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름/마"라는 말은 머리카락을 양편으로 넘겨 생긴 자리를 뜻합니다. 여기서 "마"는 머리의 윗자리를 의미하는 말인데, "가름/마"가 음운의 단순변환을 거치면 "가마"가 되고 그것은 인위적으로 갈라놓지 않아도 생기는 머리의 지점을 가리키게 됩니다.
"마"는 높다, 크다 등의 말에 허다하게 붙습니다. 산의 정상을 뜻하는 "산마루" 또는 "뫼/마루"나 "어마마마", "아바마마", "상감마마" 등의 "마"가 모두 그러합니다. 엄청나게 크고 많다 할 때, "어마마한"이란 말도 그런 연유를 가진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사람이 타고 다니는 "가마"는 "거마(車馬)" 또는 임시로 말처럼 만든 "가마(假馬)"라는 한자말에서 전환된 것으로 머리의 "가마"와는 그 뿌리가 다릅니다. 아무튼, 이 "가름"은 "가르다"에서 파생된 말로써 그 종류는 헤아릴 길이 없을 정도로 우리말에 그득하게 살아 있습니다.
당장에 "가름/마"가 생기는 "머리카락"의 "카락"이 그렇고, 몸의 지체인 "손가락", "발가락", "가랑이"가 모두 "가르다"의 자식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락국수", "숟가락", "젓가락"도 그렇고, 강을 뜻하는 "가람"도 땅과 땅 사이를 가르고 흐르는 물을 의미하게 됩니다.
"몇 가닥"의 "가닥"도 여기에 해당하며 언젠가 언급했던 "그런 까닭에"의 "까닭"도 그 가닥 가닥을 이어 따라 가보면 줄기와 뿌리가 나오게 되어 있다는 뜻으로 원인에 대한 해명의 언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갈기갈기", "갈래", "겨레"도 모두 "가르다"에서 나왔으며, "갈비"나 "갈피"도 모두 갈라진 쪽을 뜻합니다.
해서 "책갈피"가 그렇고,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갈라진 자리에서 어느 쪽을 짚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갈림길"도 마찬가지로 갈라진 길, 즉 한자로 표기하면 분기로(分岐路)나 교차로(交叉路)가 됩니다. 그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아는 것이 지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르/치다"는 "갈라/치다"의 합성어로 애초에는 땅을 갈고 소나 양을 치는 고대 농경사회의 생활상이 담겨 있다가 "사물을 가려내는 힘을 길러내도록 한다"로 그 뜻이 발전적으로 나가게 됩니다. 따라서 "가르다"는 양편으로 나뉘게 한다는 원초적인 동작에서부터, 이것과 저것을 가려냄으로써 사물을 분간해내는 능력까지 포함하게 된 것입니다.
옛날에는 머리에 "가름/마"를 곱게 만들어 단정한 모습을 지니는 것이 미덕이었습니다. 요즈음은 그런 "가름/마" 또는 "가르마"를 타는 사람은 찾기 어렵습니다. 그야 시대에 따라 변하는 유행이라고 치고, 진실과 허위를 갈라 그 진정한 뜻을 우리의 머리 위 으뜸의 자리에 올려놓는 능력조차 사라지는 것은 곤란할 것입니다.
한 농민의 죽음으로 그 사인(死因)을 둘러싸고 편이 갈라졌습니다. 그 까닭을 놓고, 줄기와 뿌리의 논쟁이 생긴 것입니다. 대통령을 포함하여 이 나라의 높은 분들은 가마 타고 다닐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림길에 서 있는 이 나라의 진정한 고통을 마주하려 하지 않습니다.
눈물의 "가람"이 땅을 적시고 그 마음들이 "갈기갈기" 찢겨나가고 있는데, 서민들에 비하면 그야말로 "어마마한" 힘을 가진 이들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습니다. 아니 엉뚱한 참견이나 잡담에만 열중하고 있습니다.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센타'(오후 4-6시/FM 104.5, www.ebs.co.kr)의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에 연재하는 것입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