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7년 프랑스의 〈일반병원 (Hopital General)〉 건립은 근대사회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의료기관의 등장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 기관을 통해 무엇이 병리현상이며 무엇이 정상이고 또한 무엇이 사회적으로 축출되어야 하며 무엇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인지가 이 병원을 통해 결정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과거 중세 교회가 감당했던 윤리적 판단과 사회적 조처 등에 대한 결론이 내려지는 현장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셀 푸코는 이 병원의 출현을 의료기관의 시작으로 보지 않고, 사물의 질서를 결정하는 새로운 양식의 권력으로 규정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절대왕정체제의 왕권과, 서서히 세력을 키우고 있던 부르주아의 권력이 결합된 조직이라는 것입니다.
나병이 유럽에서 사라진 이후, 무엇이 그 공동체를 위협하는 병리현상인가를 파악하고 그 경계선을 긋는 작업이 이 기관에게 맡겨졌다는 점에서, 일반병원의 사회적 권력은 단지 순수의학기관의 차원을 넘어 누군가를 그 공동체에서 제거해버릴 수 있는 종교적 파문권에 버금가는 힘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가령, 이성의 시대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광인이라는 규정은 그 당사자에게 사회적 존재의 기초를 잃게 하는 조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셀 푸코는 근대사회가 정신병리현상으로 광기라고 규정했던 모습들은 사실상 고도의 예술적 감흥과 그 무엇에도 억압되지 않은 인간의 생명력이 표현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근대 의료기관의 사회적 권력에 의해 광기로 평가되고 규정되어버릴 경우, 권력이 정한 이성의 질서에 의해 진정한 예술과 인간의 생명력은 질식해버리고 말 수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결국, 17세기 당시 프랑스의 일반병원은 병리현상에 대한 윤리적 평가와 사회적 제재수단을 자신의 고유영역으로 삼아 그 사회의 정신적 경계선을 확정하는 거대한 권력이 되었던 셈이었습니다.
이로써 이 기관이 병리현상의 당사자로 지목한 대상은 치료의 대상이 되거나 또는 격리 내지는 사회적 배제의 운명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보다 앞선 1630년 영국에서는 이른바 〈빈민법〉이 발효되어, 가난한 자나 유랑자들을 모두 범죄자로 취급하고 규제 단속하고, 이들을 교화의 대상으로 삼아 교정기관에 가두어버리는 조처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가난한 자들이나 유랑자들은 자신들의 노동으로 먹고 살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았다면서, 이들을 처벌하고 교정하는 과정에서 노동하는 인간으로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조처는 가난을 가난한 자들의 책임으로만 돌리고, 부의 편중에 대한 사회적 비판을 봉쇄해버리는 구조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프랑스의 〈일반병원〉이나 영국의 〈빈민법〉 모두 그런 점에서 의학과 법이라는 고도의 전문적 기능을 방파제로 하여, 기존의 권력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황우석 교수에 대한 조사를 하고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처벌과 제재를 주도하고 있는 서울대나, 갖가지 지원을 해 오다가 오늘날 그를 기피인물로 삼고 있는 정부의 권력은 그렇다면 과연 순수한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황우석 박사 하나만을 범죄적 병리현상의 존재로 규정하고 이 사회에서 축출한 이후, 자신들만은 그대로 살아남아 기존의 권력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센타'(오후 4-6시/FM 104.5MHz, www.ebs.co.kr)의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에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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