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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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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

[핫피플]영화배우 이영애

솔직히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지난 해 제9회 부산국제영화제 오픈 토크 때의 일이다. 이날은 홍콩의 양조위와 우리의 이영애의 대담이 준비된 날이었다. 오픈 토크의 모더레이터로서 두 사람을 기다리면서 난 평소답지 않게 긴장이 됐다. 이영애 때문이었다. 그녀는 과연 양조위와 어떤 대화를 나눌 것인가. 무엇보다 그녀는 과연 사회자인 내게 '친절하게' 대할 것인가.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이날 내게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토크 내내 내게 도대체 그런 질문은 왜 하는 거야,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왜 그때 그녀가 그런 얼굴을 했는지 얼마 전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보고야 알았다. 〈친절한 금자씨〉를 보면서 지난 해 그날, 마치 영화 속 백선생 역의 최민식이 당했듯이 양쪽 엄지 발가락에 총알이 박히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아마도 그때부터 이미 '금자씨'로 살아가고 있었을 터였다.

***베일 안에 숨어 사는 여배우**

안그런 척 하지만 이영애는 평소 철저하게 베일 안에 숨어 사는 여배우다. 사람들은, 그녀에 대해서 사실은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새삼 놀라게 된다. 근데 그도 그럴 수밖에 없다. 이영애는 지금껏 그 흔한 연예 프로그램 같은 곳에 나온 적이 없다. 요즘의 여배우들은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서라면 별별 이상한 TV프로그램에 나와 좋아하는 남성형에서부터 잠자는 습관, 자주 먹는 것 등등 대중들에게 안 토해내는 신변잡기가 없다. 그런 여배우들은 그래서, 신비감이란 게 없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느 사이엔가 그 여배우에게 흥미를 잃게 되고, 또 조금 이따가는 그 여배우가 나오는 영화에 대해 별로 궁금해 하지 않게 된다. 여배우들이 자꾸 도태되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영애는, 늘 부드럽고 달콤한 미소를 짓고 있는 바람에 정말로 '산소 같은 여자'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 표정 뒤에 아주아주 영악한 미소를 담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이른바 신비주의 전략이라고 하는 것을 이영애만큼 효과적으로 구사하는 여배우도 별로 없다. 당신들이 아무리 그래봐, 난 나에 대해 해줄 얘기가 전혀 없어, 라고 이영애는 얘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정도쯤이면 실제로 그녀 안에 '금자'가 들어있는 셈이다.

최근 들어 이영애가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거의 유일한 사람은 아마도 박찬욱 감독처럼 보인다. 그건 이번 영화 〈친절한 금자씨〉를 보면 알 수 있다. 두 사람의 정신적 '교합'이 없었다면, 특히 이영애가 자신의 깊은 속을 감독에게 벗어 보이지 않았다면 영화가 이렇게 나올 수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감독과 그의 작품에 대해 평가할 때 그저 추상적으로 연출력 연출력하고 떠들지만 도대체 연출력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건 바로 자신이 캐스팅한 배우에게서 깊숙한 내면연기를 끌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극단적인 캐릭터로 자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깬 여배우**

박찬욱의 연출력에 대해 장황한 얘기를 지껄여 대는 것은,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챘을 것이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영애는 지금껏 자신이 보여왔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얘기해 왔다. 이영애는 얼굴만 예쁘잖아. 이영애는 공주병 환자일 걸? 이영애가 연기를 한다고? 이영애가 복수극을 연기한단 말야?! 이제 그렇게 이죽대던 사람들, 이번 영화로 기가 팍 죽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이영애는 마치 영화 속 금자마냥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렇게 얘기한다.

"지난 13년간의 연기생활 동안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봐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게서 안정적인 무엇, 고급스러운 무엇, 상냥한 무엇, 변하지 않는 무엇 만을 원했다. 난 그걸 바꾸고 싶었다. 금자씨처럼 성녀와 마녀 사이를 오가는 극단적인 캐릭터야말로 나를, 그리고 나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친절한 금자씨〉는 개봉전 예매율이 80%를 기록할 만큼 사람들의 지대한 관심을 모았다. 예매율을 반영하듯 〈친절한 금자씨〉는 요즘의 한국영화로서는 보기 드물게 300만 고지를 넘보고 있다. 박찬욱의 영화는 어렵고 잔인해서 싫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영애의 복수극'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문구에 오히려 매력을 느끼는 모양이다. 그건 아마도,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이영애에게조차 '내안에 내가 너무나 많다'는 것을 발견하는 희열 때문일 것이다.

근데 그건 치사한 희열일까, 반가운 희열일까. 분명한 것은 이영애처럼 평소 가까이 하기 어려운 대중스타와 진짜 인생의 맛을 공유한다는 건 보기 드문 기회라는 점이다. 요즘 들어 이영애가 새롭게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CF에서의 인공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살아 숨쉬는, 진짜 산소 같은 여인처럼 느껴지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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