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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지대의 관문, 악따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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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경지대의 관문, 악따쉬

서길수 교수의 '알타이 답사기' 〈17〉

***국경지대의 관문 악따쉬(Ak-Tash)**

7월 5일(토), 오늘로 이번 탐사도 일주일(7일)이 된다. 귀밑이 가려워 여러 번 깼다. 너무 괴로워 4시 반쯤 일어나버리려고 했으나 밖이 어두워 참다가 6시에 일어났다. 텐트 밖에 나가니 부지런한 풀르스닌 교수가 벌써 일어나 산보를 하고 있다. 조금 있다 이리나가 일어나 아침밥 준비에 들어가고, 이어서 꾸 교수가 버너를 작동시켜 불을 지핀다. 끼니 때마다 꾸 교수는 맨 먼저 버너 불을 지피는 일을 맡는다. 이번 답사에서 꾸 교수는 탐사단 대장으로, 모든 안내를 책임지는 세르파로, 가장 권위 있는 고고학자로, 지칠 줄 모르는 운전사로, 그리고 식사준비 때는 오래된 석유 버너에 불 피우는 신병으로(다른 사람은 아무도 그 버너를 못 다룬다) 모든 일을 맡아서 하지만 한 번도 짜증 내지 않고 항상 웃고 누구에게나 살갑게 대하는 감동적인 인물이었다. 나는 카메라 다리를 꺼내 들고 알타이에 떠오르는 해돋이를 찍으러 나섰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깔박-따쉬를 떠나기 전 다시 한 번 바위산에 올랐는데 햇빛을 옆에서 받아 바위그림의 선들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제사터에 가서 꾸바레프 교수의 인터뷰를 녹화했다. 가능한 한 완전한 기록을 하기 위해 중요한 고고학 사이트에서는 반드시 꾸바레프 교수에게 인터뷰를 부탁했는데 항상 진지하게 응해 주었다. 나중에 귀중한 자료가 되리라 믿는다. 3일간 깔박-따쉬에서 야영하면서 매일 한 번씩은 올라간 바위그림 전시장을 떠난다.

그림 1) 깔박-따쉬의 제사터
그림 2) 황색인종과 백색인종 대표

10시 세르페크(919m, N50°22'809", E87°01'324")에서 잠깐 휴식하였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흘러 내려오는 곳인데 손이 얼얼할 정도로 차고 수량도 풍부하다. 바로 벨르이 봄(Belyi Bom)이란 자그마한 마을이다. 벨르이란 러시아말로 하얗다는 것을 뜻하고 '봄'은 알타이말로 '강가 바위를 깎아낸 길'이란 뜻이다. 쉽게 얘기하면 '하얀 절벽'이 된다. 그러니까 이곳 지명은 현지 언어인 '봄(절벽)'과 러시아말인 '벨르이(하얀)'를 섞어서 만든 것이고 원래는 뚜르크말로 '악봄(Ak-Bom)'이라고 한다. 이 '하얀 절벽'은 추야도로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옛날 몽골과 무역을 한 상인들이 말 두 필을 한꺼번에 끌고 갈 수 없어 어려움을 겪었던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강가 높은 벽을 절묘하게 깎아 길을 냈는데, 마치 큰 상처처럼 흉하게 남아 있다. 그 옆에 돌로 쌓은 옛길이 남아있는데 자세하게 찾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렵다.

벨르이봄 가까이(761㎞ 지점) 추야강에 무서운 급류 가운데 하나인 비기못이 있다. 강 사이로 다리가 놓여 있고, 바로 여기서 매년 전 러시아 레프팅대회인 "추야-렐리"가 열린다. 이 대회 때는 많은 선수들과 관광객들이 모이기 때문에 좋은 시설은 아니지만 카페와 목욕탕이 있다.

하얀 절벽을 바로 벗어나 높은 곳에서 벨르이 봄과 추야강이 만들어내는 경치를 촬영하였다. 강가 초원에는 여기저기 꾸르간들이 쉽게 눈에 띈다.

그림 3) 하얀절벽에 난 길. 강 건너 초원에는 2개의 꾸르간이 보인다.

11시, 추야강을 따라 가는 도로는 계속 올라가더니 이미 해발 1200m를 넘어선다. 도로 주위의 산들이 험한 산의 모습으로 바뀌면서 멀리 북추야산맥(Syebyero-Chuiskii Khrebet)의 연봉 가운데 하나인 꾸르꾸렉(Kurkurek) 산의 만년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어서 783km 지점의 치빗(Chibit)을 지나면서 강의 폭이 줄어든다. 치빗에서부터는 추야강을 떠나 지류인 치빗강을 따라 악따쉬로 간다. 추야강이 북추야 산맥의 거봉들과 2,264m의 벨께넥(Belkenek) 산 사이의 협곡을 지나가기 때문에 길을 낼 수가 없어 비교적 완만한 비칫강을 따라 추야도록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길은 다시 추야강을 만나게 된다. 그러니까 벨께넥산은 두 강 사이에 마치 섬처럼 높이 솟아있는 것이다. 11시 5분 악따쉬(789km, 1305m, N50°18'629", E87°34'863")에 도착하였다.

악따쉬를 알타이어로 번역하면 "흰(Ak) 돌(Tash)"이라는 뜻이다. 이 도시는 수은광산이 가까워 생긴 광부 마을이었는데, '90년대 초 광산은 이미 문을 닫았다. 마을 건축의 기초는 임시 2층 집에서 시작되었는데 제법 큰 건물도 있고 규모가 있는 마을이다. 몇 개의 가게들과 시장(야채, 과일, 중국제 물건들)이 생겼다. 길가에서 옷가지를 팔고 있는 아주머니와 아이를 안고 있는 할머니, 모두 알타이인들이다. 갈수록 러시아인보다는 알타이인들이 많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행정기관, 전화국, 그리고 작지만 여관도 있고, 특히 국경지대인 따샨타로 갈 때는 통행증을 받는 곳이기 때문에 이곳은 국경지대로 들어가는 관문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의무를 다 하지 않아 뒤에 우코크 고원에서 큰 곤혹을 치렀다.

악따쉬는 독특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마을 앞에는 넓은 초원이 시원하게 깔려 있고 한 쪽에 자연잔디 축구장이 있어 이채롭다. 초원을 지나 치빗강 건너에 하늘을 찌르듯 솟아있는 벨께넥산에는 전나무와 이깔나무가 아주 건강하고 왕성하게 덮여있다. 그러나 이런 식물계는 꾸라이를 지나며 초원으로 변하다가 꼬쉬아가치를 지날 때면 황량한 사막으로 완전히 바뀌어버린다.

이곳은 유명한 빠지리끄 무덤으로 가는 길의 시작점이란 점에서 교통상의 요지이기도 하다. 표지만을 보면 악타쉬~따샨타(125km)/ 악타쉬~울라간(56km)으로 되어 있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노보시비리스크~악타쉬(791km)/ 악타쉬~노보시비리스크(785km)로 표지판 거리에 차이가 난다.

***꾸라이문화를 이룬 고원함지땅 꾸라이스텝**

우리는 악따쉬에서 차에 기름을 넣고 전화국에 가서 전화를 하는 등 산악지대로 들어갈 준비를 철저하게 한 뒤 12시 40분 출발하였다. 떠나서 20분쯤 가니 꼬쉬-아가치 라이온(군) 표지판(812~813km 지점)이 나타난다. 여기서 몽골과 국경을 잇고 있는 마지막 라이온 꼬쉬-아가치가 시작되는 것이다. 꼬쉬-아가치는 넓이가 553㎢로 알타이공화국에서 가장 넓은 땅을 가지고 있으나 인구가 16,200명밖에 되지 않고 인구밀도가 0.8명으로 가장 낮은 라이온 가운데 하나이다.

악따쉬에서 꾸라이까지 1시간 쯤 가는 동안에 노보시비리스크에서 800㎞ 되는 지점에서 바라보는 북추야산맥의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그림이다. 바로 유명한 악뚜루의 빙하와 설봉들이 파란 하늘에 적당히 깔린 구름을 바탕으로 산과 산 사이에 나타나는데 정말 절경이다. 돌아오면서 꼭 차를 세워 촬영하려고 마음먹었다.

13시 25분, 꾸라이 도착 직전 조그만 도랑물이 흐르는 잇깔나무 숲(1548m, N50°14'986", E87°53'568")에서 낮밥을 해먹었다. 알타이를 무대로 40년간 발굴을 해 온 꾸바레프 교수는 밥해 먹을 곳, 야영할 곳 들을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시간과 장소에 따라 아주 적절한 곳을 찾아낸다. 이곳도 깨끗한 물이 흐르고 햇빛은 아주 따갑지만 바람은 시원한 최상의 장소이다.

낮밥 먹고 출발하여 고개 하나 넘으니 바로 끝없이 펼쳐지는 꾸라이스텝이 나타난다. 꾸라이스텝은 둘레가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함지땅(盆地)으로 높이가 해발 1500~1600m나 되는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이 높은 함지땅을 가로질러 추야강이 역사의 증인처럼 흐르고 있다. 꾸라이스텝은 혹독한 스텝(steppe)기후로 유명하다. 스텝기후란 사막 주변지대에서 볼 수 있는 기후로 사막보다는 비가 조금 더 내리지만 건조하고 아주 짧은 풀만 자라는 곳을 말한다. 꾸라이는 겨울과 여름의 연교차가 엄청나게 심할 뿐만 아니라 낮과 밤의 일교차도 아주 높다. 이것은 높은 스텝지역이라는 지형 때문이기도 하지만 맑은 하늘에도 급격히 차가와지는 대기 때문에 생기는 독특한 현상이다. 추야 스텝까지 다 가지 않아도 벌써 건조한 몽골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다. 주위에는 식물이 드물고 초원이라고 하지만 아주 건조할 때는 누렇게 말라버리는 아주 빈약한 초원이다.

그림 4) 꾸라이 스텝(2005년 헬기 답사 사진)

추야도로는 작고 굵은 조약돌이 전면에 깔려 있는 건조한 꾸라이스텝을 지나간다. 꾸라이스텝에서 도로 주변을 돌아보면 황량한 스텝의 왼쪽에는 아름다운 장밋빛 절벽이 이어지고, 오른쪽에는 북추야산맥의 눈 덮인 봉우리들이 이어져 있다. 사막처럼 건조한 곳에서 만년설이 덮인 꾸르꾸렌 봉우리(3,982m)를 바라보는 것은 아주 특이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만년설 아래 있는 유명한 악뚜루(Akturu) 산악캠프는 마지막 3차 답사를 다룰 때 다시 보기로 한다. 3차 답사는 헬기로 다녔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정이었다. 2시 25분, 악타쉬에서 40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꾸라이(Kurai, 826km 지점)란 작은 마을을 지나간다. 예전에 이 마을에는 대규모 지질학 탐사단이 작업을 했다고 한다. 지나는 차들이 거의 없다.

분지가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꾸르간과 선돌들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추야대로 "843km" 표지판 지점 오른쪽에 이미 발굴을 마친 몇 개의 큰 무덤이 나타난다. 발굴 결과 뚜르크시대의 무덤이라는 것이 밝혀졌는데 꾸라이문화라고 이름 붙였다. 꾸라이문화의 무덤 한 곳에서 귀족 신분의 뚜르크인 유골이 3마리의 죽은 말과 함께 발견되었다. 아울러 은 항아리와 룬문자가 쓰인 허리장식이 나왔다. 추야강 왼쪽 강변에서 뚜르크시대 예술을 상징하는 아주 귀한 돌사람이 하나 발견되었는데 고대 명인의 완벽한 걸작이었다. 얼굴의 윤곽을 훌륭하게 표현하고, 준엄한 군인의 턱수염과 콧수염을 붙였으며, 귀에는 고리로 만든 귀걸이가 있고, 손을 구부려 오른손으로 그릇을 잡고 있는데 높이는 1.6m, 허리부분 두께가 0.75m이다. 아쉽게도 이 돌사람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볼 수 없고, 알타이공화국 향토지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우리는 꾸라이스텝을 지나자 얼마 안가 차간우즈(Chagan-Uzun, 1,773m, N50°02'400", E88°29'954")란 마을을 지나간다. 마을을 지나면서부터 민둥산이 시작되며 황량한 경치가 나타나고 길도 곳곳이 포장이 안 된 도로이다. 그리고 870km 표지판을 지나면서부터는 완전히 사막 기분이 든 고원지역 풍경이 나타난다. 바로 '추야스텝'이 시작되는 것으로, 여기서부터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지금까지 지나온 지역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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