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인도가 지난 2일 전격적으로 합의한 핵 협력 협정은 핵무기의 수평적·수직적 확산을 막기 위해 지난 1970년 만들어진 핵무기비확산조약(NPT) 체제의 역사를 새로 쓰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도의 22개 핵시설 가운데 민수용에 대해서는 국제사찰을 하는 대신 8개 군수용 시설을 불문에 붙이겠다는 것은 인도를 핵보유국으로 사실상 인정한 것이어서, NPT 체제 하에서 핵보유국으로 공식 인정되는 나라가 5개국(미국, 러시아, 영국, 중국, 프랑스)에서 6개국으로 늘어났다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동안 NPT에 가입조차 하지 않았던 인도를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것에 대해서는 '일단 만들어 놓으면 인정을 받는다'는 잘못된 선례를 남겼다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게 됐고 그렇잖아도 한계가 많던 NPT 체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낳게 한다.
***NPT의 태생적인 불평등성**
NPT는 원자력의 무기화를 방지하고 평화적인 사용을 권장하기 위해 1957년에 설립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무기 확산 방지조치에도 불구하고 프랑스(1960년)와 중국(1964년)이 핵개발에 성공하자 위기감을 느낀 미국과 소련이 공동 제안해 1970년 발효시킨 조약이다.
NPT는 체결 당시 핵무기를 가진 5개 나라(유엔 상임위와 일치)의 핵보유 권리를 배타적으로 인정하고 IAEA의 사찰 의무를 면제해 주면서도, 핵 비보유국이 핵무기를 만들거나 갖지 못하도록 해 대표적인 불평등 조약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또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이란, 북한 등의 핵 개발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응책 없이 강대국의 군사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들쭉날쭉한 대응으로 일관해 왔다는 비난도 받아 왔다. 인도, 이스라엘, 파키스탄은 이 조약에 가입조차 하지 않았고 북한은 1993년 탈퇴했다.
그러나 이같은 근본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NPT가 그동안 핵확산을 막는 현실적인 장치였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비핵국에 대한 핵무기·핵폭발장치·핵물질의 양도와 인수를 금하면서 IAEA와 안전조치 협정을 체결하고 사찰을 받도록 해 핵무기 확산 방지에서 강제력을 발휘해 왔기 때문이다.
또 비핵국들이 원자력을 이용한 에너지를 원한다면 사찰을 전제로 평화적 핵 이용을 가능케 해 비밀 핵 개발의 유혹을 상쇄하는 기능도 해 왔다.
지난 1995년 뉴욕에서 열린 NPT 평가회의에서 당시 178개 가입국 중 상당수가 이 조약의 무기한 연장을 승인한 것은 국제사회가 NPT의 효용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뜻한다.
***미국, 핵 보유국 중 맨 마지막으로 인도 인정**
러시아, 프랑스, 중국, 영국은 이같은 NPT의 역사 속에서 배타적인 핵 보유권을 인정받아 왔다는 점에서 이번 미-인도 핵협정에 대해 불만을 제기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이 나라들은 오히려 한 목소리로 반색하고 나섰는데, 이는 NPT 발효 4년 후인 1974년 핵실험에 성공한 인도가 그간 이들 나라와의 지속적인 핵 협력을 진행시켜 오면서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협정 직후 "미국과 인도의 핵 협력은 반드시 NPT에 근거해야 하고 이를 따르는 것은 각 나라의 의무"라는 중국의 불만 어린 목소리가 있긴 했지만, 인도와의 관계 악화를 바라지 않는 중국 입장에서 더 이상의 반대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결국 이번 협정으로 미국은 인도의 핵 개발에 대해 마지막으로 인정해준 핵보유국인 된 셈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이번 협정으로 인도는 NPT에 가입하지도 않은 채 '6대 핵 강국'이라는 '특별 지위(special status)'를 획득한 '인도 핵 외교의 승리'라고 평가하고 있다.
***'인도-중국-러시아' 축에 위기 느낀 미국**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소의 김학린 상임연구위원은 "인도는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무슬림이 많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부시 미국 대통령이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며 미국이 인도를 제외하고 세계 패권을 유지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판단에서 이번 협정을 맺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협정이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용이며, 미국-일본-인도에 이르는 횡축과 러시아-중국의 종축 간의 국제적인 대결구도가 형성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김 연구위원은 "인도는 수십 년간 중국, 러시아와 관계를 가져 왔기 때문에 미국이 인도를 포섭하지 못하면 오히려 인도-중국-러시아 축이 만들어져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는 데 장애가 발생한다"며 그같은 분석은 '단견'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김 연구위원은 "인도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강국이기 때문에 일본처럼 미국의 하부 동맹으로 포섭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러시아, 중국, 유럽과 '동급'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인도가 이번 협정을 기화로 NPT에 가입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이미 '6대 핵강국'의 반열에 오르고 미국의 인정까지 받은 인도의 NPT 가입 여부가 그다지 특별한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NPT 체제 자체가 흔들릴 경우 수많은 한계 속에서도 유지돼 왔던 국제 핵 질서가 그것을 직접 만든 핵 보유국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붕괴되어 '핵 도미노' 현상까지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이란과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해 극도의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는 핵 강국들이 어떤 명분으로 이 두 나라의 핵 개발을 저지하려 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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