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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북핵문제에 '3년 버티기'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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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북한, 북핵문제에 '3년 버티기' 돌입?

미래연의 '지구촌, 분석과 전망'〈38〉김정일 訪中 이후

***1. 김정일 방중: 기대와 현실**

8박9일 간의 숨바꼭질 극비 행적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방문이 끝났다. 기획된 행사가 끝나자 북한 매체는 일제히 그의 방중 사실을 공표하고 성과 알리기에 바쁜 모습이다. 여하튼 이번 방중 이벤트로 김정일 위원장은 북핵과 위폐의 곤경에서 벗어나 개혁개방의 지지자로 하루아침에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순방 기간 동안 북한과 중국 중 어느 나라도 공식 확인을 하지 않는 극비 방문의 형식을 띠었다. 개방된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비밀 방중을 고집하는 이유는 폐쇄된 수령제 국가의 정치적 특성에서 비롯된다. 일반 대중과는 질적으로 다른 수령의 일정과 행동이 북한 인민에게 그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은 무오류의 수령이 갖추어야 할 신비로움의 전제이다. 신비스러운 수령 만들기라는 목적 이외에도 김정일 위원장의 신변보호와 안전을 염려해야 하는 북한의 대내외적 상황도 극비 방중의 이유가 된다. 북한 내부에서도 김정일 위원장의 공식 행사는 항상 비밀에 부쳐지고 철통같은 보안이 수반되는 바, 하물며 해외 나들이 길에 수령을 노리는 적들의 '테러와 준동'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극비 방중을 고집하는 북한식 이유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적극 환대하는 중국의 속셈 역시 그럴만한 연유가 있을 만하다. 그동안 북중관계는 피로 맺어진 혈맹으로 정의되었다. 한국전쟁 당시'항미원조(抗美援朝)'의 기치 아래 군대를 보내준 중국과 북한의 동맹 관계는 1992년 한중수교로 탈냉전의 홍역을 치러야 했으나 김정일로의 권력승계 이후 새로운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로 재정립되었다. 북한에게 중국은 사회주의 붕괴 이후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정치적 언덕이었고 에너지와 생필품 등 북한의 생명선을 제공해주는 고마운 나라다. 핵문제에서도 미국의 압박을 완충시켜주는 외교적 역할을 중국이 잘 해내고 있다.

중국에게도 북한은 여전히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북한이 핵문제로 중국을 귀찮게 하는 것은 동북아에서 미국의 반(反)중국 포위를 막아내는 북한의 지정학적 역할에 비하면 충분히 중국이 감내할 만한 것이다. 동북공정 등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 확보 야욕은 북한의 존재가 없으면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상호 전략적 이해관계에 기초하고 있는 양국간 우호를 토대로 이번 김 위원장의 극비 방중은 북중간 뜨거운 혈맹관계를 다시 한번 과시하기에 충분했다.

이제 김 위원장의 방중을 놓고 그 의도와 결과 분석에 분주한 모습이다. 그의 방중 일정이 남부 경제특구 시찰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 것을 보면 중국식 개혁개방에 대한 현장학습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1992년 등소평의 남순강화와 유사한 방문코스가 결국은 김정일 위원장의 개혁개방 의지를 강화시켰을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특히 방중 직후 북한이 보도한 수행 인사의 면면을 보면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이 경제 학습에 집중되어 있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실세 총리로서 경제사업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박봉주 총리와 지난 해 북중 경제협력 확대를 진두지휘한 로두철 부총리, 북한의 경제계획을 입안하고 관장하는 박남기 당 중앙위 부장, 그리고 북한이 내세우는 과학기술 강국의 책임자라 할 수 있는 리광호 당 과학교육부장 등의 면면은 말 그대로 북한 경제 실세의 총출동이라고 할 만했다. 지난해 김정일 위원장의 경제현장에 대한 현지지도가 늘었고, 수행자 빈도 순위에서도 군인 3인방을 제외하고 박봉주 총리의 순위가 급상승한 점 역시 경제에 대한 최근 김 위원장의 높은 관심을 반증한다. 분명 김정일 위원장은 이번 남순 코스 시찰을 통해 경제회생을 위한 개혁개방의 필요성을 스스로 절감하고 이를 대내외에 역설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방중이 북한의 개혁개방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곧 중국식 개혁개방의 전면적 수용으로 이어지리라고 보기에는 좀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중국 모델이 북한에 적용되기에는 '북한식'이라는 여과장치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미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해 대내적 경제개혁을 시작했고 최근에는 그 부작용과 후유증 해소에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배급제를 확대하고 시장에서 곡물거래를 중단시킴으로써 여전히 체제유지를 위한 국가주도의 통제를 놓지 않고 있다. 결국 이번 방중은 본격적인 중국식 개혁개방의 시작이라기보다는 이른바 실리사회주의의 이름으로 추진되고 있는 북한식 개혁개방에 중국의 경험을 충분히 반영하는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2002년의 신의주를 대신할 대규모 외자유치를 위한 경제특구는 여전히 시도해봄직한 개방조치일 것이다. 따라서 이번 방중으로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본격화할 것이라는 기대는 조금 섣부른 면이 있다.

오히려 이번 방중, 특히 경제특구 시찰의 단기적 목적은 중국의 개혁개방 권유에 북한식으로 호의를 표시하고 이를 통해 중국으로부터 보다 많은 경제협력과 지원을 확보하려는 실리적 계산이 충분히 감안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년부터 11차 5개년 계획을 시작하는, 막대한 달러보유국 중국으로부터 향후 5년 동안 수십억 달러의 경제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북한이 결코 놓치기 싫은 기회다. 또한 김정일 위원장은 경제특구 방문으로 자신의 개혁개방 의지를 전 세계에 과시하면서 사실은 미국이 긍정적으로 평가해주기를 바라는 대미 유화 제스춰의 의미를 보낸 것이었다. 즉 위폐 문제를 내세워 강화되고 있는 미국의 대북 압박을 돌파하기 위해 김정일 위원장은 경제학습과 개혁개방 의욕을 미국에 보임으로써 당면한 정치적 곤경을 경제적 이슈로 우회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이같은 유화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북중 경제관계 확대와 중국의 대북 지원을 통해 남은 3년의 부시 임기 동안 대미 대결을 하더라도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이자 자신감의 과시라는 의미를 갖는다. 결국 이번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도 가장 핵심의 관심 사안은 당면한 북핵문제와 북미관계였던 것이다.

***2. 방중 이후 북핵문제: 호전보다 악화 국면**

6자회담 9.19 공동성명 이후에도 북핵문제는 여전히 안개 속에 놓여 있다. 평화적 해결을 위한 구체적 실천조치는 논의조차 못한 채 6자회담 자체가 불투명과 불안정의 영역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 오히려 북한과 미국은 9.19 공동성명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경수로 제공과 관련해 좁힐 수 없는 간극을 보이면서 대립점을 보인 바 있다. 북한의 핵폐기가 완료된 이후에야 경수로 제공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다는 미국의 입장과 먼저 경수로를 제공해주어야만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북한의 주장은 접점을 찾기 힘든 대목이었다.

북핵 합의를 이루어낸 힐 차관보는 워싱턴에 돌아간 이후 궁지에 몰렸고 한참 거론되던 그의 방북 시도도 결국 무산되었다. 9.19 성명을 '제2의 제네바 합의'로 혹평하는 네오콘에 의해 힐차관보의 발언권은 충분히 약화되었다. 오히려 핵은 핵이고, 인권과 위폐는 그 자체 이슈대로 미국의 전략에 의해 진행되었다. 베이징에서 공동성명 도출을 위해 씨름 하고 있던 바로 그 시기에 미국 재무부는 북한의 불법행위와 금융제재 조치를 관보에 싣고 곧바로 북한 기업의 해외자산을 동결했다. 이미 6자회담과는 별개로 미국의 대북 압박 장치는 작동하고 있었던 셈이다. 당연히 9.19 이후 북미간 대결은 심각한 불신구조를 그대로 온존시켰고 직후에 터져 나온 경수로 제공 논란은 사실상 싸움을 위한 서로의 좋은 핑계거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경수로 제공문제가 미래의 문제이고 아직은 당장 해결해야 할 사안이 아닐 수 있는 반면 지금 북미 간에 대결하고 있는 금융제재 문제, 특히 북한의 위폐문제는 시급한 현안으로 자리잡고 있다. 미국은 6자회담 및 9.19 합의 일정과 상관없이 재무부에서 꾸준히 조사해 왔고 그것이 결국은 마카오에 있는 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에서 북한의 불법거래 관련 혐의를 포착함으로써 미국과의 거래정지 조치를 결정한 것이었다. 미국과의 거래가 정지되자 당연히 이 은행에 돈을 맡긴 고객들은 예금 인출 사태를 빚었고 급기야 이 은행은 북한계좌를 포함해서 인출을 막아버린 것이다. 지금 북한이 미국 정부에 대해 제재를 해제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 사태의 실체는 바로 이것이다.

당연히 미국 정부는 대량살상무기 및 테러와 관련된 불법 행위에 대해 마땅히 취해야 할 행정조치를 취한 것이고 따라서 북한의 요구에 따라 이 은행에 대한 제재철회를 결코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북한은 금융제재 해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6자회담에 나올 수 없다는 '위폐-6자회담 연계'라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9.19 공동성명에 명시된 상호 주권존중과 평화공존의 정신을 미국이 정면으로 위반하고 대북 적대정책으로 공화국을 압살하려 하고 있는 상황에서 6자회담에 나올 수 없다는 논리인 것이다.

미국의 완강한 철회 불가 입장과 북한의 강경한 회담 연계 입장이 맞부딪칠 경우 결국은 재개하기로 약속했던 6자회담이 무기연기될 것이고 이로 인해 북핵문제는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애초에 지난 해 11월 5차 1단계 6자회담을 휴회하면서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재개하기로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북미 대결로 인해 6자회담이 무산되는 것은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불가능하게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도 겉으로는 경제시찰로 관심을 끌었지만 내심은 위폐 문제로 인한 북핵 교착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북중간 협의가 중요한 목적이었다. 지난 해 9.19 공동성명이 도출되었지만 최근의 위폐문제와 관련해서 북미간 대립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과 중국이 의견조율을 해야 할 필요성은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그러나 관건인 위폐문제에 대해 북한의 요구와 미국의 고집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절묘한 해법을 찾기는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국가가 아닌 개별 차원의 위폐 행위를 북한이 인정하고 책임을 물으면 미국이 양해하는 선에서 동결된 북한 계좌를 푸는 방식은 아직 기대에 머물 뿐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북중 양국이 사후에 밝힌 정상회담의 내용 역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과 6자회담 참가 의지를 확인하고 조성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수준이었다.

현안인 위폐문제 해법과 6자회담 재개 여부는 김정일 위원장 방중과 힐-김계관의 극적 회담 이후 북미 양국의 태도가 분수령일 것으로 보였지만 이후 상황에서 북미는 문제해결을 위한 긍정적 양보 의사를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장기 소강상태였던 4차 6자회담을 재개시킨 7.9 힐-김계관 라인의 성과는 여전히 기대하기 힘들어 보이고 오히려 김정일 방중 이후 미국의 대북 압박 전면화는 북미간 대결이 심상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결국 김정일 위원장이 방중을 통해 보낸 대미 메시지에 대해 미국은 일단 'No'로 응답한 모습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개혁개방 의사 표명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위폐 등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한 치의 양보도 할 수 없고 오히려 6자회담과 별개로 북한의 체제전환을 위한 다각적인 압박 전략이 최근 들어 강화되는 양상이다.

관심과 기대를 모았던 힐 차관보와 김계관 부상의 회담은 별무성과로 보이고, 김정일 방중 직후 이루어진 미국 재무부 금융조사반의 아시아 순방길은 대북 금융제재가 '대량살상무기 확산 주범과 그들을 돕는 지원망을 재정적으로 고립시키는 목적'임을 명백히 밝히고 오히려 한국의 동참을 촉구했다. 조사반이 한국을 떠난 직후 주한 미국대사관이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한국도 비슷한 조치를 취할 것'을 미국이 요청했다고 밝히고 있다. 더욱이 눈길을 끄는 것은 지금까지 문제가 되었던 위폐 이슈와 함께 대량살상무기 확산과 관련된 자금 흐름을 차단하고자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인 바, 이런 맥락이라면 단순히 북한의 위폐 제조와 유통 문제가 아니라 미사일 수출 등 북한의 무기 거래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것이 '진폐'로 이루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국제 금융체제를 동원해서 차단하겠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여기에 한국이 동참해줄 것을 요구한다면 북한과의 자금 거래를 사실상 거의 전면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지로도 읽히는 상황이다. 스위스에 있는 북한 계좌가 동결되었다는 보도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뒤늦게 밝혀진 한국의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일부 동참 합의 역시 9.19 합의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끈질기게 대북 압박 전략을 추진하고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PSI는 2003년 5월 부시 대통령에 의해 제안된 것으로서 실제로는 북한을 겨냥한 의미를 갖고 있다. 바로 직전인 2002년 12월 미사일 부품을 싣고 예멘으로 향하던 북한 선박 '서산호'를 미국이 나포하고도 국제법적 근거가 취약해서 풀어준 '쓰라린' 경험을 부시 대통령은 잊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PSI는 당연히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과 이전을 전면 차단하는 물리적 조치이자 군사적 봉쇄이므로 이는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다. PSI는 6자회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꾸준히 훈련을 지속해 왔을 뿐 아니라 지난해 4차 회담이 재개되어 합의문을 도출하는 과정에서도 조지프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이 한국의 동참을 공식 요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미국은 6자회담이라는 외교적 해결과 함께 대북 압박 정책을 한번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해 왔던 셈이다. 그리고 그 압박은 지금에 이르러 PSI라는 군사적 물리적 봉쇄와 금융제재라는 재정적 봉쇄로 전면화되고 있다. 이미 2002년 12월 <뉴욕타임스>가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으로 규정한 '맞춤형 봉쇄(tailored containment)' 정책에 이미 이같은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었음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2004년 북한인권법 통과 이후 북한인권에 대한 대대적인 문제제기는 지난해 겨울 서울 도심에서 개최된 북한인권국제대회에 주한 미국 대사와 미국 북한인권특사가 공식 참여하는 수준까지 발전하고 있다. 오히려 9.19로 핵문제가 봉합된 이후 미국의 대북 압박은 인권과 위폐, 마약 등 각종 불법행위를 구실로 더욱 전면화되고 있고 따라서 김정일 위원장의 선택은 북중 경제협력 강화와 남북관계를 통해 북미대결의 장기화를 대비하는 체제유지 전략을 모색하는 것이다.

***3. 해법을 찾아서**

지금 시기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지속하고 9.19 합의의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재개하기로 합의했던 후속 6자회담을 하루 빨리 개최하는 게 중요하다. 이미 미ㆍ중ㆍ일과 한국이 합의하고 있는 것처럼 위폐문제와 6자회담은 별개의 사안으로 접근해야 하며 따라서 지금 북한이 고수하고 있는 금융제재와 6자회담을 연계하는 전략은 하루빨리 철회되어야 한다.

현안이 되어버린 금융제재 문제는 북한과 미국, 그리고 중국이 서로 납득할 만한 수준에서 해법을 찾는 게 필요다. 우선 중국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만약 북한의 일정한 불법 사실이 드러난다면 이를 북한이 사실로 인정하고 관련 책임자를 정도에 따라 문책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지난 연말 김계관 부상과 우다웨이 부부장이 심양에서 만나 논의했다는 언론 보도가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한국 정부는 은행 관할 당사자인 중국과 문제를 제기한 미국, 그리고 혐의를 받고 있는 북한이 사실관계에 기초해서 엄정하고 합리적으로 해법을 찾기를 원하고 있다. 즉 국가가 아닌 개별 차원의 위폐행위를 북한이 인정하고 책임을 물으면 미국의 양해를 전제로 중국이 동결된 북한 계좌를 푸는 방식으로 창조적 합의점을 찾자는 것이다. 문제는 중국이 제시한 사실관계에 대해 북한이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 것인가와 북한의 시인과 책임문책 수준에 대해 미국이 과연 받아들이고 제재를 풀 것인가다.

그러나 상황의 심각성을 인정한다면 북한은 9.19의 추진력을 재가동하고 북미관계 개선의 동력을 다시 얻기 위해서라도 일정한 수준에서 자신들의 불법행위에 대해 시인하고 재발방지와 책임자 문책을 수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6자회담의 진전과는 별개로 미국이 지속적으로 제기할 수 있는 인권과 위폐, 마약 등 양자 이슈에 대해 적극적이고 진지하게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미국도 지금의 금융제재 문제로 인해 6자회담이 무기 연기되는 것을 막고 북한의 핵포기를 위한 6자회담의 모멘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동의한다면 북한이 시인하고 책임을 묻는 수준에서 보다 유연한 대응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핵문제 이외 인권과 마약 등 이른바 '북한 문제'는 6자회담 진행과 병행해서 북한에게 묻고 따지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이 지속되는 것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원칙적 대비책을 세우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북핵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면 북한문제와 북미관계 등이 순조롭게 풀릴 수 있을 것으로 여겨 왔다. 한미공조와 남북관계 병행을 통해 북핵의 평화적 해결에 그렇게 매달렸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9.19로 북핵해결의 총론적 방향이 합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북미관계는 핵을 넘어 또 다른 '북한문제'로 갈등하고 있고, 이에 대해 미국은 다각적인 압박전략을 구사하면서 북한의 체제전환을 시도하는 한편 북한은 이에 맞서 대미항전의 장기화를 대비하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북핵해결 이외에 북미간 갈등 해소를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상황에 직면해 있다. 즉 핵문제를 뛰어 넘는 보다 근본적인 미국의 대북정책 방향을 정확히 파악하되, 그것이 압박과 봉쇄에 의한 체제변화 전략이라면 우리 정부의 원칙적 입장에 따라 명확히 반대의사를 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해 결국은 미국이 동의하는 것처럼 대북정책 및 북한변화 유도 방안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는 '화해협력'을 통한 '장기공존'을 거쳐 북한의 체제변화를 이끌어내는 방식이 최선의 현실적 접근법임을 미국에게 명확히 설명하고 관철시켜야 한다.

다른 한편 북한에게는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이 지속될 것임을 설명하되, 미국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북이 먼저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북한의 이른바 부시 임기 이후를 겨냥한 '3년 버티기' 전략을 무마시키고 미국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북한의 선(先)행동을 이끌어내는 방법으로는 여전히 남북정상회담의 유용성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북미간 대결 심화로 인한 한반도 긴장 고조를 완화시킬 수 있는 '안전판'의 의미로도 남북관계는 지속발전되어야 하고, 북한의 의미 있는 태도변화 및 선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대북 영향력 확보의 차원에서도 남북관계는 보다 진전되도록 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아직 가능성의 영역에 있는 남북정상회담의 추진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으며 북미 대결 국면을 남북주도의 '돌파구' 마련으로 우회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핵상황의 교착과 북미관계의 악화에도 불구하고 향후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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