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의 북한 지원을 곧잘 '퍼주기'라며 비난해 온 한나라당에서 "'대북 퍼주기'란 용어는 삼가자"는 제안이 나왔다. 한나라당은 즉각 이 제안에 박수를 보내는 온건파와 "퍼주기는 퍼주기"라며 오히려 제안자의 '사상'을 의심하는 강경파로 양분됐다.
이같은 한나라당 내 논란의 이면에는, '대북 스탠스'에 변화를 추구하며 중원을 공략하려는 세력과 북한에 대한 비판의 날을 곧추세워 전통적 지지세력의 결집을 도모하려는 세력 간의 갈등 양상이 도사리고 있어 주목된다.
***강재섭 "한나라당은 엄격한 상호주의 지양해야" **
논란의 발단은 강재섭 원내대표가 제공했다. 2일 KBS 라디오 <열린토론>에 출연한 강 대표는 "한나라당이 대북 퍼주기라는 용어로 비판하는 것은 삼가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특히 "우리가 평화통일을 이뤄 나가기 위해서는 북한이 어느 정도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에 접근할 수 있도록 일정 부분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부연한 대목은 한나라당이 대북 지원에 대해 '퍼주기'라고 비난할 때마다 돌아온 정부 여당의 답변, 그대로였다.
강 대표는 한 발 더 나아가 "한나라당은 엄격한 상호주의를 지양해야 한다"며 "우리가 한 건 해 줬으니깐 북한에서도 이거 한 건 내 놔라 하는 한 건 주의, 상호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우파의 대북 지원 원칙이라 할 수 있는 '상호주의'에도 비판을 가했다.
강 대표는 "한나라당은 북한이 열린 세계로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 인도적 차원의 지원에는 상호주의 원칙을 일일이 따져가면서 하지는 않겠다"고 공언했다.
강 대표는 "한나라당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정확하게 지키자는 입장에서는 명백한 보수우익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한과의 대화도 말고 통일도 말자는 것은 아니다"며 "'퍼주기' 비판을 하다 보니 한나라당이 비통일 지향적 수구 꼴통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대북 기조 '유연하고 적극적인 상호 공존정책'으로… **
이 같은 강 대표의 발언은 북한에 '유연해 보려는' 한나라당 내의 분위기 변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나라당은 두 차례의 집권 실패를 통해 기존의 경직된 대북관을 고수하면서 수권정당이 되기는 어렵다는 교훈을 얻었다.
11월 중 통과될 예정인 한나라당 혁신안은 대북정책 기조를 '전략적 상호주의'에서 '유연하고 적극적인 상호 공존정책'으로 바꾸도록 돼 있다. 정강에서부터 '화해와 협력'을 강조해 당의 반 통일적 이미지를 제거해 보려는 취지에서다.
이전부터도 원희룡 위원 등 당내 소장파 그룹은 "조건 없는 대북 식량지원"을 주장해 왔고, 지난 7월 정부의 '대북 중대제안'이 발표됐을 때는 강경보수파의 대명사인 정형근 의원이 "획기적이고 좋은 안"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아 한나라당내 '변화의 기운'을 감지케 하기도 하다.
***송영선 "20조 대북지원? 한나라당 목숨 걸고 반대해야" **
그러나 '전향'의 길은 아직도 까마득하다. 당내 기류 변화에 당내 강경 보수파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강경파들은 오히려 한나라당의 '좌경화'를 우려하며 대북 지원에 비판적인 보수 지지층의 결집만으로도 집권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들의 대부격인 김용갑 의원은 강 대표의 제안을 "정말 이상한 이야기", "해괴망측한 일" 등 격한 표현으로 강하게 비판했다.
김 의원은 개인 성명을 통해 "우리 경제가 최악의 위기인 상황에, 국민의 동의도 전혀 구하지 않고, 빚까지 내가면서 북한을 지원하겠다는데, 이것이야말로 '퍼주기' 중에도 '왕 퍼주기'가 아니고 무엇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 의원은 "한나라당이 이를 비판하고 앞장서서 막아내는 것이 마땅한 일인데도, 원내대표라는 사람이 거꾸로 '퍼주기'라는 말도 쓰지 말라니, 이만저만 해괴망측한 일이 아닐 수 없다"며 "바로 얼마 전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도, 느닷없이 통일경제특구를 들고 나와 소속 의원들을 황당하게 만들고, 이제 이런 황당한 말까지 서슴없이 하고 있으니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라고 강 대표를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그 뒤 강 대표가 참석한 지도부 회의에서도 강경파들의 '대북 퍼주기' 비판은 계속됐다.
'정부가 향후 5년간 20조 대북 지원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보수 언론의 보도에 대해, 이규택 최고위원은 "우리 농민과 노동자는 못 살겠다고 아우성 치고 개인 파산자가 1만 명이 넘는데도 우리 정부는 북한 지원 예산만은 풍족하고 넉넉하게 정해 놓고 본다"며 "집에서 아이들은 쫄쫄 굶는데 부모라는 작자들은 대출해서 부도난 옆집 도와주고 있는 격"이라고 비난했다.
송영선 의원 역시 "100억 원이면 우리 병사들의 여름 전투복을 바꿔주는데 이런 돈은 없다고 하면서 북쪽에는 채권까지 발행해서 지원하겠다는 정부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반대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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