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 4월 중동의 위성방송 알 자지라 본사를 폭격하려 했었다고 영국의 <데일리 미러>가 22일 보도했다. 이 신문 보도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4월 16일 백악관을 방문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에게 알 자지라 폭격계획을 밝혔으나 블레어 총리의 만류로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당시 미군은 이라크의 팔루자에 있는 반미저항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벌이고 있었으며, 미국 정부는 알자지라의 보도가 반미저항을 부추기고 있다며 노골적 불만을 표시했었다. 이에 대해 블레어 총리는 언론사에 대한 폭격은 전세계적인 반발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며 간곡히 만류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데일리 미러>는 이같은 사실이 당시 두 정상 간의 대화를 담은 5쪽짜리 극비문서에 기록돼 있다고 밝혔다. 이 문서는 영국 총리실의 관리인 데이빗 커(David Keogh)에 의해 전 노동당 의원 토니 클라크의 측근 레오 오코너에 유출됐다고 밝혔다. 커와 오코너는 국가기밀누설 혐의로 다음 주 런던에서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클라크 전 의원은 이 극비문서를 총리실에 반환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데일리 미러>는 만약 부시 대통령이 알 자지라에 대한 폭격을 강행했다면 수많은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는 것은 물론 중동 전역을 분노시켜 엄청난 보복테러가 발생하는 등 이라크전 이후 최악의 외교정책 실패가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알 자지라 본사는 미국의 우방국인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 있다.
이와 관련, 한 소식통은 "이 문서는 매우 폭발적이며 부시에게 엄청난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데일리 미러>는 전했다. 미국의 알 자지라 폭격은 영국 BBC에 대한 폭격과도 같은 행위라는 것이다.
부시의 알 자지라 폭격 계획에 대해 영국 정부의 한 소식통은 부시는 "농담으로 말한 것일 뿐,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으나 앞의 소식통은 "부시는 의문의 여지 없이 알 자지라 폭격을 원했으며, 블레어 총리 또한 진지하게 폭격 계획을 만류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부시는 카타르 및 다른 곳에 있는 알 자지라 폭격을 원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혔고, 이에 대해 블레어는 알 자지라 폭격은 대단히 커다란 문제를 야기할 것임을 경고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부시의 이같은 계획에 비추어 그동안 알 자지라측에 대한 미군의 폭격이 우연 또는 실수였다는 미국측의 해명과는 달리 고의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1년 아프간 수도 카불에 있는 알 자지라 지국에 미군의 스마트 폭탄 2발이 투하됐고 2002년 11월에도 미사일 공격을 받은 바 있으며, 2003년 4월에는 바그다드 지국의 타레크 아유브 기자가 미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당시 미국은 폭격이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한편 이같은 보도가 알려지자 아랍계 언론들은 성명 등을 통해 미국과 영국 정부에 대해 정확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아랍계 신문 <알 쿠즈 알 아라비>의 아브드 알 바리 아크완 편집국장은 "자유세계의 지도자를 자처하고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를 옹호한다는 나라가 언론사에 대한 폭격을 계획했다는 것은 최악의 대언론테러"라면서 "이제 아랍 및 전세계의 언론매체들은 진실이 드러나기를 원치 않는 미국의 테러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규탄했다.
또 영국 노동당 소속의 전 국방장관 피터 킬포일도 총리실에 문제의 극비문서를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킬포일 전 장관은 "부시와 같은 권력자가 그토록 무모한 일을 계획했다는 사실에 등골이 오싹할 뿐"이라며 "총리는 부시와의 대화록을 공개하기 바란다. 그 대화록은 전쟁을 일으킨 자들의 정신상태가 어떠한지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인 자유민주당의 멘지스 캠벨 대변인은 ""만약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는 이라크 사태가 꼬여가는 데 대한 부시 행정부의 절망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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