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잠에서 깬 우코크의 얼음공주**
1991년 여름 3개월간 우코크에서 발굴된 결과가 1994년 『베르떽 계곡의 고대 문화』라는 책으로 나온다. 이 때 처음으로 6000년 전 청동기시대부터 현대의 민속학에 이르기까지 우코크의 역사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이 공개되면서 우코크는 세상에서 빛을 보기 시작한다. 그 뒤 많은 발굴이 이어지고 10년도 안 지난 1998년 세계유산에까지 등록되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도대체 우코크의 무엇이 있어 온 세계가 이목을 집중하고 이렇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는가? 그것은 1993년 2000년간의 잠에서 깬 얼음공주 때문이었다.
발굴한 고고학자들은 보고서에 여자 제사장(女司祭)이라고 기록하였으나 당시 신문기자들이 '얼음공주'라는 제목을 붙여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기 때문에 아직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얼어붙은 무덤에서 공주의 미이라는 잘 보존되어 있었다. 이 젊은 여자는 하얀 피부를 가진 유럽인종이었으나 몇몇 인류학자들은 몽골인종의 특징이 섞여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공주의 머리는 복잡한 구조를 가진 가발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특별히 점토로 만든 덩어리에 주인공의 머리카락과 말갈기를 더해 덮었다. 머리는 세 갈래로 땋았는데 양 옆으로 2갈래, 뒤쪽으로 1갈래가 있었다. 그 딴 머리는 조각하여 금박을 입힌 나무장식으로 덮혀 있었다. 머리에는 나무로 된 사슴 꼴의 관과 청동 머리핀으로 장식되어 있고 이마 위에는 다른 사슴 꼴 장식이 있는데 모든 장신구들에는 금박이 붙어 있었다. 머리 장식 안쪽에는 작은 막대를 기워 지탱하고, 길고 까만 천으로 된 관이 꿰매져 있었다. 이 관은 나무로 만들어 금박을 입힌 작은 새로 장식되어 있다. 새를 장식한 관은 "생명의 나무"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공주의 목은 누워 있는 표범 꼴을 만든 장식품을 둘렀는데 역시 금박을 입혔다. 귀에는 금귀걸이와 작은 고리들을 달았다. 머리맡에는 중아아시아에서 온 고수풀의 씨앗이 담긴 돌접시가 있었다.
발굴한 고고학자들이 이 공주를 여자 제사장이라고 본 것은 몸에 새겨진 문신 때문이었다. 문신은 팔과 손가락을 덮고 있는데 환상적인 동물을 그리고 있다. 문신은 아주 정교하고 수준이 높다. 이런 문신을 가진 여성은 다른 모든 여성과는 떨어져 따로 다른 삶을 살았다고 보아야 하고, 이처럼 지워지지 않는 문신을 가진 여성은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어려운 지식과 능력을 소유한 여자일 것이라는 측면에서 여자 제사장으로 본 것이다.
우코크고원에서 발견된 이 젊은 여성 미이라를 보존하기 위해 인체 방부처리와 보존에 경험이 있는 모스크바 과학조사연구소로 보내져, 오랫동안 작업을 한 뒤 발견된 순간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관될 수 있었다. 현재 노보시비르스크 러시아 과학아케데미 시베리아분원(CO PAN, 쏘란)의 고고민족학연구소 박물관에는 악-알라하 3묘지 1호 꾸르간(얼음 공주), 베르흐-깔쥔 2묘지 3호 꾸르간(남성)에서 나온 미이라를 보관하고 있다. 나는 아카뎀고로독을 갈 때마다 만나는 얼음공주가 너무 애처롭게 보여 안타깝기 그지없다. 2000년이 넘게 평안히 잠들어 있던 공주를 못된 인간들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꺼내 모든 사람 앞에서 치부를 드러내게 하였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림 22) 여성 미이라(아카뎀고로독 고고민족학연구소 고고학박물관)
그림 23) 여성 미이라 문신(고고민족학연구소 고고학박물관)
그림 24) 얼음공주(1) (『알타이문명전』)
그림 25) 얼음공주(2) (『알타이문명전』)
그림 26) 얼음공주의 널방(얼음을 녹인 뒤) (『고대 알타이의 비밀』)
그림 27) 남성 미이라(아카뎀고로독 고고민족학연구소 고고학박물관)
***얼음 무덤에서 파낸 타임캡슐**
빠지리끄 사람들은 BC 6~2세기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역사로 치면 고조선시대의 사람들이 쓰던 모든 물건들이 땅속 냉장고에 숨겨져 있다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으니 이것이야말로 당시의 생활을 2000년 뒤에 알리기 위해 빠지리끄 사람들이 묻은 타임캡슐인 것이다.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나무, 두꺼운 펠트, 짐승 가죽, 금박 같은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갖가지 물건들을 만들었는데, 이러한 유물들은 바로 그들의 생활과 사상을 반영하여 주는 것이다.
빠지리끄의 예술은 다른 유라시아 스텝유목민의 예술과 마찬가지로 "동물 양식"이 많다. 이는 그들이 그리고자 했던 모든 정보를 동물의 모습을 통해서 구체화 시켰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당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특별히 좋아했던 것이며 비밀리에 전수되었던 것이다. 이런 동물에 대한 묘사는 어떤 예술품처럼 따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옷, 말갖춤, 일상용품에 장식하면서 응용되었다. 옷과 머리 장식에 나타난 여러 세트의 신화에 나오는 나무 조각상은 당시 사람들의 인종, 부족, 세습적 인척관계, 사회적 지위에 관한 완전한 정보를 주었다.
알타이 고대 사람들의 보편적이고 공통적인 세계관 가운데 하나가 3가지 세상, 곧 하늘, 땅, 땅속이다. 그리고 각 세상에는 나름대로 상징되는 사물을 그려냈는데 주로 동물, 물고기, 새들이었다. 하늘나라는 신이 사는 곳으로 새 모습으로 그렸다. 땅위나라는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어디나 소, 사슴 같은 동물을 그렸다. 땅속나라는 물고기, 뱀, 늑대를 그렸다. 이러한 상징은 빠지리끄 때도 그대로 이어졌다. 예술에 있어서 동물양식은 몇 가지 동물의 특징을 하나로 합성시키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방법을 통해 환상적인 창조물의 능력을 높였다. 예를 들면 알타이의 그리핀(griffin,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독수리 머리에 사자 몸)은 아래로 구부러진 커다란 부리, 야수의 귀, 원추형으로 솟은 장식과 갈기를 가진 새로 나타났다. 알타이 지역에서는 이러한 그리핀의 묘사가 너무 다양하여 빠지리끄 문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리핀의 모습은 살아 있는 동안은 물론 죽은 뒤에도 빠지리끄 사람들과 함께 하였다.
알타이 그리핀의 변형된 모습은 중국과 한국의 신화에 나오는 '불사조'와 닮았다. 불사조는 행복, 평온, 악령을 막아주는 마력을 가진 새다. 그러나 이런 새들만 죽은 자를 하늘나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아니다. 너무 높아서 다가갈 수 없는 만년설 가에 살고 있던 염소도 다른 세계의 심부름꾼으로 보였다. 염소 뿔에 대한 묘사는 말 모양의 목각과 머리 장식에 사용되었다. 말과 염소를 합쳐놓은 모습도 자주 나타난다. 말의 몸에 염소의 뿔과 그리핀의 부리를 가진 합성물은 사제의 문신이나 나무 조각품, 금속제품에 사용되었다. 빠지리끄 사람들은 자기들이 자주 보고 사냥했던 알타이 야생동물을 그렸다. 백조, 거위, 검은 새, 독수리 같은 새와 물고기뿐 아니라, 야생 염소와 양, 멧돼지, 사슴, 구름표범, 늑대와 때로는 토끼도 그렸다. 사람과 함께 사는 가축으로는 유일하게 말을 그렸다.
물고기는 빠지리끄 예술에 나타난 독창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물고기는 주로 두꺼운 펠트나 짐승가죽으로 만들었다. 물고기는 평면으로 그렸기 때문에 우리가 보는 것은 물고기의 윗면이다. 수많은 지느러미를 가진 물고기의 몸통은 그리핀의 모습으로 장식하였다. 이것은 실제 물고기를 그린 것이 아니라 지하세계를 상징하는 것이다. 빠지리끄 예술에는 식물 장식도 나타난다. 주로 두꺼운 펠트로 만든 말안장 덮개를 아름답게 장식한 4개의 꽃잎이 달린 식물이나 여러 가지로 변형된 연꽃이 옷과 말갖춤에 장식되었다. 고분에서 현악기도 발굴되었다. 이런 악기는 그 시대의 음악과 춤, 그리고 축제를 점치는 데 아주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그림 28) 얼음공주 꾸르간의 그리핀(『알타이문명전』)
그림 29 얼음공주 꾸르간의 물고기문양(『알타이문명전』)
***우코크에 대한 최근의 연구 성과**
2004년 4월 한국상고사학회 학술발표대회에서 우코크 발굴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고, 현재 러시아과학원 시베리아분원 부원장인 몰로딘 교수가 「러시아 남시베리아 알타이 우코크 고원의 파지릭 문화」란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논문에 몇 가지 최신 연구 성과가 있어 추려본다.
***1. 문신의 내용과 의미**
우코크 미이라에서 발견된 문신은 신화적인 의미를 가진 일종의 문서와 같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빠지리끄문화 미이라 3구의 문신에서 사슴 문신이 확인되었다. 이 사슴들은 모두 입이 새의 부리처럼 과장되고, 몸통은 둥그렇게 휘었으며, 거대하게 묘사된 큰 뿔의 끝에는 그리핀의 머리들이 달려 있다.
빠지리끄 주민들에게 문신은 일반적이었으며 문신된 동물의 수, 그 위치, 뜨는 방법 같은 것은 죽은 사람의 성별, 사회적 위치, 나아가 속해 있는 씨족공동체에 따라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2. 빠지리끄 사회에는 여성 무사가 존재했다**
우코크의 악-알라하 1호 여성 꾸르간에서 무기 세트가 발견되었다. 여성무사의 가능성은 문헌에도 나타난다. 일부 학자들은 빠지리끄문화의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월지족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높았다는 중국의 기록을 제시한다. 히포크라테스는 빠지리크문화와 같은 시기에 존재했던 사르마트족에 대해 "그들의 여성은 결혼하기 전 말을 타고 활을 쏘며, 창을 던지고 전쟁에 참여한다. 적 3명을 죽이지 못하면 결혼을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당시 젊은 여자들이 호전성을 보이는 것은 결혼하기 이전 아주 짧은 기간이기 때문에 무기가 부장된 여성 무덤이 아주 드물며, 가끔 발견되는 여성무사의 주인공도 주로 젊은 여성이었다.
***3. 빠지릭 사람들은 황인종과 백인종의 혼혈이었다**
우코크고원에서 인체의 근육조직 및 남녀 미이라가 발견됨에 따라 빠지리크문화를 비롯한 시베리아 원주민의 기원에 대한 더 정확한 자료를 얻게 되었다. 우코크에서 나온 근육 조직에 남아 있는 DNA 샘플을 분석하기 위해 생물학적 분자유전자 분석을 이용한 고성능 DNA 합성방법이 개발되었다.
미토콘드리아 DNA 유전자원에 대한 비교 유전진화학적 분석 결과 빠지리크문화의 주인공은 현재 서시베리아에 살고 있는 사모예드계 민족의 유전자와 비슷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빠지리크문화의 주인공이 중앙아시아에 사는 여러 집단과 유사성이 많았는데 특히 카자흐와 위구르족에 가까웠다. 형질인류학적 연구에 따르면 황인종과 유럽인종의 특징이 같이 나타나는 빠지리크 주민은 그 이전시기인 청동기시대 중기와 후기에 속하는 오꾸네보-까라꼴문화나 까라숙문화와 관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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