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분위기 단속에 나섰다. '작은 승부에 강하고 큰 승부에 약하다'는 징크스를 의식한 탓인지 10·26 재선거 완승 직후부터 표정관리에 들어간 지도부는, 들뜬 분위기를 일찌감치 억누르고 의원들에게 '긴장'을 강조하고 있다. 재선거 후폭풍을 맞아 전열 재정비에 들어간 여권의 추이에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열린우리당은 표를 모으는 기막힌 재주 있어" **
31일 의원총회를 열어 의원들을 모은 강재섭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이 이겼으니 이제 한 숨 쉬고 가겠다고 하다가는 국민들의 흥미가 저 쪽(열린우리당)으로 몰리고 만다"며 "우리도 치열하게 토론하는 모습으로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대표는 열린우리당과 청와대가 갈등 양상을 보이는 데 대해서는 "선거 끝나자마자 대통령 욕을 하고 손가락질을 하고 책임을 전가하며 청와대 장벽을 넘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비난하면서도 "이런 모습이 좋지는 않지만 국민들이 재미있게 보기는 한다"며 여론의 반응을 주시했다.
강 대표는 "열린우리당 저 분들의 특징은 표를 모으는 데 기가 막힌 재주가 있다는 것"며 거듭 열린우리당 '사태'에 대한 경계심을 감추지 않았다.
강 대표는 한나라당 의원들을 향해서는 "무사안일하게 생각하지 말고, 또 상임위별로 민원성 예산 적당하게 올려서 넘기려 하지 말고 각 상임위 별로 치열하게 전투해서 전부 깎아야 한다"며 원내 전열을 가다듬기도 했다.
***"경상도 선거에선 또 고전할 수밖에 없을 것" **
재선거 현장을 뛰었던 당선자와 당직자들도 "이대로 가면 대선 승리는 어렵다"며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대구 동을에 출마해 당선된 유승민 의원은 "44대 50으로 여당 후보를 힘겹게 꺾었지만 여당 후보를 지지한 44%란 숫자에 대해 마음 무겁게 여기고 있다"며 "대구에서 이런 숫자라면 대통령 선거는 정말 힘들다고 생각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선거를 선두 지휘한 김무성 사무총장 역시 "거의 우리에게 싹쓸이를 몰아주다시피 한 경상도 유권자들이 두 번의 대선 실패에 대한 피로도가 가중돼 있다"며 "앞으로 경상도에서 선거가 또 있다 해도 고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자성' 기류에 그간 잠복해 있던 소장파도 목소리를 냈다.
원희룡 최고위원은 "이번 선거를 통해 더 이상 지역이라는 울타리, 이념이라는 장벽이 먹혀들지 않고 영향력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며 "이런 것에 기대어 반사이익을 보려는 세력은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확신이 전 국민 사이에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원 위원은 특히 "현장을 다녀보면 한나라당이 실제 삶의 문제 해결을 위해 할 일이 정말 많고, 국민 대다수들은 국가 정체성 공방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며 '정체성 논란'을 일으켜 보수표의 결집을 꾀한 박근혜 대표의 선거 전략을 정면 비판했다.
***박근혜 "선거를 승리로 이끈 노력에는 감사하고 평가해야"**
이 같은 지적에 박근혜 대표 역시 "한나라당의 승리에 대해 자만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며 동감을 표했다.
그러나 박 대표는 "우리는 뼈아픈 결과를 겪고 일어선 당이고 결코 무너지지 않고 대선까지 갈 것"이라며, 위기감이 지나치게 고조되는 것은 차단했다. 이번 선거의 승리가 여권의 실정으로 인한 '반사이익'으로 평가될 경우, 선거를 승리로 이끈 박 대표의 공 역시 평가절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박 대표는 "이번 승리는 후보 개인은 물론 선거를 도운 수많은 노력의 덕분이고 그 노력에 대해 감사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이날 처음 등원한 10·26 당선자 네 명 역시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은 박 대표님의 은덕"이라며 연신 박 대표의 공을 치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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