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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갇힌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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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갇힌 여인

감독 샹탈 아커만 | 출연 스타니슬라 메하르, 실비 테스튀 | 제작 스튜디오 카날 | 수입/배급 이모션픽쳐스 | 등급 18세 관람가 | 시간 117분

16mm 필름으로 찍은 듯한 영상이 투영된다. 수영복을 입은 두 명의 여인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해변이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한 여인. 그 여인과 시선이 마주치는 남자는 지금 영사기를 돌리고 있다. 잠깐씩 리와인드 해가면서 주의 깊게 그 영상을 분석하듯 바라보고 있는 남자. 그는 주인공 시몬. 그는 그 영상 속의 여인 아리안을 사랑하는 남자이며 이 영화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시네필의 시선을 가진 인물이다.

영화 〈갇힌 여인〉은 한 여인을 사랑하는 남자의 시선을 따라가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사랑하는 아리안과 함께 지내고 있지만 아리안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잠시도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아리안이 가는 모든 장소를 뒤쫓아가고 아리안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있다. 누군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그의 행위로부터 그의 진실을 알아내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행위일 수 있다. 벨기에 출신의 여성 감독 샹탈 아커만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의 한 장을 영화화한 이 작품을 통해 소유욕과 집착을 담담하게 풀어간다.

폴커 쉴렌도르프를 비롯한 수많은 감독들이 도전했지만 좋은 결과를 거두지 못했던 프루스트 소설의 영상화를 샹탈 아커만은 전형적인 시네필의 상상력으로 성취해냈다. 그것은 바로 히치콕의 카메라를 빌려 로베르 브레송과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를 비롯한 수많은 유럽 거장들이 추구했던 서사의 방식으로 다가간 것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만들어진 영화는 묘사보다는 격언으로 상황을 정리했던 프루스트의 문장을 쉽게 떠올리게 만든다. 뿐만아니라 샹탈 아커만은 프루스트의 독특한 언어를 영상으로 치환하는 방법을 전형적인 유럽식 가옥 구조로부터 찾았다. 유리문이 반복적으로 배치돼 있고 긴 복도를 주위로 방과 거실이 구분돼 있는 이 구조는 프루스트의 길고 장황한 데다 문장의 해체도 불사하는 언어적 용기로 가득한 레토릭을 닮았다. 일상적인 구조물로부터 형식주의적 힌트를 얻어낸 것은 샹탈 아커만에게 있어 새로운 시도가 아니다. 출세작 〈카우치 인 뉴욕〉에서도 아커만은 줄리엣 비노슈를 전형적인 미국식의 넓은 거실에 다양한 방법으로 배치하면서 대도시 속의 인간 소외를 그려낸 바 있다.

아커만이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시몬이 창 밖 길 건너편에서 아리안이 친구와 키스인지 아니면 프랑스식 인사 비주인지 알 수 없는 행위를 하는 장면에서 구체화된다. 사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면 오해는 더욱 깊어지게 돼 있는 법. 시몬의 시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아리안의 행동은 쉽게 파악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시몬의 불안함과 초조함을 시몬 가까이에 있는 카메라를 통해 알 수 있다. 결국 '갇힌 여인' 아리안은 시몬의 집에 갇혀있거나 시몬의 집착과 소유욕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다. 시몬의 시선 속에 갇혀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몬의 시선에 따라 함께 생각하는 관객들 역시 아커만의 카메라 속에 갇혀있는 것이다. 배우와 관객과 카메라의 이 기하학적 배치는 니콜라스 로그를 비롯한 유럽식 스릴러의 장인들이 주로 사용했던 방식이다. 샹탈 아커만은 이렇게 스릴러적 장치를 이용해 멜로를 성취한다.
시몬은 결국 스스로 아리안을 떠나려고 한다. 시몬의 욕망이 아리안을 떠나게 했다거나 시몬의 소유욕을 아리안이 즐기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샹탈 아커만은 쉽게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시몬이 영화의 러닝타임인 1시간 57분 내내 집착했던 것은 사랑하는 대상이 존재하느냐 아니냐의 탐구였을 뿐이다. 아리안이 다른 이를 사랑한다는 판단과 동시에 시몬의 사랑은 소멸해버렸는지도 모른다. "부재(不在)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확실하고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뿌리깊고 가장 파괴할 수 없는 가장 충실한 현존이다"라는 프루스트의 말은 '눈 앞의 존재'에만 집중하고 그것으로 현실이 아닌 환상 속의 자기 만족을 느끼다 결국 '부재'를 선택하는 주인공 시몬에게 바로 적용될 수 있는 한마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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