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국의 손발이 되기보다는 인간 공동체를 창조하기 위한 투쟁을 위해 살다 가는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
이는 미국의 역사가 윌리암 애플만 윌리암즈(William Appleman Williams)가 자신의 역사철학을 밝히면서 했던 말입니다. 2차대전이 끝나면서 <미국의 세기>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이것이 세계사의 논리적 전개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던 시기에 이에 정면으로 맞선 그의 역사관은 매우 도발적이었습니다.
여기서 '도발적'이라는 것은,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각도와 내용으로 미국의 현실을 비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자기 스스로 학문적 배척의 대상이 되는 길을 선택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미국의 진보적 역사가의 대부 찰스 비어드(Charles Beard)의 뒤를 이은 그의 이러한 자세는 미국 역사 논쟁의 새로운 불을 지폈습니다.
윌리암 애플만 윌리암즈는 미국이 거대한 제국으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것에 대해 갈채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제국은 미국 자신에게 결국 비극적 현실을 가져다줄 뿐이라고 지탄했습니다. 그리고 보통의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팽창주의적 사고가 이러한 제국의 건설에 기여하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비판도 서슴없이 가했습니다. 대다수의 여론과 마주하여 고통스러운 대결을 했던 셈이었습니다.
1959년 그가 <미국 외교의 비극(The Tragedy of American Diplomacy)>을 출간했을 때 미국은 자신감에 차 있던 강대국으로서 제3세계의 운명을 좌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판국에 미국 외교의 비극을 논한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지적은 매우 적나라해서 미국 외교가 떳떳하게 내보일 수 없는 역사의 이면을 고스란히 파헤쳤습니다. 약소민족의 희생을 요구하는 미국의 모습에 대한 미국 지식인 자신의 거침없는 고발이었습니다.
그의 이와 같은 역사관은 그 자신을 '미국을 혐오하는 비미국인'이라는 공격 대상이 되게 했습니다. 미국의 영광과 역사적 정통성을 부인하는 자라는 낙인이었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민권운동과 베트남 전쟁 과정에서 일어난 반전운동의 열기 속에서 젊은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고 미국 자신을 미국인들 스스로가 새롭게 돌아보게 만드는 지적 충격을 공급하는 귀중한 존재가 되어갔습니다. 윌리암 애플만 윌리암즈와 같은 지식인이 없었다면 미국은 자신의 역사에 대해서 비판적 자기성찰의 능력을 갖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가해온 노암 촘스키가 세계적 지성인 1위로 꼽혔다고 합니다. 영국의 <프로스펙트(Prospect)>지와 미국의 <포린 팔러시(Foreign Policy)>가 독자를 상대로 한 공동 투표의 결과였습니다. 촘스키 역시 미국 자신에 대한 비판으로 <뉴욕타임스>조차 지금까지 지면을 내주지 않을 정도로 언론에서 푸대접을 받았지만, 그의 비판적 지성에 찬사를 보내는 세계인들은 그에게 '세계 최고의 지성인'이라는 찬사를 아낌없이 돌려준 것입니다.
윌리암 애플만 윌리암즈나 노암 촘스키와 같은 입장에서 미국을 비판하거나 자기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날을 세우고 자기성찰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반미' 또는 '친북좌파'라는 낙인을 찍기에 바쁩니다. '반지성(反知性)'의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강자의 위선과 자신의 모순에 대해 자기 성찰적 비판을 억압하는 사회는 사상적 야만을 자초하는 곳입니다. 야만이 지배하는 자리에서 문명은 질식하고 말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그런 현실일까요?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센타'(오후 4-6시/FM 104.5, www.ebs.co.kr)의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에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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