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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에게 '전권' 있을 때 해치워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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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부시에게 '전권' 있을 때 해치워야 한다고?

[한미FTA 뜯어보기 25] TPA에 대한 오해와 진실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에 의해 촉발된 '졸속 추진' 논란에 이어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보고서 조작' 공방까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싸고 각종 논란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청와대는 'FTA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협상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정부는 미국 TPA 제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FTA로 피해가 예상되는 업계와 수많은 시민단체, 학자들의 반발과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조급하다는 인상을 풍기면서까지 협상을 서두르는 것은 미국의 소위 무역협상촉진법(TPA, Trade Promotion Act)이 내년 6월 30일로 종료된다는 점을 감안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국내 언론들도 지난 2월 3일 한미 FTA 협상의 공식 개시를 보도하면서 이런 정부의 논리를 받아들인 입장에서 이 협상의 향후 일정을 전했다.

이에 대해 '왜 미국의 사정에 우리가 끌려다녀야 하느냐'는 비난이 일자 정부는 "(TPA) 시한 안에 협상을 마치는 게 좋긴 하지만, 시한에 끌려서 중요한 국익을 놓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김종훈 통상교섭본부 한미FTA 협상 수석대표, 12일자 〈한겨레〉 인터뷰)고 한 발 물러서며 비난을 피해가려는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 7일 "TPA에 맞춰 끌려다닐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던 열린우리당의 송영길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12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 출연해 "협상 상대가 (TPA 시한 때문에) 서두르면 우리한테는 유리한 면이 있다"는 '새로운 논리'를 내세워, 여당은 여전히 TPA 시한을 감안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TPA를 이유로 조속한 협상을 부채질하는 건 정부·여당만이 아니다. 한미 FTA를 '경제교역의 비단길'이라고 지칭한 〈문화일보〉는 12일자 기사를 통해 "미국이 이번 FTA를 얼마나 중요시하는지는 미국 정·관계의 움직임에서도 감지된다. 미국 정부는 한미 FTA에 의회가 모든 권한을 행정부에 위임하는 TPA까지 부과했다"는 잘못된(무역촉진권한(TPA, Trade Promotion Authority)은 한미 FTA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며, 정부가 아니라 의회가 부여한다) 진술까지 해가며 시한 내 협상 완료를 은근히 부추겼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 관계자, 그리고 친(親) FTA 성향의 언론이 이처럼 TPA 시한을 들어 빠른 협상을 '채근'하는 것은 TPA의 본질과 기능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물론 '미국 일정에 왜 우리가 끌려다니냐'는 근본적인 문제가 여전히 우선 지적돼야겠지만, 협상 상대국의 제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이 협상에 나선 것 자체로도 정부가 '졸속' 시비를 피할 수 없게 돼 있다.

***미국 헌법에 따른 고육지책**

TPA는 미 행정부가 국제무역에 관한 협정을 맺어서 갖고 오면 상하원 본회의에서 90일 이내에 그 협정에 대한 이행법안을 상정해 수정안 없이 찬반투표만으로 가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규정이며, 1974년 무역개혁법에서 처음 도입된 신속처리절차(Fast Track)를 부시 행정부때부터 바꾸어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

미 헌법 1조 8절은 대외정책을 결정할 권한이 의회에 있음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행정부가 외국과 무역협정을 맺기 위해서는 의회로부터 협상권한을 위임받아야 한다.

그러나 과거에 의회가 행정부에 협상권한을 위임한 경우에도 의원들이 자기 지역구의 산업을 보호하고자 하는 경향 때문에 협상과정에 수시로 개입하는가 하면 최종 협정안까지도 자기 지역구에 유리한 방향으로 수정하려는 태도를 보임에 따라 '수정안 없이 가부투표만' 하는 신속처리절차를 도입하기에 이른 것이다.

국내 언론들은 이 절차를 두고 '의회가 무역협정의 전권을 행정부에게 주는 것'이라고 소개해 왔다. 정부와 여당도 이런 해석을 근거로 이 권한이 만료되기 전까지 협상을 끝내는 게 보호무역주의 성향을 갖고 있는 의회의 간섭을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이니 이런 방법을 채택해야 우리에 유리한 협상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거에 미 행정부가 부여받았던 신속처리권한(Fast Track Authority)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1994년 4월로 만료됐고, 그 후 8년4개월이 지난 2002년 8월에 TPA란 이름으로 다시 부활해 내년 6월 30일 만료된다. 그러나 상하원이 무역협정에 대해 검토하고 최종 찬반투표까지 하는 데 90일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법규정을 고려하면 그보다 앞선 내년 3월 31일이 사실상의 TPA 만료 시한인 셈이다.

***끝없는 협의와 자문…'전권' 표현이 무색**

그러나 의회가 행정부에 TPA를 부여함으로써 '외국과의 무역협정에 관한 전권을 주었다'고 말하는 것은 TPA에 의해 규정된 무역협상 과정 전체를 보지 않은 채 '수정안 없이 찬반투표만 한다'는 최종 단계 규정만을 확대해석한데 따른 오류다.

오히려 TPA는 '세밀한 이행절차'와 '단계별 요구사항'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고, TPA 아래서도 미 행정부는 무역협상 과정의 여러 단계에서 의회의 강력한 간섭을 받게 돼 있다. TPA는 또한 민간의 요구사항이 협상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수많은 절차를 만들어 놓고 있어 '행정부가 전권을 받았다'는 말을 무색케 하기에 충분하다.

TPA는 협상 이전 단계와 협상의 과정에서 행정부의 재량권을 제한하기 위해 ▲TPA가 유효한 기간 중이라 해도 협상에서 TPA 자체를 회수하는 결의안을 의회가 채택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 외에 ▲산업계의 우려와 피해보상 방안, 요구사항 등을 검토하는 협의와 자문의 절차 ▲실제 협상과 관련한 수시·연간·최종 보고서의 제출 ▲상대국과의 최종 타결안이 본회의에 상정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전체를 거부할 수 있는 권한 등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한미 FTA 협상에 임하는 미 의회의 일정에 대해서는 ☞ 관련기사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60330112050&s_menu=경제 참조)

이 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과정은 여러 가지 민간자문위원회와의 협의로, 이는 민간부문 대표자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자문위원회는 행정부에 무역협상의 목표와 수용 가능한 양보의 한계 등을 제시하며, 특수한 이익집단에는 행정적인 절차나 의원에 대한 직접적인 압력을 통해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이 민간자문위원회의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무역정책과 협상에 관한 자문위원회'로, 이 위원회에는 연방정부와 지방정부의 대표자를 포함해 노동, 산업, 농업, 소기업, 서비스업, 소매업, 소비자집단 대표 등 핵심영역 대표 45명이 참여해 각자 자신의 손익전망을 제시하고 조율한다. 이런 장치로 인해 미 행정부는 의회는 물론 민간과도 직접 접촉해 민간의 요구사항을 협상에 철저히 반영하게 되는 것이다.

민간자문위원회에는 이밖에도 ▲노동·산업·서비스·투자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무역대표부에서 임명하는 일반정책자문위 ▲부분·기능별 자문위 ▲연방정부와 지역정부의 정책자문위 등의 위원회가 있어, 미 행정부는 이들로부터 협상 목표에 대한 각종의 자문을 얻고 협의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상대국과의 협상이 끝났다 해도 갈 길은 아직 멀다. 미국 대통령은 무역협정에 최종 사인을 하기 90일 전에 협정체결 의사를 의회에 알리고 하원 세입위원회, 상원 재무위원회, 그리고 협정과 관련된 의회의 여러 위원회들과 또 한 번 협의해야 한다.

대통령이 협정에 사인을 한 뒤에도 미 행정부와 의회는 수많은 비공식 협의를 통해 이행법안(무역협정에 관한 국내법)을 마련하는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이 단계에서 의원들은 또 다시 무역개방 상황에서 피해를 입을만한 국내 산업을 보호하는 조치를 요구할 기회를 갖게 된다.

이처럼 한 번에 다 열거하기도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다단한 과정을 통해 미 행정부는 의회의 엄격한 감독을 받아가면서 외국과의 FTA 협상이나 관세 협상 등을 진행한다. 이렇게 보면 TPA 아래서 진행되는 미국의 대외 무역협상 전 과정 중에서 대통령에게 유리하거나 '전권'이라는 표현에 걸맞은 단계는 '수정안이 제출될 수 없다'는 규정이 적용되는 '의회에서의 최종 표결' 단계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군다나 부시 행정부에 들어와 이름이 바뀐 TPA에는 이같은 일반적인 요구사항 외에도 ▲상원 재정위, 하원 세입위 등을 중심으로 대통령과 협의하는 의회감독그룹의 구성 ▲협상개시 전 통보기간 90일로 확대 ▲농업·섬유 부분의 영향 평가 강화 ▲행정부가 불성실한 보고를 할 경우 권한 제한 등 의회와의 협의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미국 각계의 이익극대화를 위한 '멍석'**

무역협상 과정에서 미 행정부가 이처럼 의회의 강한 견제를 받게 된 것은 무역협정을 최종 비준할 권한이 의회에 있다는 미 헌법의 규정과 더불어 1970년대 이후 의회의 전문성과 영향력이 강화된 결과다.

1970년대 이후 무역협상에서 주도권을 회복하려 한 의회의 움직임은 당시 약화되던 미국의 무역경쟁력을 회복하고 국내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보호주의의 물결이 고조도면서 더욱 거세졌고, 이에 따라 무역정책에 있어서 기싸움을 하는 의회와 행정부 간에 균형을 되살리자는 취지로 1974년에 TPA의 전신인 신속처리절차가 마련되고 이에 따른 신속처리권한을 행정부에 부여하기에 이른 것이다.

신속처리권한(혹은 TPA)의 내용은 이처럼 행정부를 강하게 규정하는 것이지만, 1974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포함해 그 이후의 모든 대통령들이 의회로부터 이 권한을 부여받기 위해 노력했다. 부시 대통령도 2002년 의회에서 TPA가 가결된 직후 "역사적인 순간을 맞았다"며 환영해 마지않았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신속처리권한(혹은 TPA)을 부여받으려 한 것은 무역협상에 관한 '전권'을 쥘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세계적으로는 국가 간 무역경쟁이 심화되고 미 국내에서는 의회의 보호주의 성향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그런 권한마저 없다면 미 행정부가 다른 나라의 정부와 무역협상을 벌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TPA 없이 최종 협상안을 도출해 의회로 가져가면 의원들이 자기 지역구 주민과 자기를 후원하는 기업의 로비에 따라 수정안을 끝없이 요구할 게 뻔하고, 그렇게 되면 협상 상대국은 미 행정부와의 협상 자체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는 점에서 미 행정부는 신속처리권한(혹은 TPA)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러나 행정부에 위임해놓은 무역협상 권한을 다시 회수하려는 의회의 압력을 무시할 수 없었던 미 행정부와 정치권은 TPA라는 제도 속에 각 산업분야와 노동·환경 관련 단체들을 끌어들여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하기에 이른 것이다.

***협상준비 단계에서부터 밀릴 수밖에 없는 이유**

이처럼 미국의 TPA라는 제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정부와 여당이 TPA 만료시한을 이유로 한미 FTA를 조급히 추진하려고 하는 것은 이 제도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전제로 하고 있음이 금세 드러난다.

정부는 '선 대책, 후 협상'이 한미 FTA 협상의 원칙이라면서 "청와대의 경제정책수석실, 경제보좌관실, 외교보좌관실은 물론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에도 한미 FTA 추진과정이 보고됐다"(김종훈 수석대표)고 주장했고, 그 과정에서 철저한 대책 마련을 했다고도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TPA가 규정하고 있는 산업 및 민간부문과의 철저한 협의·조율 과정과 비교해볼 때, 우리 정부가 제대로 된 민간 공청회 한 번 열지 않은 상태에서 협상 개시를 선언한 데 이어 정부 고위급 회의 몇 번과 국책연구기관에서 낸 보고서 몇 편만을 가지고 대책을 세웠다고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며, 그러니 협상준비 단계에서부터 미국에 밀릴 수 밖에 없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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