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화와 상징의 대량 소비: 중독과 습관**
영화 〈왕의 남자〉가 1000만 명 관객동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읽으면서 "1000만 명"이라는 숫자의 의미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아직 1000만 명 안에 못 들었다는 것이다. 1000만 명이라면 중복관람이 어느 정도 있다 하더라도 한국 인구의 약 4분의 1이 이 영화를 보았다는 것인데, 특히 이 영화가 15세 관람가의 판정을 받은 영화이므로 1000만이라는 숫자는 정말 경이적인 숫자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아직 그 1000만에 끼지 못했으니 뭔가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 같은 불안감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 생각에 이 영화를 보러 가려는 결심(?)을 하는 이들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1000만이라는 숫자에 대해 두 번째로 든 생각은 한국 영화의 경쟁력도 경쟁력이지만 그것보다는 한국 영화시장에 대한 매력이다. 한 영화에 1000만이라는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 시장이라면 영화를 가지고 밥 벌어 먹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놓치기 아까운, 군침이 도는 시장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영화시장의 규모가 할리우드가 있는 미국의 약 10분의 1 정도 되는 것으로 계산되는데 그리고 나날이 성장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영화시장을 보고 군침을 안 흘릴 영화 사업가가 어디 있겠는가?
한편 1000만이라는 관객동원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그리고 2002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의 열풍과 그 이후 생겨난 다양한 동원문화(촛불시위, 광화문, 시청 앞 정치 동원 등)와 연관하여 생각해 보면 문화 콘텐츠, 상징에 대한 한국 국민의 소비수준이 가히 폭발적인 것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느낌이 항상 객관적, 실증적인 증거가 될 수는 없다). 하나의 상품에 대해서 순식간에 몇 백만에서 천만 인구가 귀찮음을 불사하고 직접 가서 돈을 내면서 소비할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비교될 수 있는 것은 얼마 전 미국의 1억2000만 인구가 관람했다는 수퍼보울 경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중 대부분은 편안하게 TV로 시청한 인구일 것이며 직접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숫자는 운동장 수용능력의 한계 때문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화와 상징을 간접적인 비용을 들여 소비했다는 점에서는 영화의 소비와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수퍼보울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소비구조를 가지고 있는 비슷한 산업이 영화나 엔터테인먼트 이외에 스포츠 산업이 있다. 이 스포츠 상품이라는 것은 '시즌'이라는 이름으로 정기적으로 판매되고, 또 따라서 정기적으로 상품을 구매하게 된다. 특히 유명하고 큰 경기들은 폭발적인 관객동원을 기록하게 되며 이 상품의 특징은 열성 팬들이 있어서 귀찮음을 무릅쓰고 직접 가서 소비하려는 강한 중독성을 보인다. 우리가 정기적으로 구매하는 상품 중에 '식사'라는 것이 있는데 '시즌'을 정해 놓고 폭식을 하는 것(배탈이 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과 그것이 아니면 기념일마다 비싼 레스토랑에서 이벤트를 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다.
또 다른 유사 산업이 '다이어트 피트니스 산업'이다. 이 산업 역시 몸 만드는 '시즌'을 정해 놓고 상품을 지속적으로 구매하게 하는 것인데 웰빙이라는 이름으로 최근 한국에서도 폭발적인 산업의 중흥기를 열고 있다. 이 역시 귀찮음을 불사하고 구매하는 소비구조인데 서울에 사시는 분들은 여의도 강변이나 근처 공원에서 그 귀찮음을 즐거움으로 승화시켜려고 애쓰는 수많은 사람들을 특히 휴일이나 주말에 목격하게 된다. 날로 늘어나는 헬쓰장, 요가 피트니스 클럽 등이 그러한 귀찮음의 열성적인 소비를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시장은 민주화 운동, 산업화 새마을 운동, 유신 반공운동이라는 동원문화에 익숙해서 그런지 한국 국민들이 이러한 동원의 습관을 다시 문화 콘텐츠, 정치상징 시장으로의 폭발적인 동원으로 연결시켜 앞에서 언급한 산업의 기업들에게는 매우 군침이 도는 시장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광장과 극장과 거리로 모이는 것에 있어서 한국 사람들은 둘째 가라면 서러울 것이다.
***2. 신 성장동력으로서의 문화, 상징산업과 무역장벽**
위에서 언급한 모든 산업들의 특징은 첫째로는 신종산업, 보다 멋있게 표현하면 새로운 선도산업(New Leading Sector)이며, 둘째로는 상당부분 상징을 소비하는 산업이고, 셋째로는 습관적으로 그리고 중독성을 가지고 소비하는 산업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산업에 상당히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엄청난 생산력을 갖게 된 자본주의 기업들이 소비자로 하여금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중독성을 가지고 소비하게 만드는 산업들이기 때문에 과잉생산에 대한 걱정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낮은 임금으로 경쟁력을 갖는 제조업 분야의 경쟁력이 중국과 인도 등에 밀리기 시작한 한국 및 선진국들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산업이 앞으로의 성장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좀 더 분석적인 논의는 필자의 미래연 졸고, "스피드 3" 참조)
이 문화 콘텐츠, 상징 시장의 무역에는 상당히 특수한 형태의 무역장벽이 생긴다. 과거 미국과 일본 간에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른바 비관세장벽(Non-Tariff Barriers, NTBs)의 한 형태라고 볼 수도 있는데 상징에 대한 '소비성향'의 습관화, 즉 '문화' 혹은 '문화적 정향'이 무역장벽이 되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문화적 습관과 맞지 않으면 잘 안 팔린다는 의미다. 주지하듯이 이러한 문화적 요인이 이전에도 마케팅의 분야에서 전통산업의 상품을 판매하기 위하여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이제는 상품자체가 '문화'이다보니 문화적 습관이 전통산업에 비하여 월등히 중요해진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미국은 엄청난 무역장벽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즉 미국인들의 문화적 소비 패턴을 보면 엄청나게 미국적이다. 대다수의 국민이 해외여행을 해 본 경험이 없고, 심지어 아시아의 특정 국가를 지도에서 제대로 찍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국가에서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 이외에 딱히 상영되거나 히트를 치는 영화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유럽적인 문화는 괜찮은 편이다. 아시아 영화는 특정 매니아 층이나 아시아계 미국인을 제외하고는 잘 팔리지 않는다. 스포츠 시장에 있어서도 전 세계가 열광하는 월드컵이나 발로 하는 축구에 미국인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전 세계에 별로 잘 알려지지 않은 미식축구나 야구에 열광하는 미국인들은 너무나도 미국적이다. 대중음악에 있어서도 미국적이지 않은 음악이 미국 시장을 파고들기는 엄청나게 어렵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외는 어디까지 예외이지 체계적인 흐름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비교적 예외에서 출발하여 보편적인 흐름을 만들어 낸 문화 수출품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산업이 아닐까 한다).
자유무역, 공정무역을 논할 때 흔히 쓰는 개념 중에 'Level playing field'라는 것이 있다. 즉 평평한 땅에서 서로 싸움을 하자는 것인데 한쪽이 위에 있고 다른 쪽이 아래에 있으면 아래에 있는 쪽이 불리하다는 비유다. 즉 서로 무역장벽을 없애고 공평하게 무역을 하자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러한 'level playing field'는 시장을 마음껏 열어 놓는다고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특히 신 성장동력인, 차세대 선도산업인, 지식 문화 콘텐츠 산업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상대편이 우리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고, 또 관심도 없고, 또 그러한 부정적인 습관이 뿌리 깊을 때, 반면 우리는 상대편 문화에 너무나도 익숙하고, 또 관심도 많고, 그리고 그러한 습관이 생겨나 있을 때 양쪽의 문화시장을 똑 같이 열어 놓는다면 어느 쪽 산업이 죽고 어느 쪽 산업이 살 것인가? 우리 산업은 이른바 위를 올려다보면서 싸우는 'uphill battle'이 될 것이다.
***3. 한국 문화 상징산업 정책: 내수 시장만으로 성장동력 가능한가?**
문화콘텐츠, 상징 산업의 경우 문화적 습관의 경로의존성 때문에 한번 이러한 시장이 형성되어 버리면 습관과 취향을 바꾸기가 어려워 좀처럼 파고들기 어렵다. (설날마다 하는 결의가 항상 작심삼일로 끝나는 이유가 바로 습관을 고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의 문화, 영화, 상징산업은 할리우드 영화와 서구문화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우리도 재미있는, 대중적으로 관심을 가질 만한 경쟁력 있는 문화를 만들고 상품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내용은 한국을 주제로 하고 또 한국말을 쓰고 있지만 어쩐지 느낌이 아직까지 매우 할리우드적이다. 우리도 그들이 하는 만큼 연기하고, 그들이 하는 만큼 영상미를 낼 수 있고, 그들이 하는 만큼 특수효과를 처리할 수 있으며, 그들이 하는 만큼 시나리오의 완결성을 가질 수 있고, 그들이 하는 만큼 랩을 하고, 그들이 하는 만큼 힙합댄스를 추고, 그들이 하는 만큼 야한 노출과 그들이 하는 만큼 몸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저들은 이러한 우리의 상품이 자기들을 흉내 낼 뿐이고, 또 매우 생소하고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내용과 소재와 정서를 가지고 만들어지기 때문에 호기심 이상의 관심을 갖기 어렵다. 최근 우리의 스타 "비"가 미국에서 공연한 후 미국의 전문가들이 지적한 비판의 핵심이 바로 이러한 것 아닌가? (즉 자기들의 아류이고 꽤 흉내를 잘 낸다는 정도….) 아주 음모론적으로 생각하면 한국과 미국의 문화시장이 Level playing field라는 것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일부러 비를 미국에 초청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국 문화 상품의 보편성의 문제다. 우리는, 그리고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수퍼맨을 알고, 스파이더맨을 알고, 해리포터를 알고, 다빈치 코드를 알고, 톰 크루즈를 알고,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알고, 안젤리나 졸리를 알고, 모차르트를 알고, 셰익스피어를 알고, 안델센을 알고, 007과 CIA, FBI를 알지만 저들은 일지매를 모르고 홍길동을 모르고 유신시대를 모르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영원한 제국을 모르고, 장동건을 모르고, 이영애를 모르고, 동방신기와 GOD를 모르고, 한국의 중앙정보부와 국정원을 모른다. 즉 저들과 하는 싸움은 단순히 자본의 싸움뿐만이 아니라 처음부터 생소함과 그렇지 않음의 싸움이며 관심과 무관심의 싸움이다. 문화 콘텐츠 산업에서 세계시장을 놓고 이보다 더 열악한 경쟁 상황에서 경쟁을 할 수 있는가?
할리우드는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소재와 인물과 스타파워를 통하여, 그리고 막대한 자본을 통하여 타국 시장을 공략하고 습관을 창출하고 다시 시장을 공략하는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특히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지는 할리우드의 무한한 상상력의 공간은 영화 소재의 한계를 끝없이 극복하고 또 다른 의미의 보편적인 습관을 창출해 낼 것으로 전망된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특징은 막대한 제작비를 미국 국내시장에서 다 뽑고 해외에서는 순수하게 수익을 내는 구조다. 즉 아주 단순하게 계산하면 해외에서 팔리는 영화는 무조건 다 이윤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가 한편 당 1000만 관객이 동원되는 한국 시장을 그냥 놔둘 수 있겠는가? 반면에 한국은 몇 개의 영화를 중심으로 국내에서 제작비도 뽑고 수익도 내고, 운 좋으면 일본시장 정도에서 수익을 더하고 있다. 한국영화진흥원의 자료에 의하면 한국 영화의 해외수출은 압도적으로 일본에 집중되고 있고 (그것도 극히 최근에), 타 지역으로의 수출은 성장은 하고 있지만 아직 매우 미미한 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정부가 성급하게 한국의 스크린 쿼터를 과감하게 줄이기로 결단한 것은, 그리고 미국과의 FTA 협상을 위한 선물로서 먼저 주고 시작한 것은 매우 적절치 못한 결정이라고 판단된다. 앞에서도 말한 것과 같이 한국의 문화, 상징 산업은 차세대 한국의 성장동력이며 지식경제의 시대에서 신 선도산업이 될 것이다. 따라서 FTA 협상에서 가장 강하게 협상해야 할 분야일 터인데 이를 그냥 내어 주고 다른 것들을 서둘러서 협상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협상전략이라고 생각된다. 만일 한미 FTA가 2007년 7월까지 성사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국은 이미 미국에게 우리의 가장 중요한 성장동력 시장을 내 준 것이 된다.
자동차와 핸드폰과 반도체와 선박과 철강은 문화와 상징과 다르게 보편적인 상품들이고, 한국의 경쟁력있는 기업들은 상당기간 보호된 한국시장을 발판으로 경쟁력을 키운 후 세계시장에서도 어느 정도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의 자동차시장이 얼마나 오래 보호되었고, 또 얼마나 오랜 기간 보호 후에 세계시장의 경쟁력을 확보했는지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우리의 문화산업은 이렇게 보편적인 상품을 보유한 것도 아니고 최근 아시아권에서나 조금 약진하는 산업이다.
한국정부는 아직도 국내에서만 경쟁력이 있고 또 한국에서 점유율이 높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협상도 없이 시장을 양보(스크린쿼터 연간 146일에서 73일로 축소)하고, 국내에서 할리우드 영화와 싸워 이길 경쟁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한국정부는 차세대 성장 동력을 수출보다는 내수 위주로 키울 생각인가? (비유를 하자면, 문화의 특성 상 한국에서는 한식이 양식보다 잘 팔리게 되어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식의 경쟁력도 외국음식으로부터 상당한 도전을 받고 있으며 한식이 해외에서 뚜렷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보고를 본 적이 없다.) 문화산업의 특성상 수출은 매우 적은 비용으로 (저렴한 상품의 복사와 운송비용 등) 엄청난 수익을 창출할 터인데 적극적인 한국문화의 보편화 전략과 해외시장 개척전략, 그리고 국내에서의 안전망(소위 스크린쿼터 일수를 재조정하는 roll back이라는 제도) 없이 내수시장에서 어떻게 한번 버텨보자는 성장 전략을 택하는 것인가?
***4. 신중하게 보다 큰 그림에서 접근하자**
이미 문화다양성협약이라는 것을 통하여 세계의 다른 국가들이 이러한 우려를 국제적으로 제도화하였고 또 우리의 성장동력을 보호할 수단을 주었는데, 한국은 이를 너무나 쉽게 포기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영화가 산업이냐 아니면 그 이상의 귀중한 문화적 자산이냐의 논쟁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한국의 미래를 먹여 살릴 중요한 성장동력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다.
바야흐로 문화와 상징이 곧 국가의 브랜드이며, 그 국적 기업의 브랜드이며, 또 국가의 소프트 파워로 작동할 것인데, 그리고 일국의 문화와 번영과 힘이 상호 보완적으로 기능할 것인데 이러한 보다 큰 그림을 너무 도외시하고 단순히 일개 영화산업 정도로 안이하게 생각해서 정부가 스크린쿼터 관련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비판의 목소리에 정부가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개방을 통하여 경쟁력을 얻는 것이 보편적인 진리가 아니라 후발 국가의 경우 국가의 지원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한 후 개방을 한 경우가 오히려 더 진실에 가깝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기회에 한국의 국제정치경제학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매우 중요한 책인 Herman Schwartz라는 미국의 정치경제학자가 쓴 "States vs. Markets"라는 책의 일독, 혹은 번역을 권한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문화산업의 스타들은 차세대 성장동력의 재벌총수와 같은 사회적 관심과 주목을 받을 것이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불법적인 경영권 승계와 재산 상속을 추진하다가 삼성이라는 기업 전체의 신망을 잃어버린 것이 이제는 그와 무관한 삼성 직원들로 하여금 사회봉사활동까지 하게 만들고 있다. (이건희 일가의 일 때문에 이들이 왜 사회봉사활동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앞으로 문화계의 스타들이 엄청난 부와 특권이 개인에게 몰릴 기회를 접할 때 아무 생각 없이 탐욕적으로 살게 되면 차세대 성장동력 자체에 큰 피해를 주게 될 것이다. 성실하고, 열심히 도덕적으로 사는 국민 스타들이 기둥으로 버티고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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