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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버리는 권력의 끝은?"

김민웅의 세상읽기 <160>

자본주의 사회가 성립하는 과정에서 "빈곤"과 "시장의 발전"은 동전의 양면이 됩니다. 시장이 발전하면서 빈곤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의 빈곤을 대가로 일부의 부가 축적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빈곤의 최대의 희생자는 거의 언제나 농민이 되는 것은 역사가 생생하게 증언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는 오늘날 그대로 수수방관되지 않고 있습니다.

농민들의 빈곤은 대체로 세 단계로 진행되어 갑니다. 그 첫 단계는 농사를 짓고 있던 땅을 빼앗기는 과정입니다. 산업의 발달과정에서 농토는 용도가 바뀌어 가게 됩니다. 특히 과거 봉건시대에 공동경작지로 사용했던 땅이 거대한 자본에 의해 점령되어가면서, 이를 통해 생계를 유지했던 농민들은 쫓겨나가게 됩니다. 일부 농민들이 유랑자 또는 빈민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 자본주의 역사에서 있었던 <인클로우저 무브먼트(Enclosure Movement)>가 그 보기입니다. 방직산업이라는 새로운 수익사업이 인기를 끌면서 기존의 공동경작지는 양을 키우는 목초지가 되고, 여기에 새롭게 울타리가 쳐지면서 빈부의 경계선이 확고하게 그어집니다. "인클로우저"는 울타리를 쳐서 막는다는 뜻인데, 부의 원천에 농민들이 다가가지 못하도록 봉쇄해버린 셈이었습니다.

자본주의 시장의 원천을 밝힌 <거대한 변환(The Great Transformation)>을 쓴 칼 폴랴니(Karl Polanyi)는 이를 가리켜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는 부자들의 혁명(a revolution of the rich against the poor)"이라고 불렀습니다.

두 번째 단계로는 "희생농정 시대"가 열립니다. 말하자면 농산물 가격은 산업발전의 이익증대를 위해 저가로 묶이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아무리 농사를 열심히 지어도 먹고 살기가 어렵게 되어지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단계에서는, 이른바 세계 자유무역체제가 확대되어 가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한 국가의 농업은 부자 나라의 농업에 시장을 내어주게 됩니다. 부자 나라의 농산물이 그 나라의 국가권력을 앞세워 다른 분야의 시장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위협으로 가난한 나라의 농업을 압살해버리고 맙니다. 가난하거나 힘이 약한 나라의 시장을 자신들이 독점해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 무역 체제 속에서 가난한 나라 또는 힘이 약한 나라의 농업은 더 이상 가격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사양산업처럼 취급받게 되고 맙니다. 그 나라의 식량은 이제 그 나라가 책임지지 않게 되어가고, 식량시장은 부자 나라의 거대한 농업자본에 급속하게 종속됩니다.

농업시장을 박탈당한 농민들은 마치 패잔병 신세가 되고 국가는 이들에게 잠시 대충 지원금이나 좀 주다가 결국에는 농업포기 쪽으로 유도하게 됩니다. 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가피한 희생으로 여기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농업의 쇠퇴나 포기는 이제 다만 산업구조의 재편 정도로 인식되지 않습니다. 이는 식량주권의 포기이자 생명산업의 붕괴를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인 것입니다.

농민들의 빈곤 문제를 가볍게 여기고 이들을 정책결정과정에서 소외시키며 세계무역체제를 이유로 들어 앞질러 스스로 정당한 저항의 의지를 저버리는 국가권력은 국민들에 대한 책임을 포기한 권력이 될 수 있습니다. 생명산업을 저버린 뒤에는, 이제 무엇을 또 내주려 하게 될까요? 농민들의 절규가 귀에 쟁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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