 유가(儒家)의 의리를 실천한 도학의 사표가 된 셈이었다.
박상도 한 마디 거들었다.
"광주에서 정암은 공맹보다 더 높이 올라 있습니다. 무등산이 빛을 잃을 정도입니다."
"능주에서도 정암의 추모 열기는 더해가고 있습니다."
양팽손의 말끝에 송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살아남은 우리 모두는 정암에게 빚을 진 것입니다. 우리가 수십 년에 걸쳐 할 일을 정암이 이룩해 냈으니까요. 정암은 호남 사림들의 마음에도 도학의 불을 붙인 군자입니다. 두고 보시면 알게 되겠지만 호남에도 도학이 융성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정암이 능주에 와서 도학의 씨를 뿌렸기에 그렇습니다. 호남 사림들은 정암을 그렇게 기억할 것입니다."

암자 부엌에서 차를 달이던 여인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방 안에서 들리는, 조광조를 추모하는 얘기 소리에 가슴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여인은 지금 선비들이 말하는 조광조의 의로운 혼이 아니라 단 한순간이라도 사내 냄새가 나는 조광조의 육신을 보고 싶었다. 여인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정암 나으리께서 돌아가시지 않았다니 무슨 말씀이오. 정암 나으리께서 정말로 부활하셨다면 정녕 지금 정암 나으리를 뵐 수 있어야 하지 않겠소. 아, 지체 높으신 선비님들께서는 지금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닌가요.'
여인은 차솥에 찻물을 붓고는 다시 중얼거렸다.
'아니옵니다. 저 같은 처자가 무엇을 알 것이옵니까. 지체 높으신 선비님들 말씀이 옳은지도 모르지요. 선비님들께서는 정암 나으리께서 불러서 왔다고 했습니다. 학식이 높은 선비님들께서는 허깨비에게 홀려서 온 것이 아닐 것이옵니다. 정암 나으리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으나 결코 돌아가시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암 나으리는 분명 살아 계시기에 선비님들을 이 자리에 불렀을 것이옵니다.'

그때였다. 암자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인물역에서 보낸 하인 말구종이었다. 그는 비 맞은 몰골로 무언가를 담은 망태를 들고 있었다.
"계십니까요. 계십니까요."
"누구냐."
"쇤네는 인물역 말구종입니다요."
양팽손이 방문을 열고 나와 다시 물었다.
"무슨 일로 비를 맞고 예까지 왔느냐."
"찰방 나으리께서 이걸 어른께 갖다 주고 오라 하셨습니다요."
"무엇이더냐."
"저도 처음 본 것이라서 모르겠습니다요. 바다 속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요."
"망태 속에 것들을 끌어내 보아라."
말구종의 망태에서 나온 것은 조개처럼 생겼으나 빛깔은 숫돌처럼 검었고 크기는 어른 손바닥만 하여 모양새가 징그러웠다. 조개도 아니고 소라도 아니었다. 양팽손은 난생 처음 본 해물(海物)이어서 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만지기를 꺼려했다.
"찰방 어른께서 이것을 왜 보냈는지 모르겠느냐."
"귀한 해물이라 했습니다요."
"귀한 것이라서 보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요."
"다른 말씀은 없었느냐."
"이 서찰을 전해드리고 오라 하였습니다요."
양팽손은 말구종이 건네준 서찰을 보았다. 서찰에는 해일이 지나간 장흥 바닷가에서 어부들이 주운 것인데, 그곳의 현감과 서너 개를 까서 함께 술안주로 먹어 본 바 맛이 너무 구수하여 보낸다고 써 있었다. 그래도 양팽손은 해물을 먹고 중독되어 죽은 어부들 얘기를 자주 접했던 터라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찰방 어른의 호의는 고맙다만."
"쇤네도 찰방 나으리께서 날것을 주어 조금 먹어 보았습니다만 아무 일 없었습니다요. 그러니 안심해도 될 것입니다요."
"맛이 어떠하더냐."
"씹히는 것이 쫄깃쫄깃하고, 맛은 짭짤하면서도 고소했습니다요.
"알았다. 찰방 어른께 고맙다고 전하거라."
내륙에서만 살아본 박상은 해물을 싫어한다며 아예 고개를 돌렸다.
"거, 흘린 소똥처럼 생긴 것이 어찌 맛이 있을꼬."
송흠도 자신의 고향인 영광 바닷가에서조차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라고 외면했다. 다만, 남해를 접한 광양 출신인 최산두만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소리쳤다.
"이름이 생각나지 않소만 소싯적에 더러 보았소이다. 태풍이 지나 간 뒤 바닷가에 나가보면 저것들이 시커멓게 밀려와 있었지요. 아마도 깊은 바다 밑에서 미역을 뜯어먹고 사는 해물일 것입니다."
인물역 찰방이 보내준 해물 술안주로 침울했던 방안의 공기가 잠시 사라졌다. 최산두가 고향생각이 난 듯 활발해졌다.
"괴상하게 생긴 저놈을 본 지가 하도 오래돼서 이름을 잊어먹었습니다."
"넙적하고 길쭉한 것이 챙이와 비슷하구먼."
"그렇습니다. 챙이를 우리 마을에서는 키라고 부릅니다. 옳거니, 저놈이 쌀겨를 골라내는 키 모양이어서 키조개라고 불렀던 것 같습니다."
최산두는 조개 이름을 기억해 내고는 큰소리를 내었다.
"이놈을 먹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날것으로도 먹을 수 있고, 불에 노릇노릇하게 구워 먹기도 합니다. 끓는 물에는 슬쩍 데치기만 해야 하고 불에 완전히 구우면 딱딱해서 씹기가 불편해지고 맛이 떨어집니다."
그래도 양팽손이 독이 없는가 하고 묻자, 최산두는 자신 있게 말했다.
"학포, 그대가 불안하여 먹지 못한다면 내가 먼저 시식 해보겠소. 키조개는 내장 중에서 흐물거리는 노란 것만 떼어내면 아무 탈이 없다네."
"신재 선배님, 내 생전에 이런 괴물 같은 조개를 보기는 처음입니다. 이놈이 미역을 먹고 자란다 했습니까. 이놈의 입이 큰 것으로 보아 아무리 긴 미역이라도 한입에 삼킬 듯싶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학포는 겁쟁이군 그래. 하하하."

최산두가 차를 달이고 있던 솔방울 불에 키조개를 구웠다. 그것을 다시 방안으로 옮겨오자, 생각지도 않았던 다식(茶食)이 되었다. 희고 둥근 키조개 살은 가래떡처럼 칼집을 내어 여러 명이 한 점씩 할 수 있도록 잘랐고, 노란 버섯 갓처럼 얇고 쪼글쪼글한 살은 또 다른 사기 접시 위에 올려놓아졌다. 느닷없이 나타난 키조개는 여인이 달인 차와 함께 방안의 침울했던 공기를 반전시켜 주었는데, 혜공의 차에 대한 긴 얘기도 일조를 했다. 더구나 혜공은 연산군 때 무오사화로 목숨을 잃은, '차의 아버지' 즉 다부(茶父)라고 일컬어지던 도학자 이목(李穆)과 교분이 두터운 사이였던 것이다.
"한재와 소승은 동향(同鄕)입니다."
"김포가 고향이라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고향이 같을 뿐만 아니라 한재가 유배 간 공주에서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소승은 계룡산 갑사에 머물고 있었으니까요."
김종직 문하에서 수학한 이목이 24세가 되어 사신 일행으로 중국 연경을 다녀와서 정적의 모함을 받아 25세 때 공주로 유배를 갔던 것이다. 이목이 차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연경에서 육우의 〈다경(茶經)〉과 노동의 〈칠완다가(七椀茶歌)〉를 접하고 난 후였다.
유배 살이 중에 이목은 차를 찬양한 〈다부(茶賦)〉를 지었는데, 그때 계룡산 갑사에 머물던 혜공은 〈다부〉를 빌려 읽고 어찌나 공감하였던지 밤새 외워버렸을 정도였다. 박상이나 최산두, 송흠 등은 이목이 〈다부〉를 지어 남겼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나 〈다부〉의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모르고 있었다. 송흠이 궁금했었던 듯 물었다.
"한재는 나보다 몇 년 후배지요. 그가 왜 〈다부〉를 지었는지 알고 싶소."
"소승이 기억하기로는, 〈다부〉에도 저술 동기를 밝히고 있습니다만."
"한재는 무엇이라 하고 있소."
"〈다부〉에 보입니다만 우리나라에 일찍이 '차를 칭송한 글이 없음은 현인(賢人)을 버려둠과 같기 때문'이라는 구절이 저술 동기인 것 같습니다."
'차가 현인이라….'
송흠이 중얼거리자 양팽손이 혜공의 편에서 말했다.
"다맥(茶脈)은 도학의 맥과 상통합니다. 조선 땅에 도학의 씨를 뿌린 고려 말의 삼은(三隱)을 비롯하여 점필재(김종직의 호) 선생까지 차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니 차는 현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혜공이 양팽손의 말이 끝나자, 조금 전에 들려준 차 얘기를 마저 했다.
"한재는 〈다부〉에서 말합니다. 차에 삼품(三品)이 있다고 합니다."
"무엇을 삼품이라 합니까."
혜공의 얘기에 송흠만 흥미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박상과 최산두도 차를 미시며 귀를 기울였다.
"몸을 가볍게 하는 것이 상품(上品)이고, 지병을 없애주는 것이 중품(中品)입니다. 마지막으로 고민을 달래주는 것을 차품(次品)이라고 부릅니다."
"차야말로 현인이자 명의로구려."
"소승이 생각하기로도 차를 일러 하늘이 내린 명의라고 할만 합니다."
최산두가 물었다.
"차에도 공효(功效)가 있습니까."
"역시 한재 선생은 차에 다섯 가지 공효가 있다고 합니다."
"듣고 싶소."
"첫째는 목마른 갈증을 풀어주고, 둘째 마른 창자와 가슴의 울적함을 풀어주고, 셋째 주인과 손님의 정을 서로 즐기게 하고, 넷째 뱃속을 해독하여 소화가 잘 되게 하고, 다섯째 술을 깨게 해준다고 합니다."
최산두가 놀라며 말했다.
"차야말로 유배 온 나와 벗할 만한 동지구려. 건강을 돌봐 주고 주인과 손님의 정을 도탑게 해주니 동지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박상도 한 마디 물었다.
"대사님, 차에 덕이 있습니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오."
"물론입니다. 차에는 여섯 가지 덕성이 있습니다."
"어서 말해 보시오."
"사람으로 하여금, 첫째 오래 살게 하고, 둘째 병을 그치게 하고, 셋째 기를 맑게 하고, 넷째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다섯째 신령스럽게 하고, 여섯째 예의를 알게 하지요."
"예의를 알게 한다…. 그래서 차가 도학과 맥을 같이한다고 보는군요. 학포, 내 말이 맞습니까."
"눌재 선배님, 그렇습니다."
과연 혜공은 이목이 지은 〈다부〉를 완벽하게 외우고 있었다. 혜공은 여인을 불러 다관에 달인 차를 다시 담아오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자신의 해박한 지식에 눌려 아무도 물어오지 않자, 연배가 비슷한 송흠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으리, 제가 좋아하는 〈다부〉의 한 구절을 염불해도 되겠습니까."
"좋구요, 말구요."
혜공은 찻잔 대신에 목탁을 들고 불경을 외우듯 〈다부〉의 한 구절을 자신의 소리에 도취한 듯 느리게 염송했다.

한 잔을 마시니 메마른 창자가 눈 녹인 물로 씻어낸 듯 깨끗이 씻겨 내리고
두 잔을 마시니 마음과 혼이 상쾌하여 신선이 된 듯하고
석 잔을 마시니 병골에서 깨어나 두통이 없어지며 호연지기가 생겨나고
넉 잔을 마시니 가슴에 웅혼한 기운이 생기며 근심과 울분이 사라지며
다섯 잔을 마시니 색마가 도망가고 탐욕이 사라지며
여섯 잔을 마시니 세상의 모든 것이 거적때기에 불과하며 해와 달이 방촌에 들어 신기함이 하늘나라에 오르는 듯하고
일곱 잔은 채 반도 마시기 전에 맑은 기운이 울울이 옷깃에 일어나네.

중국의 노동이 지은 〈칠완다가〉를 빌려와 이목이 지은 차노래였다. 송흠 일행은 차에 취하고 혜공의 염불소리에 취했다. 어느새 조광조의 초상화를 보고 받은 침통한 분위기는 저만치 물러갔다.
시간이 더 지나자, 양팽손의 제의로 조광조에게 차를 담은 찻잔을 올리기도 했다.
"정암에게도 차를 한 잔 올립시다."
"좋은 생각입니다. 정암에게 그리한다면 정암도 지금 우리와 함께 자리한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어서 차를 올립시다."

그러나 방안으로 달인 차를 나르는 여인의 마음은 여전히 무겁기만 했다. 차향이 동암 안팎으로 가득했지만 여인의 우울한 마음을 씻어주지는 못했다.
다회는 쌍봉사의 저녁 예불 전까지 이어지다가 혜공이 먼저 일어나면서 파했다.
"비구름이 북쪽으로 몰려가는 것을 보니 내일부터는 날이 활짝 갤 것 같습니다. 그럼, 내일 뵙지요. 소승은 먼저 내려가겠습니다."
"스님, 저도 따라 내려갈까요."
"보살은 동암에 남아 손님들 저녁 공양을 챙겨드려야지요."
"네, 스님."
여인은 합장하며 혜공이 쌍봉사로 내려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여인은 문득 조광조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양팽손이 그린 조광조의 초상화가 옆에 있어도 더욱 그리울 뿐이었다. 여인은 차 심부름을 하느라고 아직 조광조에게 절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인은 송흠 일행이 다회를 파하고 산책을 나간 사이에 방으로 들어갔다. 조광조의 초상화는 양팽손의 서화실 방 벽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여인은 조광조의 초상화 앞에서 두 번 큰절을 했다. 그러고는 소리를 죽여 흐느꼈다. 초상화 속의 조광조는 늙어 있었다. 여인이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바로 그 얼굴은 아니었다. 대장부의 기백은 그대로이나 이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한 여자의 사내에서 모든 사람들의 군자가 되어 있었다. 조광조의 부드러운 눈빛은 자신을 보지 않고 세상을 굽어보고 있었다. 젊은 시절 조광조의 눈길은 그녀를 좇았는데, 이제는 그녀가 조광조의 눈길이 멈춘 곳을 쫓고 있었다.
'아, 내게 눈길도 주지 않는 무정한 분.'
여인은 산책 나간 송흠이 일행이 암자에 도착하기 전까지 소리 죽여 흐느끼고 또 흐느꼈다. 휘파람새와 소쩍새도 축축한 숲속에서 동암 가까이 내려와 울었다.
-휘이 휘이.
-소쩍 소어쩍.
휘파람새는 목이 쉬도록 울었고, 소쩍새는 피를 토하듯 울었다. 여인은 부엌으로 들어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 천리 길을 달려왔건만 내게 눈길도 주지 않는 무정한 분.'
산자락을 덮었던 비구름이 물러가면서 그 자리에 산그늘이 접히자, 저녁 예불 전에 치는 쌍봉사의 범종도 댕댕댕댕 하고 골짜기를 울리기 시작했다. 범종소리는 여인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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