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5일과 3월 28일 각각 총선을 앞두고 있는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선거 승리를 위해 상대방을 자극하는 조치를 시사하고 나서 평화를 볼모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압바스 "선거 연기는 모든 정파의 합의 사항"**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2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선거 참여를 막는다면 이달 25일로 예정된 총선을 연기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고 영국 〈BBC〉, 중동 위성 TV 〈알자지라〉 등이 보도했다.
압바스 총리는 이날 카타르 도하에서 "우리 모두는 예루살렘 주민들이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고 합의했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선거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모든 정파들이 합의했다"고 말했다.
선거를 연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압바스 총리가 소속한 집권 파타당 내부에서 계속됐었지만 압바스 총리가 직접 선거 연기를 시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압바스 총리의 이같은 발언은 표면적으로는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투표를 과거의 방식인 우편 투표로도 용인할 수 없다고 밝힌 데 따른 반발이다. 유대교와 이슬람교 양측 모두의 성지(聖地)인 동예루살렘은 원래 요르단 땅이었지만 1967년 중동전쟁으로 이스라엘에 합병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마스 "선거 연기 핑계 찾지 마라"**
그러나 압바스 총리와 집권 파타당이 선거 연기를 원하는 실제 이유는 총선 승리에 대한 전망이 어둡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파타당은 최근 여론 악화와 내분으로 분당의 위기에 처해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인 86%가 집권당의 부패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또 최근 '부패 정치인 2선 후퇴'를 내세운 신진세력과 구세력 간의 대립이 날로 첨예해지고 있다.
반면 대(對)이스라엘 강경 투쟁 일변도인 무장단체 하마스는 최근 요르단강 서안지역의 지방의회 선거에서 파타당을 제치고 압승을 하는 등 지지도가 높아가고 있다.
파타당이 10년만에 치러지는 총선에서 하마스의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선거를 치를 경우 집권당의 위상이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해 선거 연기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선거 참여에 대해서는 적극 반대하고 있지만, 동예루살렘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투표는 허용할 수 있음을 내비쳤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방해'를 이유로 선거 연기를 거론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샤론 총리는 지난달 25일 "이스라엘은 압바스 수반이 선거를 연기하는 데 어떠한 변명의 구실도 주지 않기 위해 동예루살렘 팔레스타인인들의 투표를 허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마스는 선거 참여를 막겠다는 이스라엘의 방침에 대해 저항하는 것과는 별도로, 압바스 수반의 선거 연기론에도 쐐기를 박고 나섰다.
가자지구에 있는 하마스의 대변인 사미 아부 주흐리는 '모든 정파들이 연기에 동의했다'는 압바스 총리의 말을 부인하며 "팔레스타인인들을 대표하는 정당들이 해야 할 역할은 (하마스의 참여를 막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지 선거 연기의 핑계거리를 찾는 게 아니다"고 못박았다.
***"팔레스타인 영토 축소…일부 정착촌은 그대로 이스라엘 영토"**
한편 샤론 총리가 리쿠드당을 탈당해 만든 카디마당의 과반 확보를 위해 2003년 6월 합의한 평화정착 로드맵을 폐기할 계획이라는 보도가 나와 주목된다.
이스라엘 일간 〈마리브〉는 2일 샤론 총리가 팔레스타인 총선 후, 그리고 이스라엘 총선 전에 새로운 구상을 공개할 것이라며 이같이 전했다.
로드맵 폐기에 있어 샤론 총리가 내세울 명분은 팔레스타인이 무장조직 통제에 실패했다는 것으로, 이스라엘 관리들이 팔레스타인과의 로드맵 이행협상이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를 들면서 새로운 구상을 미 행정부 관계자들에게 설명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합의했던 로드맵의 골자는 이스라엘이 1967년 중동전쟁 당시 점령한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을 영토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국을 창설하는 것이다.
그러나 샤론 총리는 기존 로드맵을 폐기하는 대신 지난해 9월 유대인 정착촌 철수를 완료한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의 '일부' 지역만을 영토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국 창설을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샤론 총리는 원안에서 후퇴한 새로운 로드맵을 통해 강경 리쿠드당의 공격과 정착촌 철수에 대한 비판 여론을 차단해 지지층을 늘리려는 계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리브〉는 샤론 총리가 철수하지 않은 정착촌을 이스라엘의 영토로 영구합병하는 구상을 미국이 지지해주길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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