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매서운 여의도 강바람에 종종걸음으로 국회 본청을 들어선 국회의원들이 회의장으로 오르는 계단을 선뜻 밟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몇몇은 눈길을 피하고 몇몇은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몇몇은 멀찍이서 바라본다. 그들의 눈길이 머문 세종대왕 동상 아래에선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쌀 협상 비준안의 국회 처리 연기를 요구하며 단식 스물하루째를 맞고 있다.
*** 강기갑 의원, '건강 적신호' 그러나 "끝장을 볼 요량" **
잿빛 두루마기만큼이나 검어진 강 의원의 얼굴은 손을 대면 바스락 소리를 내며 부서질 듯 윤기가 가셨다. 며칠 전까지는 찾아오는 농민들, 기자들, 잠시 들러 가는 의원들과 나지막이 얘기를 나눌 기력을 유지했으나, 이날은 앉은뱅이 책상에 두 손을 모두고 앉아 스치는 눈길에도 감은 눈을 뜨지 못했다.
심상정 의원은 "현재 강 의원의 몸무게는 45kg으로 초등학교 5학년 표준체중을 겨우 넘긴 정도고 혈당수치가 위험 마지노선인 60을 오락가락 하고 있다"며 "게다가 어지럼증까지 생겨 정상적인 인터뷰 및 장시간 대화에도 어려움을 호소한다"고 전했다.
설상가상으로 기온까지 내려가자 국회 의무진은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단식을 중단하고 병원으로 옮길 것을 요청했고, 권영길 비대위 대표와 천영세 의원단 대표 등도 설득에 나섰으나, 강 의원은 "아무 성과 없이 어떻게 이대로 단식을 그만 둘 수 있느냐"며 요지부동이었다.
한계를 넘어선 단식을 감행하며 강 의원이 요구하는 것은 쌀협상 비준안의 국회 처리를 WTO 각료회의가 끝나는 다음달 18일 이후로 미루고, 정부-국회-농민대표 3자가 참여하는 협의기구를 구성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가는 강 의원의 얼굴에 여야 없이 혀를 차면서도, 쌀 수입 일정 등을 감안해 오는 23일에는 국회 동의를 마쳐야 한다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입장은 강고하기만 하다.
이에 "끝장을 볼 요량"이라며 효소 섭취마저 거부한 강 의원은 언제까지 물과 소금만으로 견뎌야 할지 기약조차 할 수 없다.
***충청권 의원들 "행정중심도시, 합헌결정 내려달라" '단식 시위' **
이날 오후 강 의원이 단식 중인 자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의원회관 로비에는 열린우리당 선병렬, 양승조 의원이 단식을 선언하고 자리를 폈다.
각각 대전과 천안이 지역구인 두 의원은 단식을 통해 "24일로 예정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특별법에 대한 판결에서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흐레 간의 시한부 단식이라 애처로움은 덜 하지만, 지난번 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헌재의 위헌 판결 시 '헌재 폐지론'까지 제기하며 격하게 반발했던 여당 의원들이 이번엔 판결 전부터 밥상을 물리며 합헌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 이채롭다.
이에 선 의원은 "헌재도 지난번 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위헌 결정의 부작용과 파급효과를 직접 체험했기 때문에 이제 또다시 위헌결정을 내려 국론분열을 초래하고 국책사업을 좌초시켜 국가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빠뜨리는 결정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헌재의 합헌 결정을 촉구했다.
같은 건물 5층에선 무소속 정진석 의원이 이미 14일부터 같은 요구를 내걸고 단식에 돌입한 상태다. 정 의원의 지역구는 바로 행정중심도시가 들어설 공주·연기다.
정 의원은 "지난해 위헌 결정에 이어 위헌소송까지 이어지면서 충청도 전체가 혼란한 상태지만 바깥에서는 작은 동네일로 무관심한 현실이 안타깝다"며 "이같은 절박한 상황을 알리고 싶어 단식에 돌입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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