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곽경택/출연 장동건, 이정재, 이미연/제작 ㈜진인사필름/배급 CJ엔터테인먼트/ 등급 15세 관람가/시간 124분
아마도 이 영화가 마지막이 될 터이다. 지난 몇 년 사이에 국내 영화계에는 '메일 쇼비니즘 영화(male-chauvinism movie: 강한 남성과 애국심을 강조하는 영화)'가 줄을 이었다. 흥행도 터졌다. 대체로 민족주의적 색채와 그 느낌을 강하게 내세우는 영화는 흥행에서 절대 밑지지 않는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대표적인 작품이었다. 그런데 그 효시격 작품 가운데는 이번 영화 〈태풍〉을 만든 곽경택 감독의 〈친구〉도 포함돼 있다. 그렇다면 곽경택 감독은 자신이 창출한 한국영화계의 새로운 트렌드 변화를 이번 영화를 통해 스스로 정리하는 셈이다.
〈태풍〉은 솔직히 말해, 드라마상으로는, 쉽게 마음이 끌리는 영화는 아니다. 탈북자 출신 의 해적 '씬(본명은 최명신, 장동건이 맡았다)'이라는 남자가 있고, 이 남자는 남한정부에 대해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철천지 원한을 품고 있는데, 어느날 이 남자가 동남아시아 공해상에서 위성유도장치를 탈취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는 이야기다. 이에 위협을 느낀 남한정부는 해군 UDT 출신의 강세종(이정재)을 급파하고 두 남자 사이에서는 숨막히는 대결이 펼쳐진다.
보통의 액션 블록버스터에서 줄기를 이루는 이야기들이 〈태풍〉에서도 어김없이 펼쳐진다. 한맺힌 가족사가 있고 끝까지 수호해야 할 자신의 국가나 조직이 있으며 적이되 친구가 되고싶은 두 남자의 기묘한 우정이 있다. 이것은 어찌보면 자신의 작품 〈친구〉를 변주해 낸 것이다. 곽경택은 늘 두 남자의 비극적인 우정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태풍〉이 색다를 수 있었던 데는, 우리영화로서는 보기 드물게 액션 신의 상당부분이 해상에서 펼쳐진다는 것이다. 김블장치(거대한 인공 수조세트)로 만들어 내는 거대한 파도. 그 파도가 배 안까지 넘쳐 들어오는 상황에서 두 남자가 혈투를 벌이는 마지막 장면은 국내영화가 테크놀로지면에서 한 발짝, 아니 몇 발짝 더 앞서 나가게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테크놀로지의 진보란, 드라마의 밀도 감이 그만큼 더욱더 빼곡히 들어설 때만이 비로서 그 예술적 가치가 구현되는 것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이 두 가지는 종종 어긋나기 일쑤다. 〈태풍〉 역시 두 가지를 욕심 냈다가 결국 하나만 건지게 됐거나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한쪽으로만 주력한 듯한 느낌을 준다. 전자보다는 후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태풍〉을 보고 있으면 스펙터클에 대한 감독의 강박증이 곳곳에 배어있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와는 달리 왜 이 두 남자가 기묘한 우정을 느끼게 되는지, 영화 속 강세종의 마지막 멘트처럼 왜 '씬'을 두고 '나중에 다시 만나면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그 이유를 보다 가슴에 와 닿도록 설명해 내지는 못한다. 이건 감독의 능력문제 라기 보다는 선택의 문제, 곧 '옵션'의 문제였다는 생각이 든다. 곽경택 감독은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철저하게 '큰 그림'을 좋아하는 일반관객들을 겨냥했던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평단의 다소 불만 섞인 투덜거림에 대해서는 곽경택 역시 충분히 예상했거나 수용가능 한 일일 것이다.
안타까운 건 〈친구〉와 〈챔피온〉 〈똥개〉 등 전작들에서 보일 듯 말 듯 자신 나름대로의 시대감각을 선보여 왔던 곽경택이 이번 〈태풍〉에서는 지금 이 순간의 삶에 대해 그다지 유 의미한 발언을 해내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얘기대로 실향민인 아버지를 위해서 이 영화를 찍었다면 〈태풍〉은 좀더 정치적 드라마가 됐어야 했을 것이다. 아버지 세대가 익숙한 건 바로 그것이니까. 그런데 얘기의 틀은 오히려 신세대를 겨냥하고 있다. 태풍은 종종 진로를 예측하지 못하게 한다. 〈태풍〉도 어디에선 가부터 그 방향을 잃었다. 보기 드문 역작이 될 수 있었음에도 그냥 볼만한 블록버스터로 남은 건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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