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7일(현지시간) 미국과 영국이 유엔 결의 없이 이라크를 침공한 것은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이 유엔 결의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천명했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펴 프랑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사진: 블레어>
***이라크 침공보다 결의안 거부가 더 문제?**
블레어 총리는 이날 월례 기자회견에서 "2003년 3월을 돌이켜보면 내가 유엔 결의를 받아내 시간을 더 벌기 위해 얼마나 맹렬히 노력했는지를 알 것"이라며 "그러나 프랑스가 그러한 결의안에는 절대 찬성할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는 아주 단순한 이유 때문에 결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블레어 총리가 언급한 유엔 결의안은 이라크 전쟁 발발 전인 2003년 3월 7일 미국과 영국 주도로 유엔 안보리에 제출된 것으로, 이라크 무장해제의 최종 기한을 3월 17일로 못박자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프랑스와 러시아가 거부권 행사 입장을 천명했고, 당시 찬성 입장을 보인 나라는 미국, 영국, 스페인, 불가리아 4개국뿐이었다. 미국과 영국은 3월 11일 이뤄지길 바랐던 표결에서도 통과가 불투명해지자 결국 안보리 결의안을 포기하고 3월 20일 이라크를 침공했다.
블레어 총리의 이날 발언은 '프랑스가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해서 이라크에 대한 군사행동을 지연시키는 데 실패했다'고 요약되며, 이는 곧 '프랑스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뜻으로도 들렸다.
이에 프랑스가 발끈하고 나섰다. 프랑스 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결의안 통과를 위해서는 유엔 안보리 15개 이사국 중 9개국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데 영국은 단지 4개국의 지지만을 받고 있었다"며 블레어 총리의 기억이 잘못됐음을 비난했다고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전했다.
***"외교에서 '결코 찬성할 수 없다'는 말은 없다"**
블레어 총리의 이날 발언은 영국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막을 수 있었다는 전 워싱턴 주재 영국 대사인 크리스토퍼 메이어 경의 주장을 강력히 부인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메이어 경은 7일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과 <데일리 메일>에 연재되고 있는 자신의 저서 <DC 컨피덴셜>에서 "블레어 총리가 이라크 전쟁의 발발을 늦출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미국의 힘과 매력에 압도당해 그러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블레어 총리의 '해괴한' 논리에 대해 프랑스가 반발하자 메이어 경도 프랑스의 반대가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며 프랑스 정부 당국자의 손을 들어줬다.
메이어 경은 "나는 결의안에 대한 프랑스의 반대를 '영구적인 반대'로 보지 않았다. 외교에는'절대로'라는 말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석에서 만난 프랑스 관리들은 미국과 영국이 유엔의 또다른 간섭 없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프랑스의 반대를 과장했다고 비난한다"고 덧붙였다.
***메이어 전 대사 "블레어는 부시와 솔직한 대화 안 했다"**
한편 메이어 경은 회고록에서 "미국은 영국의 지지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블레어 총리는 이라크 전쟁의 발발을 늦출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블레어 총리가 이라크 전쟁을 연기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미국과 영국 연합군은 전쟁 이후의 이라크에 대해 더욱 면밀한 계획을 세울 수 있었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폭력사태의 악순환을 예방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블레어 총리는 그러나 미국의 힘과 매력에 압도당한데다 미국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정면대결을 피했다고 메이어 경은 분석했다.
그는 "처칠은 루스벨트와, 대처는 레이건과 때때로 심한 의견충돌을 일으켰고 강력하게 맞서 영국의 의견을 관철했으나 블레어는 단 한 번도 부시와 '솔직한 대화'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메이어 경은 이어 "블레어 총리가 대결을 피했기 때문에 영국은 국민의 운명을 친구의 손에 맡기는 꼴이 됐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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