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뷰 포인트]킹콩 King Kong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뷰 포인트]킹콩 King Kong

감독 피터 잭슨 | 출연 나오미 왓츠, 애드리언 브로디, 잭 블랙 | 수입, 배급 UIP 코리아 | 등급 15세 관람가 | 시간 180분

티라노사우러스와 체구가 맞먹는 거대한 고릴라 킹콩이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포효하는 것만큼 영화 〈킹콩〉은 러닝타임 3시간 내내 시끄러운 액션장면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하지만 사실은 영화 내내 마음 한구석을 심하게 울린다. 영화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사랑의 밀어가 가득한 러브 스토리를 보는 듯한 착각까지 일으킬 정도다. 실제로 킹콩이 금발의 미녀 '앤(나오미 왓츠)'을 조심스럽게 자신의 '손안에 품고' 둘이서 잠을 청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평화로운 장면이다. 따라서 영화 〈킹콩〉은 연말 시즌을 겨냥한 SF액션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또 한편의 '러브 액츄어리'이며 올 연말 최고의 로맨스 작품이다. 마지막 순간, 앰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추락하기 직전에 슬픈 눈으로 앤을 바라보는 킹콩이, 만약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면, 이렇게 얘기했을 것이다. "너는 내 운명! 죽어도 좋아!"라고. 킹콩은 앤을 위해 스스로 몸을 던진다.

〈반지의 제왕〉으로 아마도 죽을 때까지 자신이 찍고 싶은 영화를 마음대로 찍을 수 있게 된 피터 잭슨 감독은 이번 〈킹콩〉으로 그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감독이며 또 그점에 있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중간중간 황당한 B급영화가 만들어진 것을 빼고 1933년의 메리앤 C. 쿠퍼의 원작영화와 1976년 존 길러민 감독의 리메이크작에 이어 세번째로 만들어진 피터 잭슨의 이번 영화는, 영화 한편이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피터 잭슨은 쿠퍼의 원작을 9살때 처음 보고 잊혀지지 않은 기억을 가슴 속에 계속 담아 두었다가 36년만에 자신의 영화로 재탄생시켰다. 재미있는 사실은 제시카 랭이 나왔던 1976년판은 대체로 싹 무시하고 쿠퍼 감독의 1933년작을 자신의 스타일을 가미해(동굴에서 거대한 거미가 인간을 잡아먹는 장면은 자신의 초기작 〈고무인간의 최후〉때부터 보여 준 철저한 B급 정서의 지독한 취향에 따른 것이다) 충실하게 따라가려 했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만 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1편은 거대한 괴물 킹콩의 캐릭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 2편은 나이트 슬립 사이로 살짝살짝 비치는 앤의 육체를 좀더 강조했기 때문이다. 피터 잭슨 같은 사람은 '벗은 여자'보다 '거대한 털복숭이'에 더 매력을 느끼는 인물일 것이다.

잭슨의 '취향'이 어디에 있든 그건 그리 중요하지가 않다. 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원작 〈킹콩〉을 어떻게 변형시켰는지가 아니라 왜 지금 다시 〈킹콩〉을 세상에 내놓았느냐일 것이다. 1976년판에서 킹콩이 기어 올라가는 건물은 지금은 없어진 쌍둥이 무역빌딩이다. 이번엔 1편에서처럼 다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기어 오르지만 킹콩이 바닥으로 떨어질 때는 이상하게도 무역센터의 붕괴 순간이 떠올려진다. 엠파이어스테이트의 피뢰침에 서있는 킹콩을 전투기들이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장면 역시 9.11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9.11의 그 순간처럼 충격과 놀람과 분노를 느끼게 하기 보다는 이상하게도 묘한 허탈감과 슬픔을 느끼게 한다. 돌이켜 보면 9.11의 그 순간은 지금 이 세상의 비극을 드러낸 가장 슬픈 순간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피터 잭슨의 〈킹콩〉이 얘기하고자 하는 핵심은 바로 거기에 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킹콩〉을 두고 정치적 논쟁을 벌일 필요는 절대 없다. 피터 잭슨은 가장 거대하고, 가장 사나우면서도, 무엇보다 가장 '사랑스러운' 킹콩을 탄생시켰다. 〈킹콩〉은 올 연말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이다. 하지만 가장 기대를 뛰어넘은 작품이 됐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