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사학법 무효 투쟁'을 한다며 거리로 나선지 사흘 만에 당 안에서 투쟁방향을 둘러싼 혼선이 불거졌다.
소장파 의원들은 15일 사학법을 국가정체성과 연계시킨 박근혜 대표의 '투쟁법'이 "지나친 발상"인데다 장외투쟁에 나서기까지 "당내 토론도 충분치 않았다"며 박 대표의 강경일변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원희룡 '사학법 규탄' 대신 '박대표 비판' **
영등포 역전에서 열린 이날 낮 집회에서는 대표로 '규탄사'를 맡은 원희룡 의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원 의원의 블로그에는 '규탄사' 대신 박 대표의 장외투쟁 논리를 정면 반박하는 에세이가 떠 있었다.
원 의원은 블로그 글을 통해 "사학법이 반미친북 세력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는 지나친 과장"이라며 "일방적으로 이 문제를 국가정체성과 연계하는 것은 분명 지나친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원 의원은 사학법을 규탄하는 박 대표의 논리를 "사학의 투명성을 높이고 건전사학의 불안과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우리 한나라당이 그동안 해온 노력을 모두 부인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원 의원은 "그간 한나라당의 수정 제안과 노력이 담겨져 있는 현재의 사학법에 대해 해묵은 색깔론과 전교조의 사학 장악이라는 비현실적 홍보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며 "지금의 이 잘못된 방향 설정은 바로 잡아져야만 한다"고 일갈했다.
이같은 생각을 읽은 박 대표 측은 집회 직전 원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규탄사' 대신 혹여 박 대표의 논리를 정면 비판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전했다고 한다. 원 의원은 "설마 거리에서 대표 비난이야 하겠냐마는 사학법 처리의 절차적 문제 외에 사학법을 색깔론으로 덮어씌우는 박 대표의 논리를 따라갈 수는 없다"고 답했다.
이에 양 측은 "서로 도움이 되지 않겠다는 판단 아래" 원 의원의 '규탄사'를 집회 순서에서 빼기로 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무슨 수로 국회에 돌아올텐가…" **
원 의원은 이후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박 대표가 나가도 너무 나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며 장외투쟁 등을 포함한 당의 투쟁방식에 다시 한 번 불만을 토로했다.
원 의원은 "전교조의 80%가 공립학교 선생님인데 무슨 수로 전교조가 사학을 장악하겠냐"며 '전교조로부터 우리 아이를 구해내자'는 당의 구호부터 반박했다. 원 의원은 "위기에 처한 보스를 구출해야 할 대표 주변이 이같은 사실관계도 잘못 파악한 채 보스를 낭떠러지로 몰아넣고 있다"며 '참모진'을 비난하기도 했다.
원 의원은 "사학법을 전교조가 이념교육을 하기 위한 법이라고 몰아붙여 놨으니 이 법이 철회되기 전에는 무슨 수로 국회에 돌아오겠냐"며 당장 원내복귀 대책을 걱정했다.
원 의원은 "예산 삭감도, 이라크 파병 연장도 사학법 투쟁을 접고 원내로 돌아오는 명분이 될 수 없을 것"이라며 "사학 대표들이 박 대표를 만나 노력은 고마웠으니 이 정도로 하고 국회로 들어가라고 떠밀어 주면 돌아오는 그림을 만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는 원 의원만의 반론이 아니다. 이성권 의원 역시 홈페이지 글을 통해 "사학법 투쟁이 중요한 만큼 치열한 내부 토론과 논쟁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농성장에서 문득 들었다"며 "솔직히 나는 이번 사학법을 둘러싼 우리 한나라당의 투쟁에 대해 명쾌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고진화 의원은 전날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나라당이 당 내에 어려움이 있거나 여당과 합의가 잘 안 되면 통상 정체성 카드를 꺼내들었는데 논리적 비약이 크다고 본다"며 "당일 갑자기 결정된 투쟁방침에 당의 구성원들도 우왕좌왕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박근혜 "명분 찾아 들어갈 일이었으면 아예 나오지도 말았어야" **
이에 박 대표는 "장외투쟁은 의총에서 결정된 사항이지 않냐"며 '당론'으로 반발기류를 눌렀다.
박 대표는 "내일 시청 앞 큰 집회를 앞두고 우리는 더 마음의 각오를 다져야 한다"며 "장외투쟁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자리에서 의사표시를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떤 의원님이 인터뷰에서 말한 대로 과반수이상이 반대하면 대표 직권으로 중재하겠다"는 말투에는 짜증마저 섞여 있었다.
박 대표는 "명분을 찾으면 들어가야 하지 않냐는 일부의 분위기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번 일은 명분을 찾아 들어갈 일이 아니다"며 "그렇게 할 일이라면 아예 투쟁을 시작하지도 말았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에 최연희 사무총장 등도 사학법 반대 여론이 증가하고 있는 인터넷 여론조사 결과를 강조하며 박 대표의 강경론에 힘을 보탰다.
이같은 의지에도 불구하고 지도부 역시 대규모 집회가 예정된 16일 이후에는 장외투쟁을 이어나갈 뾰족한 계획이 없는데다가, 연말 국회를 마냥 공전시킬 수만도 없는 상황이라 이번 주말께에는 장외투쟁 지속 여부를 둘러싼 내부 혼선이 본격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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