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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 포인트]죽여주는 여자 Kill Me Te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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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 포인트]죽여주는 여자 Kill Me Tender

감독 라몬 데 에스파냐 | 출연 잉그리드 루비오, 알베르토 산 후안, 에밀리오 구티에레즈 카바 | 수입 CnS | 배급 프리비전 | 등급 18세 이상 관람가 | 시간 98분 | 2003년

전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스페인 영화는 대체로 거리낌이 없다는 느낌을 준다. 영화 속 여자들은 '거리낌없이' 옷을 훌렁훌렁 벗어 제친다. 섹스할 때 소리를 질러대는 모습도 '거리낌이 없다'. 섹스로 맺어지는 사람들의 관계도 알고 보면 근친에 가까울 만큼 복잡하고 난삽하기 이를 데 없지만 자신들 만큼은 전혀 '거리낌이 없다'. 매춘과 도착적 성행위는 일상에 가깝다. 이 정도쯤 되면 거리낌이 없는 게 아니라 뻔뻔스러울 정도라는 인상을 준다.

바르셀로나 근교 작은 마을에서 사는 이 영화의 주인공 마리벨의 삶이 딱 그 꼴이다. 단조롭고 평범한 생활에 싫증이 난 마리벨은 집에서 단골손님만을 받아 매춘으로 용돈을 번다. 그녀의 언니 안젤라는 변태업소에서 마조히스트인 남자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살아간다. 그런 언니가 싫은 엄마는 마리벨에게 상처한 빵집 주인 네스토와 결혼을 하라고 부추긴다. 네스토는 마리벨이 집에서 받는 단골손님의 장인. 네스토와의 결혼을 망설이던 마리벨은 어느 날 안젤라의 애인으로부터 부하직원인 마놀로를 소개받게 되고 둘은 격정적이고 파격적인 열정에 빠지게 된다. 마리벨은 결국 영리한 선택을 하게 되는데 늙은이인 네스토와 결혼을 하고 마놀로와는 섹스를 한다는 것. 빨리 네스토가 죽고 유산을 남겨주기를 원하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자 마놀로에게 네스토를 죽이라고 요구한다. 윤락녀를 엄마로 두고 살아 온데다 채무 해결사로 근근이 살아오다 마리벨 덕에 안락한 생활을 하게 된 마놀로는 이판사판 살인행각에 나선다.

영화 내내 황당한 웃음이 터져 나오는 이 영화는 그러나 후반부로 들어서면서부터는 불현듯 기묘한 느낌을 주기 시작한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치정살인극의 이야기를 스페인식의 유머와 풍자감각으로 비틀어 놓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다만 문화적 차이 때문에 그걸 인식시키는 게 늦어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 속 꼬일 대로 꼬인 근친의 성적 관계 역시 다소 폭력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기존의 가족관계를 완전히 해체시키고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꿈꾸는 영화적 장치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마리벨은 남편 네스토와 사위와 모두 성관계를 맺는데다 애인인 마놀로도 결국 그런 마리벨을 버리고 그녀의 의붓 딸, 그러니까 네스토의 딸과 합치게 되며 마리벨의 엄마 역시 자신의 딸을 버리고 마놀로를 아들로 선택하는 길을 택한다. 마리벨은 그런 엄마에게 마놀로는 당신 아들이 아니라 사위라고 얘기한다. 마리벨이 떠난 후 애인의 의붓 딸과 창녀인 진짜 엄마를 대신하는 새로운 엄마와 함께 단란하고 행복하게 식사를 하는 마놀로의 모습은 황당무계하기 보다는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 온다. 이건 기성의 세상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아나키(anarchy)한 정서의 발흥일 수 있다.

다소 허황된 스페인식 슬랩스틱형 에로 드라마로 볼지 아니면 무정부주의를 꿈꾸는 한 이상주의자의 기묘한 코미디로 볼지는, 물론 보는 사람들의 몫이다. 지나친 확대해석은 금물이겠다. 보이는 대로 즐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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