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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우리 사회 '선진화' 담론, 그것 참 허구적이네요"

'지구촌, 분석과 전망'〈36〉황우석 사태와 '개발독재의 망령'

***선진화 담론의 허구**

근대화, 민주화 담론 이후에 주류 정치세력과 주류 언론에 의해 가장 많이 회자되는 구호가 "선진화"다. 선진화는 아직 담론이라는 이름을 부여 받을 자격을 갖추고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콘텐츠가 없기 때문이다. 이름은 멋있는데,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아무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딱 부러진 설명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만약 2만 달러 시대를 달성하자는 것이라면 선진화는 고작 돈으로 환산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법치를 통해 확립하자는 것이라면 이는 근대화, 민주화와 별 다를 것이 없다. 아니면 선진국에서 이러 저러한 것을 배워오자는 것이라면 아직 무엇을 왜 어떻게 배워야 할 것인지 그 누가 뚜렷한 원칙과 철학을 제시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따라서 선진화는 아직 담론이라기보다는 실체 없는 단순한 "구호"다.

이러한 선진화를 가장 앞서서, 자랑스럽게 외친 것이 한국의 여야를 막론한 주류 정치세력과 주류 언론들이다. 앞에서 지적했지만 무엇이 선진화인지, 무슨 철학과 원칙을 가지고 선진화를 추구하는지 스스로 확신이 없지만 뭔가 국민을 끌어당길 화두가 필요해서 일단 던지고 본 구호가 아닌가 싶다.

근대화는 근대를 목표로 하고 있고, 그 근대의 내용이 무엇인지 대부분 합의하고 있다. 민주화는 민주를 목표로 하고 있고, 그 민주의 내용이 무엇인지 대부분 합의하고 있다. 선진화는 선진을 목표로 하고 있고, 그 선진의 내용이 무엇인지 대부분 모르고 있다. 다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선진임을 알 뿐이다. (근대와 민주는 대상이 되는 명사인데 선진은 어떤 그 무언가의 대상을 향해 가는 동사가 아닌가?)

그런데, 최근 황우석 사태의 전개과정을 살펴보면서, 선진화를 외치는 주류 정치세력(정부를 포함한)과 주류 언론들이 진정 선진화를 외치는 그들이었는지 정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되었다. 이들의 언행은 선진화가 아니라 근대보다도 훨씬 뒤떨어진 가장 후진적인 것이었다. 역시 이들은 아직도 선진화의 내용에 대한 충분한 철학적 천착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났다. 정작 가장 선진적인 대응을 했어야 할 사안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하게 대응했는지, 항상 그래 왔지만 또 다시 "혹시"가 "역시"가 되는 절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도 "선진화"의 내용에 대해 천착하지 못하고 있고, 단 한번도 "선진화"를 주장해 본 적이 없어서 "선진화"의 내용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다만 필자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발전을 희망하고, 보다 나은 사회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선진적이지 않은 것" 혹은 "후진적인 것"이 무엇인지일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여기서 황우석 사태에서 드러난 "선진화 세력"의 "후진적 담론"을 따져보고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고자 한다. '우리는 그러한 담론에 동조한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모든 선진화 세력을 똑같이 보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사태에 대해 방관자적, 기회주의적으로 눈치만 본 정치, 언론 세력, 그리고 적극적으로 선진화를 주도하지 못한 정치, 언론 세력들은 역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기존의 선진화 세력임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이 사태에 대한 진정한 반성 없이 스스로 선진화세력이라고 다시 주장하는 또 한번의 무책임성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난자기증, 원천기술 담론"의 후진성과 개발독재의 유령**

우선 이번 사태에서 가장 후진적인 담론은 "난자기증"과 "원천기술"의 담론이다. 자발적으로 기증한 난자,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상징적인 보상은 한국적인 윤리기준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담론, 그리고 마치 금융위기 당시 금모으기에 비견되는 난자기증 열풍에 대한 예찬 등은 여성인권과 난자추출과정에서 생겨날 수 있는 위험성, 그리고 생명에 대한 비윤리성이 철저히 무시된 매우 "선진적이지 않은" 담론들이었다. 이에 대해 선진화 정치세력들이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을 주도하고, 개탄하는 경우를 전혀 보지 못하였다.

오히려 이러한 논리를 정당화하거나, 부추기는 역할을 한 인상마저 갖게 한다. 거꾸로 평소에 선진화를 줄기차게 외치지 않았던 소위 비주류의 정당과 언론이 가장 선진적인 주장과 보도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불행하게도 정부를 포함한 여야의 선진화 세력, 그리고 주류 언론들은 아직도 목적을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도 합리화 될 수 있다는 과거 개발독재 시절 논리의 여운을 남기는 "무서움과 공포"를 재현하였다. 여성인권, 생명에 대한 윤리, 그리고 여성 개개인의 안전에 대해 이렇게 무책임한 언행을 하거나, 이를 방관하는 지도층이 어떻게 선진화 세력이 될 수 있는지 정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로는 "원천기술"이 있으면 이것이 바이오산업의 미래와 국익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보유한 사람과 팀은 도덕적, 학문적, 절차적 하자가 있어도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는 또 한번의 후진적, 개발독재적인 담론이다.

선진국의 특징 중의 하나는 절차적 진실성(integrity)과 정직성이다. 이를 위반하는 사람은 지도자의 위치에서 바로 추방되며 기존에 주어졌던 모든 기득권은 박탈당한다. 물론 재기할 기회는 주어지지만 그것은 사회적 관용에 의한 재기의 기회가 아니라 전적으로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며 대부분의 경우 재기에 성공하기 어렵다. 그만큼 절차적 진실성과 정직성이 중요하며 일단 이러한 문제가 드러나면 사회적으로 매장된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통해 은폐할 수 있다면 의혹만 제기된 채 넘어갈 수도 있으나, 사회가 투명해지면서 이러한 은폐는 더욱 어려워진다. 이러한 면에서 정보조작, 인권침해 방치를 정당화하는 최근의 미국은 선진국에서 후퇴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에 대한 건전한 비판세력이 존재한다는 것 역시 인정해야 한다.)

황우석 사단은 현재 진행 중인 서울대의 검증과정에서 틀림없이 밝혀질 것으로 믿지만 학문적, 절차적 진실성의 면에서 너무나 많은 의혹을 남기고 있다. 특히 2005년 〈사이언스〉에 기고된 논문의 데이타 조작은 이미 거의 사실로서 드러났으며, 황우석 교수의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 역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관계자, 주류 선진화 정치세력과 언론은 얼마 전까지 "원천기술"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 국익을 위해서는 그 정도의 진실성의 하자는 이쯤에서 "덮고 가자", "국가의 미래를 위해 황우석 팀을 살리고 지원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결국 성과만 있으면 그 과정상의 조작과 진실의 왜곡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매우 후진적인, 개발독재의 담론이 다시 튀어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주류 언론이 보여준 근거 없는 오보와 의도적 기사 조작, 사설, 칼럼 등은 정직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을 분개시켰다.

도대체 이 땅의 선진화 정치세력에게 있어서 절차적 정직성, 도덕성은 이렇게도 중요하지 않은 것인가? 주식시장에서 큰 돈만 벌 수 있다면 내부정보를 통해 부정직하게 투자해도 괜찮은 것인지,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범법을 해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괜찮은 것인지,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정치인을 매수해도 괜찮은 것인지, 국익을 위해서라면 정직성, 도덕성을 과감히 포기할 수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이들이 어떻게 일반 국민들과 학생들에게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라고 가르칠 수 있을 것인가? 이들이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가면서 "봐라 결과는 우리가 이기지?"라고 거리를 활보한다면 한국의 선진화는 어떻게 달성될 것인가?

***정부 대응의 후진성과 소프트 파워의 실추**

이러한 전 과정에서 가장 실망을 금치 못하게 한 것은 정부의 대응이다. 참여정부 역시 선진화를 주장했다는 면에서 위에서 언급한 "선진화 정치세력" 중의 하나다. 그런데 앞에서 지적한 후진적인 담론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민주화를 달성하고 개혁을 강조하는 정부와 여권이 황우석 교수 사태에서 제기된 다양한 문제인 생명윤리, 여성인권, 국민의 안전, 도덕성, 정직성, 과학적 연구에 있어서의 진실성의 위반 등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반응을 보였던 것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정말 선진적인 정부이고, 또 선진화를 추구하는 정부라면 황우석 팀의 진실성과 정직성에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한 순간, 정부의 연구 지원 원칙과 사후 처리의 방향에 대해 진실성과 정직성에 근거한 선진적인 원칙과 입장 발표가 있었어야 했다.

과정상의 하자보다는 오히려 원천기술을 강조하며 정직하지 못한 학자를 비호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줌으로써 현 정부는 도덕성에 있어서 국제적으로 치명적 오점을 남기게 됐다. 이렇게 도덕성과 선진적 규범의 위반에 관대한 정부가 어떻게 동북아시아에서 중재자, 균형자 역할을 하고, 신뢰구축을 하고, 어떻게 소프트 파워를 사용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특히 한국정부는 북한인권이라는 인류보편적 가치에 대해 적극성을 보이지 않아서 국제적으로 한국정부의 가치지향에 대해 의심을 받고 있다. 또한 현정부가 가장 중요시하는 외교사안 중의 하나인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하여는 인류보편적 가치의 잣대를 적용하여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외교적 문제를 보완ㆍ강화하기 위해, 정직성, 진실성(integrity)과 같은 보편적 규범과 가치에 대해 다른 어느 국가보다도 단호하게 나갔어야 했는데 오히려 반대로 나가 국제적 신인도를 더욱 하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결과적으로 가장 슬프고 절망적인 일은 이러한 후진성으로 인해 소위 선진화 정치세력이 약자와 장애인, 보통사람들의 희망을 부풀리고, 결국 저버리게 된 것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에 진정으로 귀를 기울였다면, 진정으로 절차적 투명성과 평가과정을 강화했다면, 조금만 정치색을 배제했다면 이들의 절망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필요 이상으로 기대를 부풀려 놓고 이제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을 다시 정치적으로 특정인에게만 전가하려 한다면 진정한 선진화 세력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선진화세력이 다시 태어날(born again) 계기로 삼는 것이 오히려 정도를 걷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영웅과 희망은 황우석이 아닌 젊은 자연과학도였다**

모든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이지만 황우석 사태의 과정에서 발견된 희망은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세대의 활약과 비판세력의 존재다. 필자도 이 과정에서 〈프레시안〉과 BRIC, 그리고 과학갤러리 웹사이트를 "눈팅"하여 이들이 체계적이고, 논리적이고, 정직하게 제기하는 문제점들과 비판을 읽어 왔다. 그리고 감탄했다. 이들, 특히 젊은 과학자들은 정치색을 배제하고 최대한 자신들의 기준과 원칙에 맞추어 철저하게 스스로 정직하려고 하였고 또 한국의 우상과 권위에 정당한 도전을 하였다.

또한 웹사이트의 운영을 보아도 최대한 지켜지는 게시판의 예의, 실증적 데이타와 체계적 논리를 사용하는 과학적 엄밀성, 그리고 넘치는 재치와 창의성은 한국인으로 태어난 자부심을 갖게 하였다. 우리의 영웅은 황우석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었고, 우리의 희망은 황우석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이들에게 있었다. 이들은 국가이익이라는 국제정치학적 개념에 대해서, 그리고 국가의 신인도라는 소프트 파워에 대해서도 기성 국제정치학자를 능가하는 뛰어난 분석력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문제를 색안경을 끼지 않고 진실하게 접근하는 자세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믿고 싶다. 인문사회과학을 하는 우리가 이들에게 배울 것이 너무나 많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물론 이들 웹사이트에 인문사회과학도도 일부 참여했다.)

선진화를 원한다면, 그리고 선진화라는 구호를 사용한다면 이제 우리는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를 나누어 처음부터 색안경을 끼고 사회를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슈에 따라 가장 정직하게,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기준을 적용하여 잘못을 비판하고 사회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선진화라는 구호를 사용하지 말고 실용주의라는 말을 쓰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번 사안에만 국한한다면 가장 선진적인 세력들은 MBC, 프레시안, 민노당, 그리고 한겨레 등(無順)이고, 이들보다 더욱 선진적인 사람들은 정치적인 판단보다 과학적 진실성이라는 가치를 꿋꿋하게 추구한 젊은 과학자들, 그리고 BRIC, 과학갤러리 등이다.

이들 비주류 언론과 정치세력, 단체 등이 이번 사안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안에서도 선진적일 수 있을지 아직 확신을 가질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에 얻은 명성을 계기로 다른 모든 사안에서도 진정한 integrity(정직, 진실)를 적용해 한국의 선진화를 이끌어 나가길 기대한다. 그리고 인문사회과학도도 열린 마음으로 이번에 자연과학도가 보여준 선진성을 배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번 황우석 사태를 통해 선진화 정치세력은 선진화의 내용이 무엇인지 진실되게(with integrity) 성찰하고 천착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상당수의 국민들이 전체주의적 "공포"를 느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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