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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부가 도와줬다면 파면 정도로 그쳤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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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부가 도와줬다면 파면 정도로 그쳤을 것"

로버트김 "평화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평가해 달라"

9년 9개월만에 2주일의 일정으로 고국을 방문 중인 로버트 김(본명 김채곤) 씨가 한 TV 대담프로그램에 출연해 미국에서의 수감생활을 상세히 밝히면서 한국정부에 대해 섭섭했던 마음도 내비쳐 관심을 끌고 있다. 김 씨는 자신을 영웅시하는 눈길에 대해 "다만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평가해 달라"고 말했다.

***"한국을 사랑했기에 미국의 비난이 두렵지 않았다"**

김 씨는 8일 오후 사전 녹화된 KBS-2TV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연출 윤정화)에 출연해 "형 집행완료 뒤 첫 여행인 데다가 사건에 직접 관여돼 있는 고국을 방문했기 때문에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김 씨는 또 "체포된 지 9년여 만인 지난 10월 4일 형 집행이 완료돼 자유의 몸이 되고 보니 새 사람이 된 기분 이었다"며 "그동안에는 항상 감시를 받고 있었고, 또 어딜 가더라도 지역 밖이면 꼭 허락을 받고 나가야 했는가 하면 어떤 자동차로 다니는가, 그 차의 주인은 누구이며, 매월 은행잔고는 얼마나 되는가, 수입·지출은 얼마인가 등 시시콜콜 보고를 했어야 했는데 이젠 그런 것이 없어져 홀가분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김 씨는 이어 지난 1996년에 벌어진 이른바 '로버트 김 사건'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김 씨는 "미국 법원은 '국방기밀 취득' 공모죄로 징역 9년과 보호관찰 3년의 중형을 내리면서 국가기밀을 빼돌려 미국의 안보를 위협했다고 했지만 내 정보는 한국이 북한에 안보적 대응을 할 때 유리할 순 있어도 결코 미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한 적이 없다"며 "그 때문에 재판과정에서도 여러 차례 결백을 주장했고, 검사와 형량을 사전에 협상하는 '플리바겐' 뒤에도 여전히 중형이 내려져 이례적으로 항소를 했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당시 검사는 최후 논고에서 '로버트 김은 미합중국 시민으로서의 중요한 책임을 저버리고 타국, 다시 말해 한국에 대한 사랑을 택했다'고 말했지만 그들의 말에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며 "재판과정에서도 한국과 미국이 축구시합을 한다면 당연히 한국을 응원하겠다고 했고, 마찬가지로 내 행위가 그들의 말하는 죄목이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에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며 굽신거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부인 장명희 씨는 "남편이 무슨 '빽'을 믿었는지 처음 판사 앞에 가서 유죄를 인정하지 않고 나와 만약 재판에서 지면 무기수가 된다는 생각에 무척 괴로웠다"며 "당시 미국언론은 연일 '빅스파이'라며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교포들과 교인들의 위안으로 어려운 시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인이었지만 차별받았기에 계속 항소"**

김 씨는 '당시 한국정부에 가장 바랐던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내 사건과 관련된 백 대령(백동일 전 대령)이 외교관 신분이었기에 축출되지 않는 한 체포되지 않기 때문에 그를 미국에 남겨두길 바랐다"며 "그래서 재판이 끝날 때까지 한국정부가 협조해서 잘잘못을 떳떳하게 말하고 선처를 구했다면 내 형량이 이렇게 올라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아마 미국정부도 나를 파면시키고 그저 훈계방면 했을지도 모른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는 △체포 당시 스스로의 운명을 전혀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을 때 △가정의 경제생활이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지게 됐을 때 △9년형을 받고 교도소로 이감된 뒤 아들 나이쯤 되는 간수들에게 존대말을 하면서 원인 없이 욕설을 받을 때 △이유 없이 몸수색과 방수색 등을 당했을 때 △추운 겨울 밥을 얻어먹기 위해 식당 밖에서 긴 줄을 서야 했을 때 △몸이 불편해도 사역을 나가야 했을 때 등을 떠올리기도 했다.

김 씨는 "수감생활 도중에도 같은 미국시민으로서,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과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 사이에 형량이 달라 법의 형평성을 요구하며 항소했지만 결국 기각되고 말았다"며 "그래서 인권을 가지고 대법원에 항소를 하는 한편 법무부 사면국에 '내가 건네준 정보를 받은 나라는 미국의 맹방이고 그 정보가 미국안보에 하나도 지장을 주지 않는다'며 사면요청서를 냈지만 미국은 수감생활이 거의 끝나간다며 이 또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앞으로의 계획과 관련해서는 "한국의 청소년들이 한국을 1등 국가가 만드는 데 쓰임 받는 일꾼들이 되게 하고, 또 세계 평화에도 이바지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 씨와의 대담은 오는 15일 새벽 0시50분 방영되는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에서 방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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