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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을 백남준 답게 기리는 길은?

[다시 책갈피를 펴며] 이용우의 〈백남준 그 치열한 삶과 예술〉

천재는 타고나는 것인가?

가드너와 같은 심리학자들은 창의력은 개인만의 능력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창의력은 그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현장(field)과 더 넓은 문화영역(domain)이 상호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를 최근 타계한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고 백남준에게 적용해보면 그는 서구 예술계의 문화적 풍토가 길러낸 인재인 셈이다.

그렇다면 서구인들은 왜 백남준을 '동양에서 온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며 열광했던 것일까? 콘서트에서 도끼로 피아노를 부수고, 관객의 넥타이를 자르고, 샴푸 거품을 들이붓고, 피가 뚝뚝 흐르는 소머리를 극장 문에 걸거나 예술적 동반자인 샬롯 무어만을 나신의 첼로 연주자로 만든 그의 퍼포먼스는 무엇에 연원하는 것일까? 물론 이같은 그의 기행들은 "예술은 고등 사기"라는 어록과 함께 '신화'가 되었다.

그 신화의 이유가 궁금하다면 〈백남준 그 치열한 삶과 예술〉(열음사)을 다시 들춰봐도 좋을 것 같다. 2000년에 초판이 나오고 지난해 여름 2쇄를 찍은 이 책이 최근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미술평론가 이용우 씨가 쓴 이 책은 출판된 지 5년도 넘었지만 백남준을 이해하는 길목에 놓인, 국내에 몇 안 되는 아주 요긴한 징검다리 같은 안내서다. 6.25 동란 중에 한국 땅을 떠난 백남준이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빛과 색채의 궁극을 지향했으며 그 결과 한 예술 장르의 창시자로 자신만의 성좌(星座)를 마련하기에 이르렀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서구 '전위예술'의 선두에 섰던 백남준**

백남준은 서구의 젊은이들 사이에 저항문화가 풍미했던 1960년대 독일의 전위예술 그룹 '플럭서스(Fluxus) 운동'의 세례를 받은 뚝심 있는 젊은이였다. 플럭서스는 미국의 건축가였던 조지 마치우나스가 발행한 잡지 이름에서 차용된 라틴어로 '흐름'이란 뜻이다.

플럭서스 예술은 의외성을 수반하는 다양한 퍼포먼스와 함께 예술의 오리지널이 갖는 상품성을 거부하며 미술품의 엄청난 가격을 조롱하는 장난감 오브제와 같은 작품들로 유명하다.

이들 아방가르드 계열의 예술가들은 한 예술작품이 태어나는 프로세스의 미학을 중시했던 것이다. 예술은 작업과정이 중요하며 이미 생산된 완성품은 제도권 기관이나 자본가에 의해 소장되는 상품에 지나지 않는다고 봤던 것이다.

백남준의 '전설 같은' 퍼포먼스들은 '천재의 기행'이라기보다는 이러한 1960년대 해방문화를 토대로 이뤄진 것이었다. 다만 당시 사람들은 그의 한 발자욱 더 나간, 허를 찌르는 과격함을 '기발함과 창조적 발상'으로서 사랑했을 뿐이다.

***"백남준의 예술은 재미있다"**

〈TV부처〉, 〈TV침대〉, 〈TV십자가〉, 〈TV안경〉…. 텔레비전 모니터를 붓 삼아 3차원의 공간에 자유롭게 유희했던 그는 급기야 〈TV브라〉, 〈TV페니스〉를 만들며 'TV의 신체화'에까지 도전한다.

그의 예술적 동반자였던 샬롯 무어만이 상의를 벗은 채 3인치짜리 소형 텔레비전을 양쪽 가슴에 매고 첼로를 연주하는 퍼포먼스는 무어만의 신체적 아름다움과 함께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라는 기발한 제목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가장 사적인 공간에 과학기술을 사용하는 퍼포먼스는 '인간과 기술이 얼마든지 예술의 이름으로 만날 수 있다'는 그의 예술철학과 '인간이 일방적으로 기술에 지배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낙천성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작품들이 인간이 주체적으로 기술을 사용하기 위한 상상력과 환상을 자극하는 촉매가 되길 바랐으며 종종 "어떤 기술도 인간화되지 못하면 기술종속에서 벗어날 수 없고 예술 또한 인간화되지 못하면 예술을 위한 예술로 전락할 뿐"이라며 '인간화된 기술, 인간화된 예술'을 주장하곤 했다.

'기술 지배'를 두려워 하는 현대인들에게 '에이~, 결국 인간이 만든 거잖아. 뭘 그렇게 무서워해?'라며 싱긋 웃는듯한 그의 작품들을 두고 저자가 "재미와 함께 치유의 기능이 엿보인다"고 평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애국하면 망한다"**

살아 생전에 공공연히 "애국하면 망한다. 내가 더 좋은 예술가가 되는 것이 곧 애국"이라고 했던 것은 서방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그의 생존전략이기도 했다. 이러한 세계주의자 백남준에 대해 우리가 최근 갑작스럽게,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혈통적 애정'을 보이는 것을 죽은 백남준이 안다면 뭐라고 말할까?

그는 생전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만든 텔레비전은 항상 재미있는 것도 아니지만 항상 재미없는 것도 아니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자연이 항상 아름답게 변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변하기 때문인 것처럼. 내 텔레비전에서 질(quality)이란 말은 가치(value)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개성(character)을 의미한다. A와 B가 다르다는 것은 A가 B보다 낫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빨간 사과가 필요하지만 가끔 빨간 입술도 필요하다."

이렇게 천방지축인 것 같기도 하고 천의무봉인 것 같기도 한 한 예술가는 갔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가 혈통적으로 한국인이었음을 떠벌리기보다 그냥 세계인으로 남도록 내버려두고, 그렇게 하고 나서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그의 자유로운 예술혼을 한번 음미해보는 정도가 백남준을 훨씬 백남준 답게 기리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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