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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보호조약? 이젠 '을사늑약'이라 가르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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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보호조약? 이젠 '을사늑약'이라 가르치자"

EBS·독립기념관, '을사늑약 100년' 재조명 프로그램 마련

"1905년 11월 17일 일본 대사와 박제순이 체결한 5조항은 황제께서 처음부터 승인한 것이 아니며 국새를 찍지도 않으셨음. (…) 일본의 외교권 늑약도 근거 없는데 하물며 내치상에 1건이라도 어찌 인준하겠는가. (…) 황제께서는 세계 각 대국이 한국외교를 향후 5년간 함께 보호하기 원하심."

고종 황제의 특사로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과 국무장관을 만나기 위해 파견됐던 미국인 호머 헐버트(1863~1949) 박사는 대한제국 황제의 국새가 찍힌 위탁 밀서를 품에 안고 자신의 모국을 밟았지만 이를 전달조차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는 그 뒤로도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탈리아, 벨기에, 중국 등을 오가며 황제의 밀서를 전달하려 했지만 제국주의의 광폭함에 빠져 있던 해당 국가들은 약소국의 절규를 모두 무시했다.

특히 미국은 1905년 7월 29일 '태프트-가쓰라' 밀약으로 필리핀 지배에 대한 일본의 양해를 얻고, 대신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를 용인 했던 터라 1882년 조-미 수호조약의 '알선조항'(상호방위조약)을 무시하고 대한제국을 배신했다.

***EBS, 귀화 일본학자 통해 '을사늑약' 재조명**

오는 17일로 '을사늑약'(乙巳勒約, 제2차 한일조약)이 체결된 지 꼬박 100주년이 된다. 교과서에서조차 '을사보호조약'이라는 명칭으로 가르치고 있는 이 늑약(굴욕적인 조약을 뜻함)에 대해 EBS와 독립기념관이 각각 진실규명과 명칭 변경을 촉구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먼저, EBS는 <을사늑약 100년의 진실>(연출 김동관)을 오는 18일 저녁 11시 5분 방영한다. 이번 다큐멘터리는 3년 전 한국으로 귀화한 일본학자 호사카 유지 세종대 일어일문과 교수가 '을사늑약 100년의 역사'에 관한 소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호사카 교수가 가장 먼저 궁금증을 가진 것은 을사늑약과 한-일 병합 당시의 대한제국 황제였던 고종의 죽음이다. '3·1 만세운동'이라는 거대한 민족의 저항을 낳았던 고종황제의 죽음. 호사카 유지 교수는 당시의 비공식적인 기록들을 통해 그것이 일본에 의한 독살이었음을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일본이 고종황제를 독살해야 했던 이유를 찾아 나선다. 그것은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계속된 고종 황제의 저항 때문이었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있기 직전부터 죽음의 순간까지 고종황제는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리고 세계의 구원을 요청하고자 했던 것이다.

프로그램에서는 또 을사늑약 당시 조정 측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상황을 재연해 본다. 늑약 체결 현장에서 총검으로 무장한 일본군과 그 앞에서 찬반 여부를 묻는 이토 히로부미. 이와 관련해 호사카 교수는 일본 외교자료원에서 을사늑약이 있기 보름 전에 이미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조약의 서명을 받으라'는 일본 정부 각의의 결정이 있었음을 확인한다.

그렇다면 불법성을 가지고 진행된 을사늑약은 무효일까, 유효일까. 프로그램에서는 한국의 역사학자 이태진 교수와 일본의 법학자 사사가와 노리가스 교수가 무효론을, 일본의 국제법 학자 사카모토 시게키 교수가 유효론을 각각 펼친다.

호사카 교수는 프로그램에서 "일본의 팽창주의가 사라지지 않고, 한국의 늑장 대응이 변화하지 않는 이상 100년 전의 비극은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다"며 "지금 우리가 100년 전을 다시 한번 떠올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강조한다.

연출을 맡은 김동관 PD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현재 국내 교과서는 물론 일부 학자들까지도 ‘을사늑약’을 ‘을사조약’이라고 표현하는 점 이었다”며 “이는 철저히 일본적인 관점이기 때문에 인터뷰에 응한 일본인의 표현을 제외하고는 의도적으로 을사늑약이라는 해석을 달았다”고 설명했다.

김 PD는 이어 “제2차 한일조약은 어디까지나 실체를 인정할 수 없는 괴문서임에 분명하다”며 “앞으로 교사들은 물론 언론들도 ‘조약’이라는 용어 대신 반드시 ‘늑약’이라는 표현을 써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바른 역사를 알려주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독립기념관,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서 특별전**

한편 독립기념관(관장 김삼웅)은 15일부터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 내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에서 '을사늑약 100년, 풀어야 할 매듭'을 주제로 특별기획전을 연다.

전시회에는 서울대 김기석 교수(교육학)가 제공한 당시 대한제국과 우호통상조약을 맺은 9개국에 보낸 고종의 친서 등 을사늑약 관련 자료들이 선을 보인다.

전시회에는 또 '흔들리는 조선' '1905년 11월 17일 중명전' '침략의 마수를 드러내다' '을사늑약의 주연과 조연' '꺼져가는 불꽃' '풀어야 할 매듭' 등 8부로 나눠 20세기 조선의 역사가 얼마나 피눈물 나는 망국으로 시작됐는지를 독립기념관이 소장한 일제 식민통치 자료와 을사조약 체결과정을 담은 삽화 등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밖에 을사늑약 체결 100주년 당일인 17일 오후 3시 서울 경복궁 내 국립고궁박물관(관장 소재구) 앞뜰에서는 '북관대첩비 맞이 국중(國中)대회'가 열린다. 이번 행사는 을사늑약 보름 전 일본 히로시마로 옮겨진 뒤 그동안 도쿄 야스쿠니신사에 방치돼 왔던 북관대첩비의 환국을 환영하고 일제강점의 의미와 역사를 돌이켜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궁 앞뜰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됐던 북관대첩비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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