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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성장영화, 뛰어난 성장소설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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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성장영화, 뛰어난 성장소설에서 나온다

[북 앤 시네마]〈청바지 돌려입기〉 | 2001 | 앤 브래셰어즈 지음 | 공경희 옮김 | 문학동네 |

성장영화는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으며 폭넓은 관객들에게 보편적인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장르다. 성장소설 역시 아무리 읽어도 새로우며 많은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장르다. 영화사와 문학사에서 우리는 수많은 뛰어난 성장영화와 성장소설을 봐왔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부터 테리 즈위고프의 〈판타스틱 소녀백서〉와 카트린 브레이야의 〈팻 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과 J.M.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거쳐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에 이르기까지, 이 장르의 걸작들은 누구나 소중했던 한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마들렌 과자 같은 존재다.

DVD로 직행하는 〈청바지 돌려입기 The Sisterhood of the Traveling Pants〉는 빼어난 성장영화 목록에 반드시 추가할 만한 작품이다. 미국의 여성 작가 앤 브래셰어즈가 쓴 이 영화의 동명 원작 소설은 지난 2001년 첫 출간된 뒤 수주 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으며, 그 해 아마존이 선정한 '최고의 책'에 뽑히기도 했다. 출판사 편집자 출신인 브래셰어즈는 친구들과 청바지를 돌려 입는다는 한 십대 소녀에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이 소설을 썼으며, 이후 〈자매회의 두 번째 여름 The Second Summer of the Sisterhood〉(2003) 〈바지를 입은 소녀들: 자매회의 세 번째 여름 Girls in Pants: The Third Summer of the Sisterhood〉(2005) 같은 속편을 써냈다.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은 전세계 수십 개국에 번역되었으며, 속편들 역시 꾸준히 좋은 평가를 들었다.

켄 콰피스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지난 6월 워너 브라더스의 배급망을 타고 미국 개봉해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비유하자면 미국판 〈고양이를 부탁해〉라고 할 만한 이 영화는 여름방학을 맞이한 16세 소녀 네 명의 이야기를 그린다. 미국 동부의 어느 동네에 살고 있는 네 명의 주인공은 외모와 취향과 성격이 제각각 다르지만 오랫동안 우정을 나눈 사이다. 이들은 한 구제 옷가게에서 낡은 청바지 한 벌을 사게 되는데, 놀랍게도 이 청바지는 마법처럼 모두의 몸에 꼭 맞는다. 친구들은 '청바지 자매회'를 결성하면서 서로 떨어져 지내게 된 방학 동안 청바지를 일주일씩 돌려 입기로 한다. 그리스 산토리니 섬의 조부모님 댁에 여행을 간 수줍은 레나, 멕시코의 축구 클럽에 여름 훈련을 가는 활달한 브리짓, 이혼한 엄마와 살다가 아빠를 만나러 가는 영리한 카르멘, 그리고 대형 슈퍼마켓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동네 사람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는 반항적인 티비가 바로 그들이다.

영화에는 사춘기 소년들이 겪을 법한 다채로운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처음 느끼는 풋풋한 사랑의 감정에 수줍어하고, 자신이 강렬히 욕망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으며, 어긋난 가족관계에 혼란스러워 하고, 다채로운 이웃들의 모습에서 삶의 진실을 깨닫는다. 청바지는 이들의 우정을 다독이고 느낌을 공유하며 견고한 유대를 형성하는 뛰어난 상징물이다. 그리스 산토리니와 멕시코 해변가의 아름다운 풍광과 개성 넘치는 젊은 배우들의 호연, 시원한 음악과 정교하고 깔끔한 편집이 돋보이는 영화는 잘 만든 미국 독립영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물론 영화는 영화적 즐거움을 위해 소설을 다소 드라마틱하게 각색했다. 굵은 뼈대는 같지만 주변 인물들을 좀더 단순하게 정리하고 극적인 에피소드를 더욱 가미했다. 네 명의 주인공들의 다중 시점에서 교차하며 진행되는 이야기의 역동적인 전개 방식은 소설과 영화의 같은 점이지만, 경쾌하고 세밀한 앤 브래셰어즈의 문장은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소설만의 고유한 매력이다.

대개 이 장르의 작품들이 십대인 주인공의 시선에서 기성 세대의 위선과 모순을 풍자하는 전형적인 구성을 취하기 일쑤지만, 앤 브래셰어즈는 그 대신 십대 소녀들 자신의 일상세계와 다채로운 주변 인물과의 아기자기한 체험, 그리고 거기서 비롯되는 자아의 내면적 성장을 묘사하는 데 비중을 둔다. 십대 소년이 주인공인 성장 소설은 많지만, 십대 소녀의 입장에서 그들 특유의 예민한 정서를 파헤친 드문 소설이라는 점에서 더욱 가치있는 작품이다. 주변에 사춘기를 막 통과한 십대 소녀가 있다면, 반드시 권하고픈 소설이자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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