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안 읽는 10, 20대와 문학의 위기요?"
지난 21일 민족문학작가회의 정기총회에서 신임 이사장으로 선출된 정희성 시인(61)을 25일 오후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저문 강에 삽을 씻고〉의 시인인 그는 현재 서울 숭문고에 35년째 재직중인 국어 교사이기도 하다.
1974년 출범해 이제 본부 회원만 1200여 명인 거대 문학단체의 '얼굴'이 되었지만, 정 이사장의 일상은 '게임으로 친구 사귀고, 미니홈피를 키우며 성장하는' 10대와 함께하는 것이겠기에 "학생들 속에서 흔히 말하는 책과 문학의 위기를 실감하시는가"라고 물었다.
정 이사장은 의외로 "나라도 지금처럼 책 말고 재미있는 놀거리들이 많았다면 책 안 읽었을 겁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읽을거리도 별로 없었고 책 읽는 게 유일한 재미였는데… 허허"라며 여유로운 웃음을 지었다.
***"현재의 젊은 세대에게는 '문사에 대한 동경'이 없다"**
그는 학생들의 독서와 관련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선비 사회였다. 그 뿌리깊은 유산이 실천적 인문학자에 대한 사회적 우대와 존경인데, 현 젊은 세대에게는 그런 인문주의자, 문사에 대한 동경이 없다"고 자신이 체감하는 변화상을 설명했다.
이렇게 새로운 감수성과 욕망을 가진 10~20대의 관심사를 현재 문학이 능란하게 다루지 못해 스스로 무기력해진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얼마 전까지 당대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서로 삼국지를 가필하며 인기몰이를 했어요. 그게 천년 전에 출현한 캐릭터인데 그 인간형들이 유효했다는 거죠. 지금도 30대 이상의 인간형은 거의 삼국지 속 인물로 설명이 돼요. 그런데 삼국지로 해석이 안되는 무수한 유형의 10~20대들이 출현해 같이 살아가고 있는 거죠. 이게 문학 앞에 던져진 과제죠."
그래도 그는 긍정적이다. 독서환경으로만 보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양질의 책을 읽으며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문학에 관심을 갖는 독서인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게 정 이사장의 낙관의 근거다.
***"한국문학의 체계적 번역 위해 실태 조사부터…"**
국내에서는 '문학의 위기'가 회자된 지 오래지만 한국 문학은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해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계기로 한층 늘어난, 세계 독자들과의 만남의 기회에도 들떠 있다.
정 이사장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한국 문학의 국제적 진출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했고 우리에게 활력을 주기도 했지만 전자책 등 최신 조류를 보여주는 일에 치중하면서 분단 등 한국 현대사가 겪어 온 갈등의 한복판에서 나온 작품들이 배제된 것 같습니다. 현지에서는 한국 현대사라든가 정치와 문학의 관계에 대한 질문이 많이 나왔다고 하는데 말입니다"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가 덧붙인다. "이를 계기로 외국에 소개할 우리 문학 작품을 체계적으로 선정하고 제대로 번역하는 것이 당면 과제가 됐습니다."
우선 한국문학의 번역 실태조사부터 하겠다는 계획이다. 번역뿐이 아니다. 사실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오래 전부터 아시아문화네트워크, 아시아문화유목, 베트남을 사랑하는 작가들 등 산하의 다양한 소조직을 통해 국제 교류를 활발히 해 왔다.
정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민족문학작가회의의 활동상의 변화와 포부'를 말했다.
"그 동안은 국가적 내홍이나 민족사적 방황과 개인의 삶이 충돌하는 데에서 문학도 생기고 단체도 만들어졌었는데, 민족문학작가회의 30년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 민주화도 됐고 지난해엔 남북작가회담도 성사되지 않았습니까? 이제 문학적 직관이 공동체의 운명을 좌우할만한 일은 하지 못하는 시대가 된 거지요.
그러나 문학은 현재 다양해진 관심사라든가 삶의 변화 등과 최대한 함께 굴러가려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는 작가들의 숨통을 틔워줄 기초예술 창작지원 제도의 틀도 잡히기 시작했고요. 전임 이사장이 이룩해놓은 이 성과들을 발전적으로 이어나가야 할 책임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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