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인터넷에서 미키 Z(Mickey Z)라는 미국의 재야 언론인이 쓴 '즐거운 I. F. 스톤 데이를 맞으세요(Have Yourself Merry I. F. Stone Day)'라는 짤막한 글을 읽었다. 12월 24일은 크리스마스 이브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언론인 I. F. 스톤의 생일이기도 하며 미국인으로서는 이 날을 기념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스톤은 국내에서는 〈한국전쟁비사(Hidden History of Korean War)〉라는 책을 통해 6.25북침설을 제기한 언론인으로 주로 알려져 있지만, 미국에서는 〈중국의 붉은 별〉의 저자 에드가 스노나 〈세계를 뒤흔든 10일〉의 존 리드에 비견될 만큼 존경 받는 언론인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1953년부터 그 자신의 1인신문 〈I. F. 스톤즈 위클리(I. F. Stone's Weekly)〉를 수십년간 펴내 온 독립적 언론인의 전범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가 1인신문을 택한 것은 권력과 자본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스톤의 언론인으로서의 면모를 짐작케 해주는 이 글을 아래에 소개한다.
***'즐거운 I. F. 스톤 데이를 맞으세요'**
"모든 정부는 거짓말쟁이들이 움직이고 있으며, 이들이 하는 말은 단 하나도 믿어선 안 된다."(I. F. 스톤)
12월 24일은 I. F. 스톤(I. F. Stone)의 생일이다(그가 살아 있었다면 98세가 된다). 그의 저널리스트로서의 행적은 우리가 이 날을 기념할 충분한 근거가 된다.
본명이 이시도어 파인스타인(Isidor Feinstein)인 I. F. 스톤은 〈네이션〉을 비롯한 몇몇 신문에서 일했고, 1953년 친구에게서 빌린 3000달러와 도산한 한 좌파매체의 구독자 명단 5300명을 바탕으로 자신이 혼자서 만드는 신문을 창간했다. 이렇게 해서 창간된 〈I. F. 스톤즈 위클리(I. F. Stone's Weekly)〉는 1960년대에 발행부수가 7만에 이르렀고, 그의 탁월한 탐사보도 능력과 위선을 꿰뚫어 보는 능력에 대해 적들조차 그를 칭찬할 정도였다.
〈네이션〉의 빅터 나바스키는 스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매카시즘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했고, 베트남전쟁의 허상을 폭로했으며(그는 통킹만사건의 진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최초의 인물 중 하나였다), 민주당이 자신의 원칙을 반복해서 위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리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 훨씬 이전에 '팍스 아메리카나'의 본질을 뛔뚫었다."
랠프 네이더는 "스톤은 독립적이며 부패에 물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현대의 톰 페인이었다"면서 "그는 시력과 청력이 나빴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어떤 언론인들보다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들었다. 충만한 호기심으로 매일 매일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불의에 분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고위 소식통이 전혀 없이도, 성대한 기자회견장에 초대되지 못했으면서도 그는 어떤 유명 언론인들보다 많은 특종기사를 터뜨렸다. 그는 공공문서, 의회 청문회 기록, 주류신문의 기사들을 헤집으면서 그 속에서 기사거리를 찾아냈다. 한번은 데이비드 할버스탐에게 〈워싱턴포스트〉는 읽는 재미가 쏠쏠한 신문이라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면 머리기사감이 도대체 어느 구석에 쳐박혀 있는지 도저히 예상할 수가 없거든."
네이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스톤은 다른 기자들과 점심을 먹으며 특종 거리를 수없이 일러주었으면서도 자신이 그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를 직접 만나지 못한 수많은 기자들도 그로부터 용기와 일관성을 배웠다. 다른 언론인들이 겁을 먹고 꽁무니를 뺄 때도 그는 당당하게 서서 좌, 우, 중도를 막론하고 모든 권력의 남용에 맞서 싸웠다."
그는 좋은 직장을 모두 내던지고 왜 자신만의 신문을 만들려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다.
"억압 받는 자들에게 약간의 위안이라도 주기 위해, 내가 직접 본 그대로의 진실을 쓰기 위해, 내 자신의 무능력에 의한 한계를 빼놓고는 그 밖의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의 충동을 빼놓고는 그 어떤 주인도 따르지 않을 자유를 누리기 위해, 진정한 언론인이란 어때야 하는가 라는 나 자신의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그리고 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이밖에 바랄 것이 또 뭐가 있겠는가?"
***위험수위를 넘어선 미국의 권언유착**
지금 이 시점에 I. F. 스톤을 기념하자는 글이 왜 미국에서 나와야만 했을까, 필자는 그 배경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의 권언유착이 이미 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언론인의 존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리크게이트'의 주역인 스쿠터 리비의 신원을 끝까지 함구하며 감옥행을 택한 전 〈뉴욕타임스〉 기자 주디스 밀러의 경우를 보자. 처음 그녀가 '취재원 보호'를 이유로 감옥행을 택하자 일부에서는 언론자유의 화신인 것처럼 칭송이 자자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주디스 밀러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있기 직전, 미국정부가 자신에게만 던져주는 정보를 바탕으로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에 관한 특종기사를 잇따라 터뜨리며 주가를 올렸던 언론인이다. 밀러 기자의 일련의 기사가 미국의 여론을 전쟁쪽으로 몰아가는 데 큰 기여를 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 및 개발이 거짓이었음은 이제 만천하가 아는 사실이다.
주디스 밀러의 '취재원 보호'는 본말이 뒤바뀌었다는 게 지배적 평가다. 본래 '취재원 보호'란 정부 등 권력기관의 비행을 폭로하는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부통령 비서실장 스쿠터 리비는 부시행정부의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관련 정보가 오도된 것임을 폭로한 전 아프리카 대사 조셉 윌슨의 신뢰성을 깎아내리기 위해 그의 부인이 CIA 비밀요원이라는 사실을 언론에 넌지시 흘렸다.
다시 말해 리비는 부시행정부의 비행을 감추기 위해 내부고발자의 신상에 관한 정보를 공개한 것이다. 단지 취재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부 권력자를 보호하는 것이 '취재원 보호'의 기본정신에 부합하는가. 물론 아닐 것이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만일 주디스 밀러가 2004년 대선 이전에 문제의 제보자가 스쿠터 리비임을 밝혔다면 부시 대통령의 재선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분석까지 하고 있다. 그럴 정도로 밀러 기자는 권력의 보호에 앞장 섰다는 것이다. 결국 밀러 기자는 감옥에서 나온 뒤 〈뉴욕타임스〉를 그만 두었다.
'워터게이트' 보도 이후 30년간 미국 최고의 기자로 군림해 온 〈워싱턴포스트〉 밥 우드워드의 권언유착은 더욱 심각하다. 우드워드는 2003년 6월 누구보다도 먼저 리크게이트의 실상을 알았으면서도 이 사실을 기사로 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소속된 〈워싱턴포스트〉의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최근까지도 CNN의 시사토크쇼에 나와 리크게이트가 가십거리에 불과하다는(부시행정부의 행위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식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써낸 책 때문에 비밀을 지켰다고 한다.
사실 그는 '워터게이트' 특종 이래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미국행정부 최고 관리들과 단독인터뷰를 바탕으로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써냈다. 그의 책에는 웬만한 언론인들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새로운 사실들이 들어 있었지만 정작 권력에 대한 비판과 문제의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의 책에 실린 수많은 고급정보는 권력에 대한 비판은 삼간다는 '파우스트의 거래'에 의해 얻어진 것이었다. 그는 한 회 강연료로 1만~5만 달러를 받을 정도로 미국 최고의 언론인으로 군림했지만, 그는 진실과 독자를 위해 봉사한 것이 아니라 권력과 자신의 명성을 위해 일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반성할 줄 모르는 미국의 주류언론**
더 큰 문제는 미국의 주류언론이 이처럼 심각한 권언유착에 대해 반성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달 중순, 온라인 저널리즘 연수의 일환으로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을 방문한 적이 있다. 우리의 현지 연수를 담당한 랜디 코빙턴이라는 언론학 교수는 보스턴, 필라델피아. 휴스턴 등 NBC의 지방네트워크에서 30년간 언론인으로 일했던 분이다.
이 분에게 이라크 침공 당시 미국 국민들이 미국 언론보다 BBC, 〈가디언〉 등 영국 언론을 더 많이 보았다는 얘기와 주디스 밀러 사건 등을 거론하며 '현재 미국 언론이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지 않은가?'라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주디스 밀러 사건은 이전의 제이슨 블레어 사건(〈뉴욕타임스〉 흑인 기자 제이슨 블레어가 여러 건의 기사를 날조한 사건)에 비하면 중대한 사건이라고 볼 수 없으며, 기자란 취재를 위해 권력자와 가까워질 수밖에 없고(기자가 권력자와 가깝다는 사실이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의미), 주디스 밀러 사건을 문제 삼는 것은 〈뉴욕타임스〉와 밀러 기자에 대한 시기심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라크전쟁에 대해서는 〈가디언〉이나 〈인디펜던트〉 같은 신문은 본래가 전쟁에 반대하는 신문이니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태도였다.
권언유착에 대한 문제의식은 별로 없었다. 연수 목적 자체가 언론기업의 사업적 측면에 집중된 것이라 그 뒤 저널리즘적 측면에 대해서는 토론할 기회가 없었지만 어쨌거나 1주일간의 방문에서 받은 느낌은 미국의 주류언론은 현재 '진실보도'라는 언론 본연의 사명보다는 돈벌이에 훨씬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이었다.
***'대중권력'이라는 새로운 적**
하지만 우리의 언론 상황도 미국의 권언유착을 걱정할 만큼 한가하지는 않다. 언론의 주적으로 꼽혀 온 정치권력과 자본 중 정치권력에 의한 외압은 이제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언론이 스스로 정치권력자연하면서 국민에 의해 합법적으로 선출된 정치권력을 능멸하려 하는 상황이 오히려 문제가 될 뿐이다.
반면 자본의 압력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인터넷 등 뉴미디어와 무료신문의 공세 앞에 이제 신문은 신뢰의 위기를 넘어 생존의 위기를 맞고 있다. 자본의 압력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미국의 오늘이 한국의 내일을 보여준다고 한다면 앞으로 우리 언론도 돈벌이에 더욱 매진할 것이 거의 분명하다.
그런데 여기에 새로운 적이 등장했다. 이른바 '대중권력'이다. 이번 황우석 사태를 거치면서 필자는 '대중독재'라는 말을 여러 번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지난 수년간 '황우석 신화'를 만들어내는 데 앞장서 온 한국의 주류언론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황우석 신화'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추태를 연출했다. '황우석 신화'에 대한 정당한 문제제기와 합리적 검증을 외면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문제제기 자체를 억압하면서 그저 대중들의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할 뿐이었다. 우리 언론에서 '독립성'이란 이제 '신화'가 돼버린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이러매, I. F. 스톤의 다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억압 받는 자들에게 약간의 위안이라도 주기 위해, 내가 직접 본 그대로의 진실을 쓰기 위해, 내 자신의 무능력에 의한 한계를 빼놓고는 그 밖의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기 위해, 나 자신의 충동을 빼놓고는 그 어떤 주인도 따르지 않을 자유를 누리기 위해, 진정한 언론인이란 어때야 하는가라는 나 자신의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그리고 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이밖에 바랄 것이 또 뭐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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