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새벽〉이란 시집으로 유명한 노동시인이며 최근 인도네시아 북서부 분쟁지역인 아체를 다녀와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느린걸음)라는 책을 내기도 한 박노해 씨가 2일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를 찾았다.
박노해 씨는 미군기지 확장을 위한 토지 강제수용으로부터 대추리를 지키기 위해 주민들이 579일째 촛불행사를 벌이고 있는 대추분교의 비닐하우스를 찾아와 이곳 주민들을 격려하고 자신의 시 '봄은 누구에게나 봄이어야 한다'를 낭송했다.
***"대추리 어머님 아버님들 '다흐 기비들'!"**
박노해 씨는 "어머님 아버님들, 우리 소망이 올해도 내 땅에서 농사 짓자는 건데 얼마나 서럽고 분하시냐"면서 자신이 쿠르디스탄에 다녀온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는 "눈이 가슴까지 쌓인 흰 설원의 쿠르디스탄도 미국과 영국의 강력한 지원 아래 터키 군부독재가 2500만 터키 쿠르드인들을 억압하고 있는 곳"이라면서 "우리의 일제시대와 군사독재를 합친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쿠르드인들의 경우 힘든 일을 만나면 '산과 같아라'라는 뜻의 '다흐 기비들!'이라고 말한다면서 "미국의 막강한 힘과 정부의 무력 앞에서도 무릎 꿇지 않고 밤마다 이 얇은 비닐하우스 안에 모여 촛불을 밝혀 들고 평화의 농사를 지으시는 어머님 아버님들은 이미 자유의 산, 정의의 산, 평화의 산과 같다"고 격려했다.
이날 박노해 씨가 주민들 앞에서 낭송한 시는 다음과 같다.
(시는 글짜 색깔 다르게)
***봄은 누구에게나 봄이어야 한다**
우리의 소원은 부자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소원은 출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소원은 올해도 농사짓는 것이다
허리 숙여 불볕이랑을 기며
태풍 장마에 애간장을 졸이며
누구도 대신하고 싶지 않은 일
누구도 대신하고 싶지 않은 자리에서
올봄에도 내 땅에 씨뿌리는 것이다
누가 내 가난한 소망을 가로막는가
누가 내 소박한 봄날을 깨뜨리는가
누가 사람을 먹여 살려온 이 들녘에
사람을 죽이는 전쟁기지를 세우려 하는가
너희가 무력으로 내 땅을 강점하고
너희가 총칼로 내 봄을 짓밟는다면
이제 우리는 나라도 없다
이제 우리는 정의도 없다
미군의 민주주의
미군의 안보
미군의 권리에
내 땅에서 울부짖고 쓰러지고 쫓겨나는 나라라면
나라도 없는 우리는 이제부터 평화의 독립군이다
농사를 내려놓고, 삽도 호미도 내려놓고
먼저 평화의 농사를 짓겠다
쫓겨난 빈손으로 촛불을 들고
너희들의 미사일
너희들의 전투기
너희들 탐욕과 전쟁의 마음을
내 안에서 조용히 불사르겠다
불살라, 이 새싹같은 촛불을 들고
저 우는 들의 눈물을 기름부어
너희들 무기의 어둠을 불사르겠다
우리들 인간의 봄을 시작하겠다
이제 나라도 정의도 없는 우리는
미군의 총칼에 울부짖고
미군의 폭력에 피흘리는
지구마을 어린 것들을 보듬어 안고
국경 없는 평화의 봄을 꽃피우겠다
이 들녘에 떠오르는 아침해는
누구도 홀로 가질 수는 없듯이
이 들녘에 차오르는 봄은
누구도 홀로 맞을 수는 없듯이
대추리 도두리에도
전쟁의 바그다드에도
새만금에도
쿠르디스탄에도
봄은 어디에서나 봄이어야 한다
아아 봄은 누구에게나 봄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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