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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어깨에 힘 빼고 통일 하자"

<백낙청 교수의 통일운동 제안> '6.15시대의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1990년대 이후 '분단체제론' 등 분단극복을 위한 진지한 모색을 해오다 지난 1월말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 공동행사 준비위원회'의 남측 상임대표를 맡아 남북관계의 현장에 뛰어든 백낙청 <프레시안> 고문이 최근 통일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목받고 있다.

백 고문은 9월 11일 경기문화재단이 주최한 '광복 60주년 기념 세계평화축전"의 폐막강연으로 도라산에서 한 강연에서 "어깨에 힘 빼고" "어물어물 진행되는" 통일이야말로 한반도 상황에 걸맞는 통일방식이라고 제안한 데 이어, 6일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 하승창 사무처장과의 인터뷰에서 그 의미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백 고문에 따르면 2000년 6.15 공동선언을 통해 비로소 남과 북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적인 통일방안이 마련되기 시작됐다. 공동선언의 두리뭉실하고 애매한 표현이 오히려 남북 양측의 실질적 협력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백 고문은 6·15시대는 통일시대의 들머리에 해당한다면서, 우리의 통일은 남북 민중의 실질적 접근으로 "어물어물" 진행되는 통일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권 상층부 소수의 거창한 합의보다는 사회 각 부문 민중들이 다양한 차원에서 교류하고 상호 이해해가며 신뢰를 쌓아나가는 것이 진정한 통일의 밑바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상적 차원의, 어깨에서 힘을 뺀 통일운동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백 고문의 대담과 도라산 강연문은 각각 '함께하는 시민행동' 사이트의 '에피소드' 코너와 '창비 웹진'에 실려있는 것으로, 양측의 양해를 얻어 여기에 게재한다. <편집자>

***백낙청ㆍ하승창 대담 : 통일을 다르게 생각하자?**

6.15 5주년을 맞아 남과 북, 그리고 해외의 민간단체들이 공동으로 주최했던 행사를 기억하시겠지요. 8.15 때는 통일축구까지 열리기도 했구요. 정부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6.15 행사 때는 정동영 장관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서 중단되었던 남과 북의 대화를 이어가게 되기도 했지요. 그 6.15 공동준비위의 상임대표로 역할하셨던 백낙청 교수님은 창비를 통해 문학을 논하면서도 사회과학적 인식을 바탕으로 분단체제론을 설파해 70~80년대 사회운동에 많은 영향을 끼친 분입니다.

8.15 행사를 마무리하고 나서 어느 강연에서 '통일의 개념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신 것을 보고 좀 궁금해졌습니다. 통일 이후의 체제 문제가 아니라 통일 그 자체의 개념을 바꾸어야 한다는 이야기여서 말이죠. 더구나 6.15 준비위에는 시민단체들도 참여해서 녹색연합의 김제남 처장이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행사준비를 위해 북한을 오가며 애쓰기도 한 터이라 시민운동도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을 나누어야 할 필요가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인터뷰는 그를 위한 자료 중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 그 강연 원고를 첨부했습니다. 읽어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시민단체의 참여, 의미는 크지만 아직 온전한 몫을 하지는 못하고 있다**

우선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핫챵(하승창): 그동안 남북의 민간차원 행사는 행사 본래적인 의미가 부각되기보다 늘 이념적인 문제로 비화하는 '사건'들이 더 부각되곤 했는데, 이번 6.15, 8.15 행사는 남북의 화해라는 행사 본래의 취지가 제대로 전달되기도 했고, 정부, 여, 야 모두 참여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모두 함께한다는 느낌도 주었습니다. 또 정부는 정부대로 중단되어 있던 남북관계를 개선시키는 성과도 얻었지요. 알게 모르게 이번 행사는 남북간의 대립분위기를 전환시키는 데 작지 않은 기여를 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두 큰 행사를 치르시고 나서 어떤 느낌을 갖고 계신지요.

백낙청: 곡절도 많았고 세부적인 실수나 차질도 적지 않았지만 크게 봐서 매우 성공적인 행사들이었다고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2000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과 공동선언이 우리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었지만 한동안 그 점을 실감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었더랬지요. 그러다가 올해의 양대 축전을 치러내면서 우리가 '6.15시대'를 살고 있음을 재확인했고 대세가 잡혔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2005년 6월 중순부터 4차 6자회담의 타결에 이르는 9월 중순까지의 약 3개월 간은 2000년 6월에 버금가는 획기적인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핫챵 : 시민단체들로 보면 통일단체들과 함께 일을 해본 것은 흔치 않은 경험인데, 지켜보시고 나서 시민단체들의 역할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하고 계실까 궁금한데요?

백낙청: 통일운동과 직접 관련이 없는 시민단체들이 6.15 공동선언 실천작업에 대거 참여한 것은 6.15공동위, 정식 명칭을 말한다면 '6.15공동선언실천을위한남북해외공동행사남측준비위원회'에 합류한 올해가 처음이지요. 나는 지난 1월 31일 남측준비위 결성식에서 상임대표를 맡으면서 처음으로 관여했기 때문에 그에 앞선 준비과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상당한 논란 끝에 종전의 통일연대-민화협-7대종단의 3자구도를 시민단체들까지 합친 4자구도로 확대하는 방안이 채택된 걸로 압니다.

내가 보기에 이른바 '시민진영'이 아직은 4분의1 몫을 온전히 해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몇몇 분이 헌신적으로 일했지만 투입된 인력이 워낙 한정되고, 시민단체들의 인식도 대개는 좋은 일에 품앗이를 해준다는 정도지 자신들이 이 사업의 주체라는 데까지 나간 경우가 드물지 싶어요. 하지만 시민사회단체들이 민간 통일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 자체는 굉장히 큰 의미를 지닌다고 봅니다. 첫째, 통일은 통일운동가들만이 나서서 될 일이 아니고 평범한 시민들이 다 함께 참여해서 만들어가야 된다는 게 내 생각이고, 둘째로 시민단체들이 추구하는 많은 개혁과제들이 분단이라는 변수에 의해 중대한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통일사업에 무관심한 시민운동은 그 시야와 영향력이 한정되기 마련이라고 믿는 거지요.

(두 번째 이야긴데요, 아무래도 시민운동하는 사람이다 보니 그 입장에 서서 궁금한 것들이 있으니 자꾸 시민운동은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생각으로 묻게 되더이다.)

***6.15시대, 통일의 개념을 좀 바꿔보자**

핫챵: 통일운동을 본격적인 자기 사업으로 하지 않는 대부분의 시민단체들에게 백선생님이 말씀하시는 6.15시대 혹은 통일시대란 개념이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선뜻 다가오지 않을 수 있는데, 도라산 강연에서 말씀하시기는 하셨지만 시민단체 버전(그런데 이런 게 있나 모르겠네요?)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는지요?

백낙청: 강연에서 '어깨에 힘 빼고 통일하자'는 표현을 썼지요. 그런데 가령 야구에서 투수가 어깨에 힘 빼고 던진다고 해서 공을 슬슬 던지는 건 아니잖아요? 오히려 어깨에 힘을 빼야 강속구도 잘 나오고 커브도 제대로 들어갑니다. 마찬가지로 통일사업을 힘껏 수행하되 일머리를 제대로 알아서 공연한 일에 기를 쓰지 말고 맥락을 정확히 짚어서 해나가자는 거지요.

한반도 통일이 무력으로 해결할 문제라면 모두가 총을 들고 나서든가 적어도 국민총동원 체제로 무력통일을 뒷받침해야 합니다. 반면에 독일식의 급속한 흡수통일이 바람직하거나 가능하다면 그 주역은 아무래도 당국자와 금력을 쥔 계층이 되게 마련이지요. 일반국민은 투표를 통해 그들의 결정을 추인하고, 시민단체들은 통일에 따른 부작용을 치유하고 수습하는 일에나 의미있는 역할을 맡을 거예요.

하지만 한반도식 통일은 그도저도 아니거든요. 남북간의 실질적인 교류와 통합, 그리고 여기에 수반되는 남북 각자의 내부변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그것도 딱히 어디까지가 '통일 전'이고 어디부터가 '통일'인지 불분명할 만큼 어물어물 진행되는 독특한 과정이 우리식 통일이라면 시민단체들의 몫도 완연히 달라집니다. 시민운동이 그날그날 이루어가는 일들이 통일사업 아닌 것이 없고, 그런 사업들의 축적을 떠나서는 한반도식 통일이 불가능한 거예요. 그래서 나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자기 할 일 하면서 편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어깨에 힘 빼고' 통일사업을 하자고 말해본 겁니다.

다만 시민운동측도, 우리는 통일운동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런 건 통일운동가들에게 맡겨놓을 수밖에 없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넘어서야 합니다. 시민운동을 그만두고 통일운동으로 전환하라는 게 아니에요. 한반도의 현실에서 시민운동이 본래 지닌 통일사업적 차원을 인식하면서 움직이자는 거지요. 그럴 때 기운도 더 나고 한층 정교한 투구(投球)가 가능하지 않겠어요? 시민운동 자체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거예요.

핫챵:시민운동을 그만두고 통일운동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통일사업적 차원을 인식하면서 움직여야...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말하자면 시민운동이 통일운동과 분리된 다른 운동의 영역이 아니라는 말씀으로도 들립니다. 우선 제 해석이 맞는 것인지 여쭙고 싶고, 그런데 늘 이 지점이 고민이기도 한데,

예컨대 '분단체제'에 근거한 국가권력이 작동하는 기제로서의 국가보안법 철폐운동과 분단체제를 근본적으로 해체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평화군축운동, 대립과 적대 분위기를 해소하고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남북 교류협력운동 등은 쉽게 이해가 되지만 시민운동이 하는 모든 운동에 통일사업적 차원을 담는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아무래도 이 점과 관련해서는 좀 더 설명을 해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백낙청: 시민운동이 통일운동과 분리된 다른 영역이 아니라는 말도 기본적으로 맞지만 현 시점에서는 통일운동이 시민운동과 분리된 다른 영역이 아니라는 인식이 더 중요할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구체적인 설명을 주문하셨는데 차원이 다른 두 가지 예를 들어보지요.

먼저 통상적인 통일운동과 분명히 거리가 있는 예로, 시민행동에서 하는 예산감시운동 같은 걸 생각해볼 수 있지요. 이것도 다 통일사업의 일부라고 무턱대고 주장하는 건 추상적인 이야기가 되겠지요. 통일부의 남북협력기금 운영이나 국방예산의 감시 등 특별한 경우라면 몰라도요. 그러나 우리가 통일이면 어떤 통일이든 다 좋다는 입장이 아니고 현존 분단체제보다 나은 체제로의 통일을 지향한다면 국민이 예산감시를 열심히 하고 그런 감시가 먹히는 정부를 만드는 훈련이 분단체제 극복작업의 중요한 일부인 게 분명하지요. 가령 '밑 빠진 독' 상의 시상작업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한다면 더 신나지 않겠어요? 나아가, 국가재정의 알뜰운영이 그 자체로서 미덕이긴 하지만 예산에 대한 시민의 주인의식은 나랏돈을 써야 할 데에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관심을 포함해야 합니다. 분단국가의 틀을 고수한 채 세출만 아껴서 국가기구의 민주화와 효율성이 얼마나 진행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도 공부하는 시민이 되어야지요.

환경문제 같은 것은 '한반도적 차원'의 중요성이 훨씬 쉽게 떠오르는 경우지요. 물론 환경운동에서는 개인의 일상생활에서 하는 작은 실천도 중요합니다만, 한반도 내지 동북아, 나아가서는 전 지구의 차원에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들이 허다하거든요. 특히 남북의 경제협력이 활성화해서 북녘에서의 개발이 촉진될 경우 그것이 남한식 난개발의 재판이 안 되도록 하는 협력체제가 필요하며, 더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남한사회 자체의 환경의식이 비약하는 결과가 되어야지요. 많은 녹색운동가들이 우리 사회에서 '생태적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만, 첫째 분단체제를 그대로 둔 채 남한만이 온전한 생태적 전환은 수행한다는 건 불가능하고, 둘째로 좀더 친환경적인 통일사회가 성립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류문명의 생태적 전환을 자동적으로 담보하는 건 아니라는 현실적 인식이 요구된다고 봐요. 세계체제와 분단체제의 성격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근거로 환경운동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런 운동만이 제대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예요.

핫챵: 그런데 6.15시대 혹은 통일시대란 표현을 쓰시는 것은 곧 말씀하신 대로 분단체제의 해체와 동일한 과정이기도 할 텐데, 국내적으로 보면 여전히 국가보안법의 존재처럼 제도적으로도, 또 그에 기초한 정치, 사회적 세력들의 발언이 만만치 않게 사회적 의제로 되기도 하는데, 섣불리 분단체제의 해체라고 할 수 있을지, 분단체제에 기초한 정치적 탄압이 있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과거와 차이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말이죠.

백낙청: 분단체제의 해체기라는 표현은 분단체제가 단순히 '흔들리는' 정도를 넘어 이제 '허물어지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뜻이지 완전히 허물어졌다는 뜻은 아니지요. 국가보안법 철폐 같은 남쪽 내부의 법적, 제도적 정비는 분단체제를 해체하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는 '분단체제 극복' 작업의 중요한 일부입니다. 나는 분단체제가 붕괴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더 나은 체제가 성립하는 어떤 역사적 필연성이 있다고는 믿지 않아요. 80년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가 붕괴하면 사회주의가 도래하는 '역사의 법칙'을 신봉했지만, 세계 차원에서든 한반도 차원에서든 그런 보장은 없다고 봐요. 분단체제를 허물어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다음 단계의 역사가 더 나아질 수도 있고 못해질 수도 있는 거지요.

핫챵: 통일시대라고 하신다면 최소한 남북이 무언가 '통일'되는 '구체적 과정'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데, 현재의 대화와 협력 등을 그렇게 보신다면 사실 6.15선언 이전에 교류와 협력은 시작되었으므로 6.15선언을 하나의 기점으로 보신다면 무언가 다른 근거가 더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백낙청: 한반도식 통일은 점진적이고 두루뭉실한 과정이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통일준비 작업'이고 어디부터가 '통일과정'인지도 모호할 수밖에 없어요. 6.15 이전의 교류와 협력도 모두 통일과정의 일부를 이루는 것은 틀림없지요. 하지만 6.15선언이 큰 전환점인 것만은 분명하지 않아요? 남북의 정상이 직접 만나서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통일에 합의하면서 실천가능한 방안들을 제시했으니까요. 실제로 6.15 이후 남북간 교류협력은 지난 5년간의 온갖 곡절에도 불구하고 내용면에서도 6.15 이전과는 엄청난 차이가 나지요.

문제는 교류협력의 이런 양적인 확대가 더 진전된다고 해서 그게 곧 '통일'은 아니지 않느냐, '통일'과 '통일 이전의 교류협력' 사이의 질적 차이가 더 중요한 게 아니냐는 반론일 겁니다. 그런데 나는 우리가 1945년 해방과 더불어 통일된 국민국가 건설에 실패했기 때문에 '통일'에 대한 일정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통일의 개념을 좀 바꿔보자고 주장한 겁니다.

(그러고 보면 대개의 경우, 아니 몇몇 단체를 제외하고 통일과 관련된 일을 구체적인 사업으로 하고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 같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백교수님이 말씀하시는 통일에 대한 고정관념 벗기를 통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지요)

***통일에 대한 고정관념 벗기**

핫챵: 우리가 가지고 있는 통일에 대한 고정관념을 지적하신 것은 중요해 보입니다. 통일의 개념을 바꾸어 생각해 본다면 '통일운동'이라 부르고 있는 운동의 영역과 과제도 확장될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당연히 '기존의 통일운동'이 폭이 좁은 느낌을 주게 됩니다. 왜냐면 그간 우리는 통일운동이라 하면 통일의 구체적 방식과 경로와 관련된 운동이나 남과 북의 적대를 극복하기 위한 교류나 협력, 혹은 북한 바로알기 운동 - 이 운동은 북의 입장에 기초해서 북한 정부의 주장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운동이 중요한 운동처럼 되어버린 경우도 있지요 - 등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할 수 있거든요. 그것이 말씀하신 대로 해방공간에서 남과 북이 '통일된 국민국가'를 건설하지 못한 것이 지금껏 '민족적 과제'로 되어 있다는 점에 기초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난 50년 세월이 지나면서 이미 남과 북은 해방공간 당시의 남과 북이 아니라는 '변화'가 있지요. 우리는 종종 통일운동에서는 이 점을 잊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여전히 해방공간의 못다 푼 숙제를 푸는 통일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것은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것이 말씀하신 '고정관념'이라면 2005년 오늘 한반도에서 '통일'은 어떤 것일까 하는 문젠데요, 좀 더 부연해서 설명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백낙청: 뭐 내 생각을 상당부분 말씀하신 것 같네요. 최근 통일운동 일각에서는 '화해협력세력'과 '자주통일세력'을 구분해서 양자의 연대를 통해 2005년에 반통일수구세력을 제압한 만큼 이제는 자주통일세력의 주도권을 확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어요. 나는 그런 구분법이 전혀 근거없는 건 아니지만 양자가 실제로 융합하는 영역을 제외한 잘못된 발상이며 자칫 통일운동의 외연을 다시 좁혀놓을 위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사회에는 통일까지 갈 것 없이 화해협력을 통해 분단체제를 적당히 개량하는 데 만족하려는 세력이 있고, 화해협력을 통한 점진적이고 실질적인 통합과정을 건너뛰어서라도 '자주통일'을 달성해야 하고 그럴 수 있다고 믿는 세력도 있습니다. 그러나 '통일'의 개념을 우리 식으로 재정립하고 보면 화해협력이 통일로 나가는 건 불가피할뿐더러 그다지 요원한 일도 아니며, 화해협력이 생략된 '자주통일'은 한갓 구호에 그치고 맙니다.

북한 바로알기도 이제는 각자가 자주적으로 할 때가 왔어요. 즉 나는 북에 대해 깡무식이고 알아볼 기회도 없기 때문에 더 잘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학습해야 한다고 생각할 단계는 이미 지났지요. 지금은 비교적 객관적인 자료도 많고, 북을 직접 방문해서 한정된 구역이나마 돌아볼 기회도 계속 늘어나고 있거든요. 지난 7월 북에 가서 남북작가대회를 마치고 떠나기 전에 우리측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무엇보다도 작가들의 마음속에 벽 하나가 허물어진 것이 큰 성과라고 본다, 벽이 허물어졌다고 비판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직접 다녀간 뒤에 더욱 비판적이 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벽을 쌓아놓고 저 건너편에서 보지도 않고 비판 또는 비방하는 것과 허물어진 벽 사이로 직접 와본 뒤에 비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진짜 작가라면 이런 비판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계속 곱씹어보게 마련이며, 나아가 저편을 향해 던진 비판을 스스로에게 적용해보기도 할 것이다...'라고요. 이런 것이 다 '주체적인 북한 바로알기'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핫챵: '어느 새 꽤 됐네', '문득 통일이 되는 과정' 등의 표현을 도라산 강연에서 쓰셨는데,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해주셨지만 궁극적으로 통일은 남북당국자(그 과정에서의 민중 혹은 시민들의 참여가 어떤 식으로든 있겠지만)간의 결정이라는 방식을 취할 가능성이 많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 경로가, 다양한 세력들이 부딪히게 될 것이므로 복잡한 양상을 가질 것이라고 보면 혹 너무 낭만적이고 현실적이지 못한 생각은 아닌지요.

백낙청: 매우 중요한 질문인데 세 가지로 나눠서 말씀드리지요.

첫째, 물론 당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교류협력의 진행과정에서도 그렇지만, '자 이쯤 됐으니 이걸 통일이라고 하자'라고 선포하는 행위는 아무래도 당국이 주도해야겠지요. 바로 그 점이 민중참여=시민참여가 실현되는 정치를 만드는 일상적 개혁작업이 그만큼 더 중요해지는 까닭이기도 하지요.

둘째, 한반도식 통일은 사회 저변에서 실질적인 통합이 어느 정도 진행됐을 때 당국이 이를 추인하는 형식이 될 터이므로 당국자들끼리 담합하는 식으로 주도할 수 없다는 겁니다. 강연에서 예멘의 경우를 잠시 언급했는데, 남북 예멘은 남북한처럼 각기 다른 방향으로 고도로 발전한 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나마 '담합통일'이 일단 성립할 수 있었지요. 그러고도 실질통합이 안 되다가 내전을 거쳐서야 통일이 됐는데, 한반도 같은 세계적인 화약고에서는 그런 식의 뒷마무리는 생각할 수 없어요. 하처장 말씀대로 다양한 세력들이 부딪히는 복잡한 양상을 겪어내면서 민간 차원에서 상당수준의 통합을 이루는 것이 선결조건이 되는 겁니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1단계 통일'이 멀지 않다고 큰소리를 쳤는데, 엄연히 두 개의 정부가 있고 무엇보다 두 개의 군대가 남아있는 상태에서 설령 '이걸 통일이라고 하자'라고 양측이 합의한다 한들 그게 일종의 말장난에 불과하지 않느냐는 반론이 가능하겠지요. 그러나 남북한의 경우는 원래 별개의 통일된 국민국가로 존재하다가 처음으로 합치겠다는 게 아니고, 오랫동안 하나이던 민족을 억지로 둘로 갈라놓은 것을 다시 합치려는 재통일(reunification)이에요. 그 점이 유럽연합과 다른 점이지요. 1945년 당시 불과 70여 년의 통일된 역사밖에 갖지 못했던 독일과도 다르고요. 한반도의 분단은 아무런 명분 없이 외세에 의해 강요된데다 동족간의 전쟁, 그리고 삼엄한 군사분계선으로 겨우 유지해온 분단이기 때문에 오히려 잘못 풀어놓으면 대혼란을 야기할 엄청난 상호흡인력이 작용하고 있어요. 이런 판을 잘 관리해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 안' 부근의 어느 지점에 이미 도달했음을 공식 선포해놓으면 2단계, 3단계의 통일이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국가연합의 일반적인 사례와는 전혀 다른 경우지요.

핫챵: 관련해서 분단체제를 허물기 위한 마음의 공부라는 것도 구체적 목표로 이해되기보다 추상적인 '자세'의 문제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백낙청: 그게 단순한 오해는 아니고, 개인의 마음공부를 개인들의 환경이나 사회구조 문제로부터 분리시켜 추상화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요. 원래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기 몸을 돌보고 마음을 챙기는 공부는 누구나 해야 하는 일 아니겠어요? 한 걸음 더 나가서, 나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달라짐으로써 세상이 달라진다는 생각이야말로 진짜 민중사관(民衆史觀)이라 믿어요. 다만 이걸 '너희들 각자가 성현처럼 되기 전에는 세상을 바꿀 생각을 말아라'는 식으로 교묘하게 변형시켜서 내휘두르는 것이 기득권자들의 상투적인 수법이지요. 실제로는 세상 바꾸는 공부와 자기 마음 챙기는 공부를 갈라놓을 수 없는 겁니다. 그런데 보수주의와 정반대 방향에서 이걸 갈라놓으려 했던 것이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가 아니었는가 해요. 혁명을 일으켜서 정치권력을 획득한 뒤 사회의 경제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으면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의식은 저절로 바뀔 거라는 믿음이 한때 팽배했었지요.

***구호보다 실제로**

핫챵: 통일시대를 '만들어' 간다는 의미에서 남북의 교류와 통합작업에 각자 힘 닿는만큼 참여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데, 특히 민중대참여의 원칙을 말씀하고 계신데, 그렇다면 현재 진행되는 각종 교류와 통합작업에 대해서는 어떤 판단을 갖고 계시고, 민중대참여의 원칙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그 구체적 방안이랄까 하는 것을 생각해보신 것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시죠.

백낙청: 구체적인 방안을 말하기보다 민중대참여의 원칙을 강조한 취지를 조금 더 설명해보지요. 1972년의 7.4공동성명에서 합의한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은 남북 쌍방이 거듭 재확인해왔고 지금도 물론 유효합니다. 그런데 6.15 이전의 시대에는 통일논의와 통일사업의 공간이 한정돼 있었기 때문에 '민족대단결'의 원칙도 폭넓은 지지를 얻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다보니 '민족대단결'이 통일운동에 나선 한정된 사람들 간의 단결을 위한 구호에 그치는 경향이 생겼어요. 하지만 가령 시민단체들이 빠지고 평범한 시민들이 몰라라 하는 민족대단결 운동이 그 이름값을 한다고 할 수 있겠어요? 하기는 '민중대참여'라는 원칙도 얼마든지 구호로 끝나버릴 수가 있어요. 중요한 것은 실제로 수많은 시민 내지 일반민중이 각종 교류와 통합 작업에 관여하게 되는 일인데, 그러자면 분단체제의 문제점에 대한 인식이 더 넓게 퍼져야 하지만 통일에 대한 개념과 통일운동 하는 방식도 바뀔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핫챵: 6.15공동위가 올해 막혀있던 남북관계의 개선이나 대립적 분위기의 한반도 정세를 완화하는 데 일정한 기여가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6.15공동위는 어떤 상태에 있으며 향후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요? 사실 시민운동단체들과 통일운동단체들의 거리가 노동운동이나 다른 사회운동처럼 가깝다고 할 수는 없는 데, 시민운동이 다른 사회운동과도 운동의 과제나 방식, 철학 등 여러 위상에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마찬가지일 수 있다고 봅니다. 6.15공동위를 겪으시면서 두 운동의 관계에 대해 느끼신 점이나 바라고 있으신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시죠.

백낙청: 공동행사로는 을사늑약(乙巳勒約) 100주년(11월 17일)을 기해 무언가 하자고 원칙적인 합의를 해놓은 상태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안 섰고요, 또 6.15공동위원회의 전체회의가 3월 4일 결성식 직후에 거행된 이래 2차회의가 열린 바 없는데 그것도 한번 해야 할 겁니다. 다만 지금은 6.15와 8.15의 양대 축전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상황이니만큼 1차회의 때와 달리 충분한 준비를 거쳐서 회의문화 자체에도 일정한 진전을 가져오는 2차회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우리 남측에서는 많이들 하고 있지요. 남측 준비위 내부의 과제로는 아직도 엉성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조직의 모양새를 갖춰가면서 '통일운동 연대기구'로서의 진로에 대한 성원간의 공감대를 넓혀나가는 일이 급선무라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 통일운동단체들과 상당한 거리감을 느껴왔던 시민운동단체들이 6.15공동위의 주요 구성세력의 하나로 들어와 있다는 것이 굉장히 뜻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노동운동을 말씀하셨지만 물론 양대 노총이 통일연대의 일부로 통일운동을 해왔지요. 그러나 노동운동의 지도부, 특히 그 중에서 통일지향성이 강한 부분이 아니고 일반 노조원이나 노동대중을 기준으로 말한다면 통일운동단체들과의 관계가 시민운동보다 더 가까웠다고 말하기도 힘들어요. 이제부터 정규직, 비정규직 할 것 없이 모든 노동자들에게 '한반도식 통일'이 자기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6.15공동위가 해야 할 일 중에 하나라고 봅니다.

단기적으로 시민단체들의 역할은 이 모든 과정에 통일연대-민화협-7대종단-시민사회단체 4자구도의 한 축으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해주는 일이겠지요. 자신의 시각과 의제를 당당히 주장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경청해서 조직과 노선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시민운동 특유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거예요.

길게 볼 때 나는 '민중대참여의 원칙에 입각한 민족대단결'을 위해 종단과 시민단체들의 참여가 훨씬 활발해지는 것이 긴요하다고 봅니다. 통일연대나 민화협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까지 통일운동에 나서지 않은 대중에 대해 엄청난 영향력을 지닌 종단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어떤 몫을 하느냐에 따라 내가 생각하는 한반도식 통일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통일을 위해서도 마음공부가 있어야..**

핫챵: 마음공부라는 것이 어쩌면 늘 가장 어려운 공부이기도 한데, 특별히 마음공부를 강조하시는 이유를 마무리 말씀 삼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백낙청: 마음공부가 어렵다면 어렵지만 '가장 어려운 공부'인지는 모르겠어요. 이것도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잘 안 되지요. 마음공부가 어렵다는 것은 끊임없이 계속해야 하는 공부인데도 일에 빠지다보면 놓치기 쉽다는 뜻이겠지요. 반면에 마음공부를 끝내고서야 다른 일을 할 수 있는데 끝이 안 보여서 어렵다는 뜻이라면 이건 기득권층의 논리에 또 한번 현혹되는 결과가 되겠지요.

아무튼 누구나 당연히 해야 하는 거라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넘어, 특별히 우리식 통일과 관련해서 마음공부를 강조할 만한 까닭이 있다고 봅니다. 이미 했던 말의 되풀이가 되지만, 민중대참여의 원칙에 따른 민족대단결을 실질적으로 진행시키면서 일정한 지점에서 당국자들이 이를 추인하고 공식화하는 것이 한반도식 통일이라면 평범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도덕성과 실행력이 그만큼 더 중요해질 것이 분명하지요. 마음공부가 어느 정도 된 사람들이 통일사업을 하고 사업의 과정 자체가 공부감이 되지 않고서는 이 전대미문의 과업을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세계평화축전 폐막강연(9월 11일 도라산역) : 6.15시대의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경기도가 주최하는 세계평화축전의 폐막강연을 맡게 된 것은 저에게 커다란 영광입니다. 특히 장소가 경의선의 남측 최북단 역인 도라산역인 점이 뜻깊습니다. 이런 뜻깊은 행사를 발상하고 기획하신 손학규 지사 등 경기도 여러분과 주관하는 수고를 감당하신 송태호 대표 등 경기문화재단 여러분께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오늘은 9.11테러의 4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날짜를 일요일로 잡다 보니 우연히 그리 된 것이겠지만, 도라산역이 상징하는 화해와 협력, 평화의 주제에 더욱 무게를 실어줍니다.

도라산역을 건설하는 일 자체가 6·15 공동선언으로 가능해졌습니다. 6·15시대의 산물이자 그 상징 가운데 하나가 도라산역인 것입니다. 이런 장소에서 6·15시대를 다시 생각해보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평화를 위해 갖는 그 의미를 살펴보는 일은 정말 보람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00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과 공동선언이 안겨주었던 애초의 감동은 한동안 적잖이 멀어진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2001년 9.11테러로 미국의 대결적 정책과 일방주의가 강화된데다, 작년에는 북핵 문제가 심각해지고 남북간에 다른 악재들이 겹치면서 '6·15시대'라는 말을 실감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완연히 다릅니다. 특히 6·15 다섯 돌 기념 평양축전과 광복 60주년을 맞은 서울축전 행사는 오랜만의 대규모 민간 공동행사일 뿐 아니라 최초로 민·관이 함께한 축제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복원된 남북 당국자간의 일련의 접촉은 남측 특사와 북측 최고지도자의 면담, 북측 대표단의 남쪽 국립현충원 방문 같은 괄목할 사건을 낳았고, 정치·경제·군사와 인도주의 사업 등 여러 분야에서 굵직굵직한 성과를 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지난 3월말에 남·북·해외의 민간 공동기구로 발족한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 공동행사 준비위원회'가 한몫을 해낸 데 대해 저는 남측 상임대표로서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동안 협조하고 함께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강연 내용은 어디까지나 개인 의견이며 상임대표로서의 공식 발언이 아니라는 점도 아울러 밝혀두고자 합니다.

***6.15 공동선언의 모호성이야말로 통일실현의 밑비탕**

6·15시대란 과연 어떤 시대일까요? 무엇이 6·15 공동선언에 한 시대의 획을 그을 만한 의미를 부여했으며, 6·15와 더불어 시작된 시기는 정확히 어떤 특징을 지니는 것인가요?

사실 6·15선언의 내용 자체는 일찍이 1972년에 통일의 원칙을 천명한 7·4 공동선명만큼 명쾌하지 않고, 1991년에 조인되어 이듬해 발효한 기본합의서, 즉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비해 구체성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저는 바로 그러한 점들이 6·15가 지니는 획기적 의미의 요체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6·15선언의 남다른 의미로는 그것이 남북 정상이 직접 만나 합의하고 서명한 문건이라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남측의 경우 이 만남은 상당한 공론화의 과정 속에 진행되었으며, 여야간의 평화적 정권교체와 민주화의 지속적 추진이라는 배경을 지닌 것이었습니다. 72년의 밀사교환 당시는 물론, 91년의 기본합의서 체결이나 94년의 갑작스런 정상회담 합의 때보다 훨씬 든든한 현실적 기반이 전제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6·15 공동선언의 일견 모호하고 제한적인 내용이 바로 이러한 현실적 기반에 걸맞은 탁월한 성과라는 점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선언문 제2항의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는 대목은 내용이 두리뭉실할뿐더러, 남북 각자가 이제까지 배격해온 상대방 제안에 끌려갔다는 비난을 받을 여지를 남겼습니다. 실제로 우리 남쪽에서 그런 비난이 많았지요.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어느 한 쪽만이 다른 한 쪽을 끌고 가기로 했다면 합의가 가능했겠습니까. 저는 이 조항의 애매모호한 표현이야말로 6·15 공동선언을 빛내는 대화와 타협의 정신, 실현가능한 방안을 찾아내는 실천적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믿습니다.

돌이켜보면 7·4 공동성명의 조국통일 3대 원칙, 즉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은 모두가 타당한 것이지만, 통일에 대한 열망 못지않게 사람들마다 자신에게 불리한 통일이 될까 하는 불안감을 안겨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북측에서는 통일방안으로 이미 '고려연방제'를 제의해둔 상태였고 1991년에 이 제안을 새롭게 제출합니다. 그런데 연방제로 가는 과정에서의 남북간 신뢰구축에 대한 현실적 방안이 부족했던 탓에 북측이 고려연방제를 제안했다는 사실 자체가 도리어 남측에서 모든 연방제 논의를 어렵게 만들어버리기도 했습니다.

다른 한편 90년대 초의 기본합의서는 연방제가 아닌 국가연합제에 실질적으로 기울어진 느낌이 많아 북측에 부담을 준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합의서는 물론 7·4성명의 3대 원칙을 재확인하고 '남과 북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하여 연방제 통일로의 길도 열어놓았습니다. 하지만 남북의 유엔 동시가입이 그 해 가을(1991년 9월)에 실현된 상황에서 이러한 조항은 이미 형성되기 시작한 일종의 연합관계를 추인하며 각종 부속문서를 통해 강조하는 의미가 없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대립각을 6·15 공동선언은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는 두루뭉실한 표현으로 절묘하게 해소했습니다. 연합제와 연방제는 엄연히 다른 것이지만 - 무엇보다 연합제에서는 두 개의 중앙정부가 남아있는 데 반해 연방제는 하나의 연방정부 아래 남북의 지방정부가 존재한다는 점이 다르겠지요- 연방제의 수많은 형태 중에 '낮은 단계'에 속하는 것과 연합제가 똑같다는 게 아니라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했으니 이론상 나무랄 데 없는 명제입니다. 게다가 현실적으로도 그 중 어느 하나를 지금 택한다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했다는 데야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상대방의 굴복을 요구해서 화해와 협력을 막겠다는 입장이 아니라면 말이지요.

제2항의 합의정신을 좀더 일반화해서 풀이한다면, 첫째 통일을 하기는 하되 너무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 어떤 형태의 통일인지를 미리 못박지 않고 지금 가능한 통일작업부터 진행한다는 것이 되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남북간에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데 결정적인 합의였습니다. 그리하여 실질적인 신뢰구축 작업을 명기한 공동선언 제4항, 즉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는 조항이 비로소 힘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까닭은 첫째, 한반도에서의 신뢰구축은 통일을 하지 말자고 해도 불가능하고 덮어놓고 통일하자고 외쳐대도 어려워집니다. 통일을 안 한다고 하는 순간 정권유지가 힘들어짐은 물론, 현실적으로도 남북한 모두의 장기적 문제에 답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무작정 통일을 부르짖는다고 구체적인 방안이 안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식의 통일이 이루어지는 데 대한 사람들의 불안이 커져서 오히려 통일사업에 역행하기 십상인 것입니다.

둘째로, 한반도의 분단현실은 세계 어느 곳에도 유례가 없는 그 나름의 특이한 구조를 지녔기 때문에 한반도의 통일 또한 교과서에 없고 현대정치사에 선례도 없는 독특한 방식을 창안하지 않고는 달성할 수 없습니다. 일을 해나가면서 그때그때 최대한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일이 중요하지 기존 개념들 가운데서 이게 맞냐 저게 맞냐를 놓고 싸워대는 일은 백해무익한 것입니다.

한반도의 통일이 베트남식 무력통일도, 독일식의 급격한 일방적 합병도 아닌 평화적이고 점진적인 과정이어야 한다는 점에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라는 표현도 곧잘 쓰이곤 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의 종착점은 여전히 1945년 당시에 우리 민족이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나면서 이루려다 못한 단일형 국민국가로 설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000년 6월의 정상회담에서도 통일까지는 20~30년, 아니 40~50년이 걸릴 거라는 이야기가 오갔다고 전해집니다.

이는 물론 정확성을 기한 관측이라기보다 통일을 너무 서두르지 않는다는 역사적 합의의 연장선에서 나온 덕담 수준의 이야기였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러나 이런 발언을 문자 그대로 접수한다면 6·15시대는 2000년에 시작해서 길게는 2050년까지도 갈 수 있는 장구한 세월이 됩니다. 흔히들 말하는 대로, 통일이 언제 될지, 과연 되기는 되는 건지, 실로 막막한 느낌을 주기에 알맞은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우리가 통일에 대한 개념을 바꿀 것을 제창합니다. 단일형 국민국가로의 '완전한 통일'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 사이 어느 지점에서 남북간의 통합작업이 일차적인 완성에 이르렀음을 쌍방이 확인했을 때 '1단계 통일'이 이룩되는 것이라는 새로운 발상이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무엇이 통일이며 언제 통일할 거냐를 두고 다툴 것 없이 남북간의 교류와 실질적 통합을 다각적으로 진행해 나가다가 어느 날 문득 '어 통일이 꽤 됐네, 우리 만나서 통일됐다고 선포해버리세'라고 합의하면 그게 우리식 통일이라는 겁니다.

물론 그것이 통일작업의 완성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통합의 과정은 한층 힘차게 진행될 것이며 무엇이 2단계, 3단계 통일에 해당할지도 그때 가서 정하면 되는 것입니다.

허술한 것 같아도 한반도에서는 이런 '1단계 통일'만 이루어져도 그것은 남북 민중의 실질적 화해와 접근에 근거한 것이기에 다음 단계들을 향한 불퇴전의 대세를 이루게 마련입니다. 이집트의 나세르와 리비아의 가다피가 한때 '통일아랍연합공화국'을 선포했다가 금세 흐지부지됐던 경우와 판이함은 물론, 남북 예멘의 당국자들이 '3당 합당'식의 담합통일을 선포했다가 결국은 내전을 거쳐서야 온전한 통일을 이룩한 전례와도 비교가 안 됩니다. 우리의 정치적·경제적 발전수준은 당국자들만의 담합에 의한 하향식 통일을 허용하지 않을뿐더러 남북이 모두 중무장한 상태에서 내전을 통한 뒷마무리라는 수순도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다소간에 두루뭉수리로 진행하다가 문득 통일이 되는 과정이야말로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라는 한반도식 통일의 참뜻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리고 이런 통일은 결코 아득한 장래의 일이 아니라 가까이 다가온 미래입니다. 6·15 이후 5년 동안 허송세월이 적지 않았지만, 올해 6월 14일에서 8월 17일, 즉 평양축전이 시작해서 서울축전이 끝나기까지의 두 달 남짓한 기간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더구나 금주로 속개가 예정된 4차 6자회담이 성과있게 마무리된다면 변화의 물살은 더욱 급해질 것이 분명합니다.

정녕 6·15시대는 통일시대의 들머리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남북 민중의 실질적 접근으로 '어물어물' 진행되는 통일이 돼야**

이제 한반도의 이런 통일시대가 동북아 평화에 어떤 의미를 지닐지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현재 한반도는 동북아에서 가장 전쟁위험이 높은 지역으로 꼽힙니다. 따라서 이러한 곳에서 평화가 정착되고 통일작업이 진전된다면 동북아뿐 아니라 세계 전체가 그만큼 더 안전해질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의 됨됨이를 보건대 설령 한반도가 좀더 안전해진다 해도 지구 현실이 갑자기 평화로워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자칫하면 아직까지 비교적 안정된 지역인 동아시아마저 전 세계적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고 말 위험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동북아 및 동아시아만이라도 이런 대세를 거슬러서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놓는 선도지역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동아시아인뿐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해서도 중요한 질문입니다. 동북아의 그러한 역할을 위해 한반도의 어떤 통일과정이 가장 도움이 될지를 생각해고자 합니다.

오늘날 남북의 대치상태는 동북아의 직접적인 불안요인임을 넘어 동아시아 지역협력 체제의 형성과 일본, 중국 등 이웃 강대국들의 건전한 발전에도 큰 장애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북의 핵무장과 미사일 문제, 납치 문제 등 북한으로부터의 온갖 현실적 또는 가공적 위협이 우경화와 군사력 강화의 빌미가 되고 있으며, 아시아의 이웃들을 외면하고 미일동맹에 전적으로 매달리는 자해적(自害的) 노선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반도가 통일되더라도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앞세운 또 하나의 강국이 탄생할 경우, 설혹 통일 한반도가 자본주의 사회라 한들 일본사람들의 불안감을 덜어줄 수 있을까요? 물론 오늘의 수많은 일본인들이 북한과 북녘 사람들을 업신여기듯이 통일 한반도를 업신여기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민족주의를 강화하고 군사력을 팽창시키며 미국에 더욱 의존하려는 충동은 오히려 커질 수도 있습니다. 오로지 남북 민중의 실질적 접근으로 '어물어물' 진행되는 통일, 남북간의 경계선뿐 아니라 동북아 여러 나라 사이 국경선도 점차 밀폐성이 덜해지는 한반도의 변혁작업만이 일본을 믿음직한 아시아의 이웃으로 끌어내는 결정적 동력이 될 것입니다.

중국과의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중화주의 및 대국주의와 결합한 중국 민족주의의 범람을 우려합니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동번영은 결국 중국과 일본이 함께 나서지 않고는 불가능한데 양국은 오히려 대립의 날을 세워가는 양상입니다. 그나마 한국이 일정한 중재역할을 할 만한 처지이지만, 남북대결 상황에서 언제든지 구사할 수 있는 '북한 카드'의 위력 앞에서 한국의 교섭력과 중재능력은 무력화되기 일쑤입니다.

통일이 되면 '북한 카드'는 물론 사라지지요. 그러나 소수민족 문제 등 그 나름의 약점을 안고 있는 중국이 한반도에 강력한 단일형 국민국가가 출현했을 때 과연 넉넉하고 건강한 신흥대국의 몫을 해낼 여유를 얼마나 가질 수 있을까요? 그보다는 점진적인 분단체제 극복작업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더욱 많은 일깨움을 얻고 지역협력에 더 성의있게 임하게 될 것이 확실합니다.

우리의 통일과정이 일본과 중국에 대해 이 정도의 공헌만 하더라도 한반도가 새로운 인류문명의 전초기지로서 제 구실을 톡톡히 해낸 꼴이 될 것입니다. 물론 분단체제를 제대로 극복한 사회가 세계에 기여할 일은 이밖에도 많습니다만, 여기서는 여러분의 즐거운 상상에 맡기고 넘어가렵니다.

***'어깨에 힘 빼고 통일하자'**

앞서 통일의 개념을 바꿀 것을 제창했습니다만, 통일작업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와 사업방식도 이제 변해야 합니다. 이에 대해 몇가지 말씀을 드리는 것으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통일'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고 '한반도식 통일'이 어느 날 문득 실현될 수 있는 것임을 통찰하게 되면 6·15시대는 곧 한반도의 분단체제가 드디어 해체되는 시기이며 통일은 아득히 먼 일도 아니고 엄청나게 위협적인 사변도 아니라는 넉넉한 믿음이 생깁니다. 6·15 이전 시대와 달리, 많은 사람들이 기꺼운 마음으로 통일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투쟁이 불필요해진 상황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평범한 대중들이 각자 처한 삶의 마당에서 '어깨에 힘 빼고' 통일의 길에 나서는 일이 가능해지고 또 필요해졌다는 뜻이지요.

다른 한편, 통일이 당국자간의 합의보다 남북 사회의 실질적 접근과 동시적 변화에 좌우되는 상황은 수많은 개인의 짐을 그만큼 더 무겁게 만들기도 합니다. 먼저, 오랜 분단으로 왜곡된 삶 속에서 그것이 분단으로 왜곡된 삶이라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살아온 사람들이 망각의 타성을 깨고 밝은 눈과 맑은 마음을 찾는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소수의 극렬 반통일 세력뿐 아니라 '이 정도면 살 만해졌으니 그냥 이렇게 살지'라고 생각하며 분단체제에 안주하려는 상당수 사람들도, 분단체제를 허물기 위해 흘린 그 많은 땀과 피로 '이 정도 살 만'해진 현실에 무임승차하려는 마음가짐으로는 이 정도의 민주주의와 한반도 안정도 유지되기 어려움을 깨닫는 마음공부와 지식공부를 병행해야 합니다.

동시에 분단체제보다 나은 한반도 사회를 건설하려면 지금 이곳의 생활환경에서 보존할 것을 보존하고 개혁할 것을 개혁하는 일상적인 연구와 실행도 필수적입니다. 이런 바탕 위에서 남북의 교류와 통합 작업에 각자 힘 닿는 만큼 참여하는 민중대참여의 원칙이야말로 진정한 민족대단결을 구현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이런 식의 참여는 다시 각자의 일상적 수행과 사업의 새로운 계기가 될 것입니다.

어렵고 복잡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각자의 마음공부와 일상적 실천과 통일과업이 온통 하나가 되는 삶이야말로 얼마나 알찬 '흑자인생'이겠습니까. 제가 '어깨에 힘 빼고 통일하자'는 다소 경박하게 들릴 수 있는 표현을 내놓은 것도, 힘든 과업일수록 그 일머리를 알아서 즐겁게 해내자는 뜻입니다.

6·15시대 이 땅의 현실을 곰곰히 살펴보건대, 한반도식 통일은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매우 특이한 과정이며 바로 이 과정의 일차적 완성이 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성패는 얼마나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 사실을 깨닫고 기쁘고 편안한 마음으로 참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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