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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그 뭐시다냐 거시기가 긍께..."

김민웅의 세상읽기 <156>

사투리가 최근 방송 드라마와 영화의 흥미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웰컴투 동막골>의 "나, 마이 아파~" 하는 순박하고 다정한 강원도 사투리가 깊은 인상을 남긴 뒤 사투리는 작품의 한 매력으로 꼽히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들이 그동안 그렇게 아파했던 것을 몰랐던 세상은 그 새삼스러운 깨달음이 도리어 재미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알다시피 한때 호남 사투리는 주먹패, 식모, 술집 종업원 등이 등장하게 되면 으레 나오는 식이었습니다. 호남은 지역적으로 변방이었고 계층적으로는 바닥에 처해 있는 집단의 상징이었으며 그 언어는 모멸의 대상이기조차 했습니다. "쩌그 머시다냐 그 거시기가 긍께 음…" 하고 이어지는 호남 사투리는 자기의 속내를 밝히기 쉽지 않았던 이들의 말버릇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이 구성진 호남 사투리는 우리 판소리의 혈맥입니다. 다행히 작가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전라남도 벌교의 사투리를 민중의 언어로 새기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공식석상에서는 내놓고 쓰기에는 부끄러운 언어로 전락해버렸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호남 출신들은 자신의 사투리를 숨겼고 매우 빠르게 서울말을 습득하기도 했습니다. 영남 출신들의 서울말 배우기가 영 서툴고 어색했던 것과는 대조를 이룬 현상이었습니다.

영남 사투리는 대체로 힘 깨나 쓰는 사람의 말이었습니다. 영남 출신들은 TV에 나오는 사투리가 엉터리다, 부산 마산이 다르고 대구 진주가 다 다른데 이건 순전히 모방해서 만들어진 가짜 사투리다, 라고 항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남 사투리가 계층적으로나 권력의 위계질서에 있어서나 상대적으로 윗자리에 버티고 있었던 사실은 별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가령 영남 사투리에 "퍼뜩 일나라" 하고 인상 쓰듯 말하는 방식은 그 힘을 대변해주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영남이든 호남이든 그 말을 쓰는 사람에 따라 애교 넘치고 정감이 깊은 말로 바뀌기도 하지만 대체로 호남은 그 구성지기 짝이 없는 자신의 사투리를 애써 감추었고 영남은 남들 들으면 싸움판이 벌어지는 걸로 착각할 만큼 큰 목소리를 내면서 거침이 없었습니다.

백제의 후예인 경기나 충청의 사투리는 그냥 그저 말없이 내성적인 표정을 지으면서 한쪽 구석에서 가만히 있다가, 사태가 벌어진 한참 뒤 "그거 아닌디유~" 대답하곤 했습니다. 한편 억센 북부 사투리는 남쪽의 이런 사정과는 무관하게 "기럴 테믄 기래보라우" 하면서 굽히지 않고 씩씩하게 자신을 밝혀나갔습니다.

표준어라는 것은 중앙집권적 질서가 만들어낸 문법 현실입니다. 그 지방의 일상 언어를 방언 또는 사투리로 격하시킨 것은 중앙의 문화 권력이 주도권을 갖게 되면서입니다. 그러나 표준어는 다만 언어생활의 한 공통분모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지 그것이 곧 사투리에 비해 우위에 서는 말이라는 뜻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이른바 표준어 또는 중앙어의 무지한 오만입니다.

사투리에는 그 말을 쓰는 삶의 현장이 오랜 역사를 통해 일구어낸 웃음과 눈물, 그리고 사연과 정겨움이 듬뿍 담겨져 있습니다. 소중한 유산입니다. 격식이 앞선 서울말이 담아낼 수 없는 풍부한 세계가 그 안에 있습니다. 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 사투리가 제각기 정당한 시민권을 얻는 그런 문화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APEC을 비롯한 세계화의 파도. 그리고 특히 영어에 짓눌린 채 자신의 언어를 잃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사투리에 대한 대중들의 사랑이 새롭게 시작된 것은 참으로 반갑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그러면 "나, 마이 아파"가 아니라 "나, 마이 좋아~"가 되지 않을까요?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센타'(오후 4-6시/FM 104.5, www.ebs.co.kr)의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에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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