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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유치'의 끝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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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민자유치'의 끝은 어디인가?

공간연구집단의 '도시에서 유목하기' 〈8〉

***무담보ㆍ무보증, 누가 책임지는가?**

'무담보, 무보증, 무방문 신용 대출… 신청 즉시 1시간내 즉시 대출'

요즘 흔히 보는 대출 광고다. 뭘 믿고 담보도, 보증도 없이 빌려주는지, 그것도 1시간 내 전화만 하면 즉시 대출해준다고 한다. 전화를 해 보면, 실제로는 300만 원 이하의 소액대출이거나, 직장의 월급이나 신용카드, 즉 담보가 있어야만 돈을 빌려준다. 말로만 담보 없이 빌려주는 것이다. 물론 깍두기 형님들이 든든한 업주는 담보 없이 빌려줄 수도 있겠다. 못 받을까 걱정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업체들은 선이자에, 몇 달만 연체하면 원금의 몇 배가 되는 이자를 물어야 한다. 담보가 없을 경우에 치러야 하는 대가다.

정부가 기반시설을 건설할 때도 이와 비슷한 방법을 쓴다. 바로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이다. 사업을 할 때 돈을 빌리자면(financing) 담보나 신용이 있어야 하는데, 담보나 신용을 사업 자체(project)의 수익으로 대신하는 것을 말한다. 즉 될 성 싶은 사업에 대해 담보 없이 돈을 빌려주는 것이 바로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다. 위에서 말한 업체들이 돈을 빌려줄 때, 돈을 빌린 사람이 갚을 돈을 바탕으로 돈을 빌려주는 것과 비슷하다.

실제 기반시설의 건설에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담보만으로 비용을 마련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사업에서 발생할 미래의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돈을 빌리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사업 자체만으로 돈을 빌려주지는 않고, 여러 가지 위험관리방안이 사업 구조 내에 끼어든다. 예를 들어 정부가 사업주에게 장기간 시설을 운영할 수 있게 해준다든지 아니면 건설회사가 완공을 책임진다든지 등의 계약을 통해 사업의 위험을 여러 주체가 분산해서 떠맡는다.

이런 위험 관리 방안 중에서도 최고의 안전망은 정부가 책임지고 돈을 물어주는 것이다. 손실이 발생할 경우에 정부가 돈을 물어준다는데, 이 이상 안전한 사업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프로젝트 파이낸싱 사업의 수익률은 장기간의 위험을 감안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업의 수익률보다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은 이 사업을 잘 하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건설산업의 경우 사업기간이 길어야 몇 년이 보통이지만,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경우 사업기간이 보통 20-30년이기 때문에 장기간 돈을 묶어두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이런 민간의 돈을 끌어들이려고 수익률을 더 높여준다.

이렇게 높아진 수익률을 바탕으로, 또는 장기간의 위험을 감안해서 민간은 금융권으로부터 담보 없이 돈을 비싸게 빌리고, 그 돈으로 사업을 한다. 정부도 담보 없이 민간의 기반시설을 빌리고 혹은 사고, 그 시설을 이용한다. 민간의 입장에서는 정부가 일정한 수익률을 감안해서 손실을 보전해준다지만, 정부는 어디에 기대야 하는가? 개인의 입장에서 담보 없이 빌리는 돈의 결말은 신용불량자이지만, 정부는 어디로 가는가? 장기를 내다팔듯, 정부부처라도 내다 팔아야 하는가?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BTL을 살펴봄으로써 정부가 어디에 기대는지 살펴보자.

***누구 마음대로 우리 아이들의 돈을 쓰는가?**

한국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싱이 시작된 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미국에서는 1920-30년대 유전개발사업에서 이미 시작되었지만, 한국에서는 1995년 이화령터널사업의 공사비를 금융기관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싱 방법으로 대출받은 것을 보통 그 시초로 여긴다. 그 사업을 시작한 지 10년 만에, 한국판 뉴딜정책이라 불리는 종합투자계획의 일부로, BTL이라는 방식의 프로젝트 파이낸싱 유형이 만들어졌다.

그러면 BTL은 무엇인가?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여러 가지 사업방식이 존재한다. BTO, BTL, BOT, BOO 등으로 나뉘는데, 건설 후 소유권 및 운영권이 누구에게 귀속되느냐, 언제 귀속되느냐 등을 기준으로 구분한다. BTL은 정부가 지정한 사업에 대해 민간이 건설하고(Build), 소유권을 정부에 이전한 후(Transfer), 민간이 일정기간 동안 운영권을 받는데, 정부가 다시 임대료를 내고 이 운영권을 빌리는(Lease) 형식의 사업방식을 말한다. 군인아파트, 기숙사, 학교, 상하수도, 도서관, 미술관 등 다양한 생활편익시설들이 BTL의 대상인데, 당장 필요해 보이는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비용이 없어 시행하지 못하는 사업들이다.

그럼 여기에서 돈은 어디에서 나오고 어디로 흘러 들어가는가? 일단 건설 주체인 민간이 금융기관들로부터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 여기에 연기금도 장기적인 포트폴리오를 위해, 즉 채권수익률보다 수익률이 높기 때문에, BTL사업에 참여하게 된다. 이렇게 마련된 자금을 바탕으로 민간이 건설한(Build) 후, 소유권을 정부에 이전하고(Transfer), 정부는 민간에게 임대료를 지불하게 된다(Lease).

그런데 문제는 민간의 건설비용은 단기간에 걸쳐 발생하지만, 이 임대료는 보통 20년에 걸쳐 장기간에 지불하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시설들을 우리 후세대들로부터 거둔 세금으로 지불하는 것이다. 후세대들로부터 받을 돈을 현재 세대에게 지급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연금도 비슷한 방식으로 움직인다. 그렇지만, 연금은 다른 금융기관에서 차입한 돈과 함께 BTL사업에 뛰어들어 수익을 창출하지만, BTL사업은 어디에서 수익을 창출하는가? 아니 어디에서 비용을 마련하는가? 결국 미래 세대에게 세금을 더 거두는 방법 외에는 없다.

***그들의 돈은 남겨두자**

BTL이란 사업은 해야 하는데 돈이 없기 때문에 시작되었다.'사업은 해야 하는데'라는 말은 최소한 이 사업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지금처럼 주무관청에서 사업의 목록을 정하고, 후세대들에게 전가한다면 그 당위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이전의 대규모 국책사업들보다 실생활에 더 가까이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사업의 당위성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5년짜리 정부가 20년짜리 일을 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합의와 동의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또한 '돈이 없기 때문에'라는 말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동적으로 다음 질문을 연상시킨다. "도대체 돈을 어디에 쓰길래, 이 시설들을 짓는 데 우리 아이들의 돈을 써야 하나?" 정부 입장에서는 기존에 낭비되는 돈을 줄이는 것이 새롭게 모으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돈을 내는 국민은 멀리 있고, 그 돈을 쓰는 사람들은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멀고도 먼 미래에 문제가 된다 할지라도, 군인연금이나 공무원연금의 예에서 보듯이, 구멍이 나면 정부가 알아서 메우기 때문에 지금처럼 일단 쓰고 보는 것이다. 물론 조그만 문제는 하나 있다. 우리 아이들이 조금 더 열심히 해서, 조금 더 벌고, 조금 더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개발(ESSD)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지금은 일상어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데, '우리 아이들이 쓸 자원은 남겨두고 쓰자'라는 말이다. 미래 세대들을 생각하지 않고 너도나도 개발에만 몰두하다 보니 이런 개념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지금 등장하고 있는 BTL은 미래 세대들의 돈까지 현재 쓴다는 측면에서 지속가능하지 않은 개발이다. 지금 경제가 침체해 있다고 해서 그들의 자원까지 쓴다는 것은 그들의 미래를 막는 길이다. 윗돌을 괴기 위해 아랫돌을 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필자 이메일: redeye94@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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