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다큐영화 〈송환〉의 DVD가 출시됐다. 영화로 개봉된지 근 2년만이다. 김동원 감독이 속한 '푸른 영상'의 얘기를 들어보니, 〈송환〉의 조연출을 맡았던 공은주 감독이 현재 2차 송환 운동을 벌이는 장기수들을 주인공으로 한 〈송환 2〉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송환〉 포스터에서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미소로, 영화에서는 사람 좋은 웃음으로 아픔을 말해 그 절절함으로 더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리게 했던 장기수 김영식(72) 씨. 그는 1962년부터 1988년까지 26년 간을 복역하고도 1973년 고문에 못 이겨 전향서를 작성했다는 이유로 송환되지 못했다.
영화 개봉 당시 팬클럽 결성 움직임이 일어날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김영식 씨. 2차 송환이 이뤄지면 완성된다는 〈송환 2〉의 주인공이기도 한 김 씨가 〈송환〉이 개봉된 후 2년의 세월을 어떻게 지냈을지 궁금했다. 어떻게 보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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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보상태인 2차 송환 "누굴 밉다고도 할 수 없고…참 안타깝지"**
인터뷰 요청에 선선히 응한 그를 5일 서울 낙성대 '만남의 집'에서 만났다. 지난해 10월 향년 84세로 생을 마감한 정순택 씨의 유해가 북녘 땅에 보내지며 다시 페달을 밟은 2차 송환 논의는 통일부의 흔쾌한 '추진 의지'에도 불구하고 납북자 가족의 반대 등으로 인해 현재 '정지' 상태다.
김영식 씨는 "통일부만 탓할 수 없다"며 웃었다. 납북자 가족들이 '납북된 사람들이 송환돼오지 않으면 안 된다'며 장기수 2차 송환에 반대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누구를 밉다고도 할 수 없고 참 말할 수 없이 안타깝다"고만 말했다.
그래서 그는 지난달 납북자가족협의회 최우영(35) 회장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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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영 선생에게'로 시작하는 이 편지는 이렇게 이어진다. "최우영 선생과 나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지만 최우영 선생이 11월 23일 임진각 소나무에 아버지의 귀환을 비는 염원을 담은 노란 손수건을 매다는 것을 보고 두 살 때 떼어놓고 온 딸이 생각났다. 최 선생이 아버지를 어떻게 하면 만날까 하며 힘들텐데, 최 선생 말처럼 '이쪽에서 당기고, 저쪽에서 당기고 하니' 얼마나 괴롭습니까."
공은주 감독은 당시 이 편지를 〈한겨레〉에 제보했고, 〈한겨레〉는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했다. 최우영 회장은 망설임 끝에 "만나겠다"고 했고, 김영식 씨 또한 "그러자"고 했지만 끝내 만나지 못했다.
"난 만나고 싶었지…. 외로운 사람들끼리 만나서 위로도 하고 얘기도 하고. 그런데 동지들이 좋지 않게 생각하더라고. 그래서 안 만나기로 했지 뭐."
"최우영 씨나 나나 죄인인가봐. 나는 이 세상에 나와서 사람과 사는 게 제일 힘들어"라며 고개를 숙이는 김영식 씨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송환되도 안 갈까 했는데, 이제는 고향 가서 죽어야지 싶네"**
주위 사람의 귀띔으로는, 김영식 씨는 최근 '송환이 된다 하더라도 북에 가지 않겠다'라고 말하기도 하는 등 심적 갈등이 크다고 했다. 지금도 그러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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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이 됐지. 그런데 정 선생 돌아가시는 거 보니까 사람 죽는 거 금방이더라고. 젊었으면 통일될 때까지 기다리겠는데, 이제는 고향 가서 죽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 갈등했던 이유는 뭐 여러가지지. 가족, 고향, 부모 다 버리고 어떻게든 통일에 보탬이 되려고 여기에 왔는데 징역만 살고, 북한에 가도 떳떳하지 않고, 기다리는 가족도 없고…."
"〈송환〉 개봉 이후에 주위 반응을 포함해 특별한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으로 화제를 한국사회로 돌리자 그는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은 듯했다.
"요즘 남미 보면서 내가 느끼는 게 참 많아. 내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하고 볼리비아 대통령, 그 이름 뭐냐…, 응 에보 모랄레스, 그런 양반들인데, 그런 사람들이 나와서 사회제도도 바꾸고 국민심정도 풀어주고 하니 참 멋져. 아 그게 해방이지 다른 게 있나.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난 슈바이처 박사니 테레사 수녀니 하는 사람들은 존경 안 해. 제도를 좋게 만들어놔야 비참한 빈부차도 없는 것인데, 제도는 계속 낡은 착취제도 유지하면서 그 제도를 보장하고 유지하는 일만 한 것 아녀. 암만 흑인들 닦아주고 해도…. 너무 지나쳤나.(웃음) 여튼 내 생각은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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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세상이 깜깜해. 너무 깜깜해"**
그는 "내가 종교는 없어도 성경책은 여러 번 읽었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성경에 보면 잘 사는 사람이 천국 가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이건 세상 사람들 골고루 잘 살아라 이거거든. 그런데 어디 교회 다니는 사람이 그러나? 그냥 돈이나 갖다 주고, 자기들 편하게 살라고만 하지. 교회에서 성경책 말씀대로 실천하려면 사회제도도 착착 고치고 그래야 해…. 그러면 인간세상 참 재밌지. 가만 보면 성경이 나쁜 게 아니야. 사람이 나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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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법만 해도 그래. 재산이라는 것이 하늘에서 떨어지나. 재산은 수많은 손이 만든 거요. 많은 생명이 뭉치고 죽어가면서 만든 걸 가족끼리만 가지겠다고 비리 저지르면서…. 너무도 깜깜한 세상이여 이럴 수 있어? 그래서 잘 하자고 하면 나쁜 놈이라 욕해. 교회 가서 주여, 주여만 외쳐. 아직 너무도 깜깜해."
민가협 집회 등으로 종로에 갈 때면 "종묘공원에서 영감들이 무슨 얘기 하나 옆에 가서 가만히 들어본다"는 그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구원해 주었기 때문에 현재 우리가 산다, 미군이 나가면 절대 안 된다, 뭐 그런 얘기 들으면 기가 막히지. 우리나라에서 내 맘에 제일 걸리는 건 보안법이야. 그거 가지고 너무 탄압했어. 지금 보안법이 많이 물러졌지만, 완전히 버려야지. 그거 지키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리 민족 앞에 죄진 이들뿐이야. 젊은이들이 노력해줘요, 그래야 이 나라가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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