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우리의 줄리아는 어디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우리의 줄리아는 어디에?"

김민웅의 세상읽기 <146>

1938년 런던의 연극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영화 <줄리아로 산다는 것(Being Julia)>은, 배우 아넷트 베닝의 다져질 대로 다져진 연기의 경륜을 벅차게 목격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녀가 연기한 관록 있는 미모의 여배우 줄리아 램버트는 자신이 평생을 몰두해 온 연극에서 더 이상의 흥분과 긴장을 느낄 수 없게 되었고, 무언가 새로운 돌파구 없이는 그대로 소멸해버리고 말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아넷트 베닝 못지않게 역시 세계적 명배우인 제레미 아이언스가 맡은 연극 제작자이자 연출가인 남편 마이클 고슬린의 무미건조한 태도는 줄리아로 하여금 더더욱 자신의 삭막해져가고 있는 인생의 현주소를 절감하게 합니다. 이러던 중에 만나게 된 자신의 열혈 팬이라는 연하의 미국 청년은 줄리아에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정신적, 육체적 생기를 주고 그녀를 한없이 들뜨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 연하의 청년은 젊은 신인 여배우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남편마저도 그녀에게 관심을 쏟으면서 줄리아는 졸지에 매우 비극적인 처지에 빠질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이런 그녀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적으로 이끄는, 이미 고인이 된 스승으로 나오는 마이클 갬본의 중후한 연기 또한 이 영화에 연극의 고전적 무게를 실어주는 요소이기도 한데, 그를 통해 줄리아는 자신의 진정한 본령을 끊임없이 깨우치게 됩니다.

지난 1981년, 한 유명 배우의 성공과 몰락을 그린 <메피스토>라는 작품으로 일약 세계적 명성을 얻은 바 있는 헝거리 출신 이스트반 자보 감독이 오랜만에 연출한 이 영화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작가 서머셋 모엄(Somerset Maugham)이 1937년에 발표한 작품 <극장(Theater)>을 각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고나면 연극에 대한 깊은 애정과 흥미, 그리고 오랜 세월 연극으로 훌륭하게 다듬어진 영국식 영어의 정교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건 줄리아가 살아가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평판이나 명성에 우쭐거리거나, 무기력하게 반복되는 연기에 지쳐버리든가 또는 믿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휩싸인 인생이란 결국 진정한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 줄리아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충격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줄리아는 자신에게 주어진 무대를 완벽하게 장악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건 더 이상 연출가인 남편에게 조종당하거나 자신의 고뇌를 알지 못하는 작가의 구상에 자신을 아무런 의식도 없이 내맡기는 방식이 아니라, 줄리아 자신의 목소리가 폭발적으로 담긴 무대위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영화의 원제는 따라서 의미심장합니다. 인간 줄리아로 존재한다는 것의 본질적인 의미를 묻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땅의 민주주의를 가져오는 데 중요한 역사적 역할을 했던 이들이 정치적으로 혼돈과 위기의 늪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자신의 무대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어떤 목소리를 내야 객석의 진실한 감동과 아낌없는 갈채가 나올 수 있는 것인지 망각해버린 비극의 증거인가 합니다.

아, 우리의 줄리아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고뇌하고 있는지, 무대는 자꾸 쓸쓸해지고 객석은 하나 둘 비어가고 있는데 주연은 이대로 사라질 판인가 보지요?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