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 대립과 합작 논의 등이 정국을 흔들고 있던 해방공간에서 나온 다음과 같은 발언이 있었습니다.
"소위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의 힘으로 1946년 8월 15일에 우리나라가 해방되었을 것을 1945년 8월 15일에 해방된 것이 아니올시다. 마찬가지로 1944년 8월 15일에 우리나라가 해방되었을 것을 여러분들 때문에 1945년 8월 15일에 해방된 것이 아니올시다."
이 말은 총독부 시절 위세를 떨치던 재계 인사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여운형 선생이 했다고 알려진 일장 연설의 한 대목을 작가 이병주가 자신의 소설 <산하(山河)>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자기 앞에서 긴장하고 있던 이들 친일 재계 인사들에게, 독립투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해방된 현실에서 자기 공을 내세우거나 또는 과거의 행적으로 해서 잔뜩 위축되어 지낼 일이 아니라는 요지를 밝힌 셈이었습니다.
소설가의 손을 빌어 옮겨진 여운형 선생의 말은 다음과 같이 계속 이어집니다.
"기왕에 독립운동을 한 사람인데도 민족의 앞날에 해독을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이 있고, 기왕엔 독립운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앞으론 민족에 유용할 사람이 있다, 이겁니다. 독립운동을 한 사람에겐 물론 상을 줘야지요. 훈장도 주어야지요. 그 공로는 무시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왕의 일만 가지고 오늘의 문제를 결정지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과거에 발목이 묶이지 말고 미래의 선택에 자신을 열라는 권고라고 할 만합니다.
이러한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기에 의미가 있지 그렇지 못한 자가 했다면 자기변명이 되어버릴 소지가 있었을 것입니다. 여운형은 좀더 나갑니다.
"기왕의 공로를 내세워 오만한 자보다, 기왕의 잘못을 반성한 사람이 지금에 있어선 더욱 유용하다는 말입니다. 죄를 지었다고 해서 단죄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처지에 알맞은 애국행동을 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죄를 보상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상대를 포용하면서도 그 포용의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상대의 자존감에 대해 여운형 선생은 이렇게 북돋았다고 알려집니다.
"여운형이 애국활동을 했다고는 하나 그것은 표면의 일이고 그 이면을 파고 들어가면 영락없는 비겁자일지도 알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여러분이 친일을 했다고 해도 그것은 표면의 일이고 그 이면을 파고 들어가면 진실로 용기 있는 사람일지 모릅니다."
독립운동의 명망가로 행세하는 여운형 자신보다는 도리어 상대가 나을 수 있다는 논법으로 새로운 결의와 선택을 촉구하는 그의 이야기와 자세는 실로 놀라울 지경입니다.
과거의 공로를 가지고 패를 가르고 단죄의 권한을 쥐면서 새로운 정세에 주도권을 쥐려 하거나 아니면 과거의 죄로 인해 자기 방어에 열중하면서 또 다른 죄를 지어가는 자들이 범람했던 때에 이와 같은 여운형 선생의 말은 당대의 논란을 숙연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정치적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그는 암살의 음수에 걸려 비명에 가셨지만 그와 같은 광활한 사고와 마음의 품이 있는 지도자가 새삼 그리워지는 오늘날입니다.
이 시대 민중들의 정작의 고민과 아픔, 그리고 눈물을 돌아보기보다는 정략적 공세로 날을 지새우며 지도자연하는 이들이 탁류를 쏟아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진정 이 시대에 유용한, 용기 있는 지도자를 찾아내는 것이 이리도 어려운 일인지 자칫 분노스러운 마음조차 드는 심란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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