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군부 핵심 측근들의 프로필이 국가정보원(국정원) 홈페이지에 게재돼 관심을 끌고 있다.
국정원은 김 위원장이 1991년 12월 최고사령관에 취임한 이후 단행해온 군 인사개편과 진급 수혜자, 주요 직책 보직자, 김 위원장의 군 시찰 수행 빈도가 높은 인물 등을 판단근거로 10명의 군부 핵심을 선정하고 이 중 7명을 자세히 소개했다.
국정원은 특히 이들의 주요 경력을 언급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조명록 차수는 원칙주의자로서 성실하고 청렴결백하다는 평판이 있다'는 식으로 주변의 평가를 덧붙여 놓아 흥미를 더하고 있다.
이 중에는 조명록 총정치국장,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처럼 남한에도 잘 알려진 사람들도 있으나 이명수 작전국장, 이용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같이 익숙지 않은 이들의 면면도 소개되고 있다.
국정원은 "대상자 대부분이 주로 혁명 2~3세대에 속하는 인물들로서 60대 이상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며 "이들이 앞으로도 북한군 핵심으로 군사정책을 좌지우지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아래는 국정원이 밝힌 군부내 김정일 핵심 측근들의 프로필.
***조명록 총정치국장(차수) '청렴결백한 원칙주의자'**
1995년 10월 총정치국장에 임명된 조명록은 혁명 2세대로 군에 대한 입문을 공군으로 시작해 1979년 당시 공군사령관 오극렬이 총참모장으로 영전되면서 그 후임으로 발탁되어 1995년 10월 총정치국장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MIG기 도입 등 북한 공군 전력 향상에 이바지 해왔다.
1980년 10월 당 중앙위원에 피선된 데 이어 당 중앙군사위 위원으로 발탁됐으며 최고인민회의 7기에서 10기까지 대의원을 역임하고 있다. 1995년 10월 차수로 진급하였고 1998년 9월 권력구조 재편당시 위상이 일층 강화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발탁되었다.
1997년도의 경우 김정일이 16차례 군부대를 방문할 때 15회를 수행했을 만큼 김정일의 신임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칙주의자로서 성실하고 청렴결백하다는 평판이 있다. 2000년 10월 김정일의 특사자격으로 방미하여 클린턴 대통령,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등과 회담한 바 있다.
***김영춘 총참모장(차수) '대담하고 호전성을 겸비한 성격'**
혁명 2세대로 1995년 10월 조명록과 함께 북한군부 수뇌부로 등장한 인물로 1986년부터 1989년까지 총참모부 작전국장을 역임했을 만큼 전술전략 식견을 겸비한 군사작전통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 4월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피선되었으나 1990년경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어 강등과 함께 여단장으로 좌천당하고 혁명화 교육을 이수한 굴욕의 경험도 갖고 있다.
이후 복권되어 1992년 4월 대장으로 진급한 이후 군수동원 총국장을 역임했고 1994년경 6군단장에 임명되어 1995년 3월 '군단내 외화벌이 비리사건'을 원만하고 신속히 처리해 김정일의 돈독한 신임을 얻게 되었다고 하며 1998년 9월 국방위원회 위원에 임명되었다.
대담하고 호전성을 겸비한 성격을 소유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군행사 이외에도 김정일의 상하이 방문(2001.1)·러시아 방문(2001.7, 2002.8)을 수행한 바 있다.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차수) '프에블로호 납치사건의 실무 주역'**
1997년 2월 사망한 김광진의 후임으로 1997년 4월에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에 임명된 70대의 김일철은 총정치국장 조명록의 경우처럼 해군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다가 발탁된 인물이다. 1980년부터 해군사령관에 임명되어 해군 작전 및 전술부문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했으며 특히 1968년 동해함대사령부 참모장 시절 당시 미 프에블로호 납치사건의 실무진으로 활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 당중앙위원, 당 중앙군사위원에 피선되었으며 7~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역임했다. 1992년 4월 대장으로, 1997년 4월 차수로 진급하였고 그 역시 만경대 혁명학원 출신으로 소련 해군대학에 유학한 경험을 갖고 있다.
1998년 9월 최광 사망(1997년 2월)이후 공석이었던 인민무력부장에 임명되었다. 2000년 9월 제1차 남북 국방장관 회담시 북측 단장으로 제주도를 방문한 바 있다. 2001년 4월 군사대표단 단장으로 러시아를 방문하였다.
***이용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1973~1977년에 총정치국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모종의 사건에 연루되어 혁명화 교육을 받은 과거가 있다.
복권 후 1989년 국가검열위원장과 1991년 교통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다 1998년 9월 5일 국방위원회 개편시 부위원장에 선출된 데 이어 차수로 진급하면서 군에 다시 복귀했다. 토지정리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철해 총정치국 상무 부국장(대장) '조카 현성일 귀순에도 건재'**
총정치국 조직담당부국장을 거쳐 상무부국장으로 임명된 현철해는 정치장교 출신으로 총정치국에 다년간 복무하고 있다.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으로 1990년 중반 후방총국장에 재임 중 북한군 군수 및 병참 보급체계를 개선하는 등 뛰어난 업무능력을 김정일에게 인정받아 총정치국 부국장이라는 핵심 포스트에 전격 발탁되었다고 한다. 김정일이 군부를 완전 장악하는 데 있어 중대한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조카 현성일이 1996년 귀순했음에도 불구하고 건재하고 있는 것은 김정일의 그에 대한 신임도를 입증해준다 하겠다. 1993년 당 중앙위 위원으로 선임되었으며 1995년 대장으로 승진했다.
***박재경 총정치국 선전 부국장(대장) '송이버섯 들고 서울 방문'**
1993년 이후 김정일의 군내 우상화 작업과 군내 사상교육을 총괄하는 직책인 총정치국 선전담당 부국장으로 발탁되어 현철해와 함께 김정일의 군부 장악에 일익을 담당했다. 인민군 9차 선전선동원 대회(1995년1월), 인민군 중대장 및 정치지도원 대회(1995월 3월)등 군 정치행사를 주도하였으며 70대 초반으로 알려져 있다.
1993년 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피선되고 1997년에 대장으로 진급했다. 2000년 9월 김정일의 선물인 송이버섯 전달차 서울을 방문한 바 있다.
***이명수 작전국장(대장)**
김명국에 이어 1996년말경 작전국장에 임명된 이명수는 1992년 중장으로, 1995년에 상장으로 진급하였으며 5군단장을 역임했다.
2000년 10월 당창건 55주년을 계기로 대장으로 진급하였고 행사 당일 김일성광장에서 개최된 군사퍼레이드에서 김정일의 측근에서 행사 진행사항을 브리핑한 바 있으며 김정일의 군부대 방문시 측근에서 보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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