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부자가 높고 가난한 사람은 낮은 게 분명해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부자가 높고 가난한 사람은 낮은 게 분명해요"

<현장토론> 베트남 여대생들이 본 '한국'

베트남 호치민시에서 지난 26일부터 2박3일간 열린 '한국학 국제 심포지엄'에는 호치민 사회과학인문대 동방학부 한국학과 4학년에 재학중인 학생들이 행사 도우미로 나섰다.

그 가운데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하는 학생 4명과 만나 그들로부터 '한국어를 공부하는 이유', '한국과 베트남이 서로를 어떻게 보는지' 등의 화제를 놓고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색색의 아오야이(베트남 여성의 전통의상)를 갖춰입은 이들은 '베트남에 대한 첫 인상이 어떠냐', '한국남자들은 실제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다정다감하고 여자들은 참기만 하고 사냐'는 등 적극적인 질문과 함께 한국에 가봤던 경험,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과 한국인에 대한 인상을 거침없이 풀어놨다.

호 티 투이 융(20. 춘향), 응웬 응옥 뚜엔(21. 시내), 버수언 떠안 삑부(21. 은정), 응웬 투 타오(22. 선희)은 각각 수업시간에 쓰는 자신의 한국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의 경제발전에 관심, 한국기업에 취직하고 싶어"**

<사진 1><사진 2>

선생님에게 '강하고 아름다운 여자의 이름으로 지어달라'고 요청했더니 '춘향'이 됐다는 융은 한국학과에 입학한 계기를 묻자 "요즘 베트남에 한국기업들이 많이 들어와 있어 취직이 쉬울 것 같아 한국학과에 입학했다"며 "그런데 공부하다보니 다행히 재미가 있어 선택에 만족한다. 한국의 경제발전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고 당차게 말했다.

한국이름이 맑은 물소리가 연상되는 '시내'라고 소개한 뚜엔은 "그냥 한국문화에 대해 궁금했다. 한국이 베트남과 같은 유교문화권이라 비슷한 점도 많다보니 배울 때도 친근하고 재미있다. 중국문화가 베트남, 일본, 한국에 어떻게 다르게 영향을 미쳤는지도 고민해볼 생각"이란다.

<사진 3><사진 4>

'선희'를 한국이름으로 선택한 타오는 "화장품과 메이크업에 관심이 많다"며 "베트남에 있는 한국 화장품회사에 취직하고 싶다"고 졸업 후 계획을 이야기했고, '은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삑부도 "한국패션이 너무 매력적이다. 옷이나 모자를 만드는 한국회사에 취직할 것"이라고 소망을 말했다.

한국어를 배워서 안 좋은 점도 있을까?

시내가 "예전에는 영어를 잘 했는데, 한국어만 배우니깐 영어가 잘 안 되는 단점이 있다"고 말하자, 듣고 있던 친구들도 까르르 웃으며 동의를 표했다. 중국문화권의 영향으로 영어와 같은 <주어+동사+목적어> 어순을 가진 베트남어는 한국어와 어순도 다르고, 특히 동사의 어미 변화, 복잡한 존댓말 체계가 어렵다는 게 학생들의 한국어에 대한 중평이었다.

그러나 한글은 쉽게 쓸 수 있어 편하고 매력적이며(선희), 같은 한자문화권이라 단어의 한자만 알면 뜻이 통한다(시내)는 점은 장점으로 꼽혔다.

***"한국사람은 왜 그렇게 참고 살아요? 특히 여자들이…"**

댄스가수 그룹인 <동방신기>를 좋아하고,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하도 많이 봐서 이름을 일일이 기억 못한다는 이들은 '한국 드라마의 어떤 점이 재미있는지, 불만을 느끼거나 보면서 당황스러웠던 장면은 없는지' 물어보기가 무섭게 이구동성으로 '한국 드라마의 전형성'을 지적했다.

"한국사람은 왜 항상 그렇게 참아야 해요? 특히 여자들이 그러더라구요. 답답해죽겠어요. 맨날 울기만 하고…"라며 은정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까지 쉬자 시내가 말을 받았다.

<사진 5>

"전 믿을 수 없어요. 지겹죠. 주인공이 자꾸 죽고 암에 걸리니깐. 또, 꼭 중요한 순간에 기억상실증 걸리고! 한국 드라마는 1회하고 마지막회만 보면 돼요. 그 중간은 다 추측할 수 있어요. (하하) 그런데 한국 드라마가 연출은 정말 잘하는 것 같아요."

옹호론도 만만찮았다. 춘향이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대사들이 참 좋아요. 의미도 있고. 베트남에서는 어른들도 한국 드라마를 많이 좋아하죠. 가족관계에 대해서 많이 말하니깐"이라고 말하자, 선희는 "사랑에 대한 드라마뿐 아니라 '대장금'같은 드라마를 보면 요즘과 옛날의 한국사회가 어떻게 다른가 비교해볼 수 있어 좋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사진 6>

***"한국사람들은 언제나 '빨리빨리'…베트남인들과 잘 못 어울려"**

베트남 대학생들도 노래방에 가는 걸 좋아하고, 좋아하는 한국 노래도 많다고 환하게 말하던 이들은 그러나 베트남 한국기업들의 부정적 측면이나 베트남 사람들과의 갈등이 있냐고 묻자 "당연하다"고 잘라말했다.

은정은 "한국사람들은 항상 '빨리빨리'를 달고 산다. 베트남은 농경문화 전통이 남아 있어서 모든 일을 천천히 하는 경향이 있는데, 보통 한국인들은 성격이 너무 급해서 베트남의 느린 문화에 화를 내고 우리보고 게으르다고 욕한다"며 "문화의 차이인데 한국 사람은 너무 조급해서 베트남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요"라며 불편한 심정을 털어놨다.

그러자 춘향은 "어떤 회사에서는 한국인 관리자가 베트남인 직원을 벌 준다며 공장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무릎을 발로 차기도 한다"며 "한국은 사장이 윗사람이고 직원은 아랫사람이라서 막 대해도 되는 것 같은데, 베트남에서는 그렇지 않다. 사장도 잘못한 게 있으면 직원이 사장에게 말하기도 한다"고 맞장구쳤다.

<사진 7>

그러나 베트남인들과 한국인들은 점차 서로에게 맞춰가고 있었다. 예를 들면 한국인들도 베트남인처럼 낮잠 자는 습관을 가지게 된다든지, 베트남인들도 젊은이일수록 약속시간 엄수에 민감하다는 것이다.

요즘 한국의 거리에는 종종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라는 현수막이 붙기도 하다. '이에 관해 들어본 적 있냐'고 물어보자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학대받거나 문제가 생긴 케이스가 베트남 신문에도 종종 실린다"는 답이 돌아온다.

***"한국에선 부자가 높은 사람이고 가난한 사람이 낮은 게 확실해요"**

은정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진다. "그런 얘기를 신문에서 보면 기분이 안 좋아요. 한국 남자는 항상 베트남 여자를 나쁘게 대접해요. 한국말이나 문화에 대해 아무 것도 몰라도 이해해주지 않고 우리끼리 그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합니다. 인터넷에서도 자주 나오고…."

은정의 아는 언니는 서울의 한 공장에서 일한다. "한국에서 받는 월급이 베트남보다 훨씬 높지만 말도 안 통하고 정신적으로 힘들어해요. 한국에선 부자가 높은 사람이고 가난한 사람이 낮은 게 확실해요. 그게 어려워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진 8>

한국에 자랑하고 싶은 베트남 문화를 소개해달라는 부탁에 바로, 여성들의 전통의상인 아오야이, 호치민,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남인들의 활동상 등을 들었다.

시내는 얼마전 한국 문화관광부가 호치민대 학생 10명에게 주는 장학금을 받아 한국에 다녀 온 적이 있다. "국립박물관과 서울역사박물관에 갔었는데, 전시방식이 굉장히 아름답고 잘해놓아서 부러웠다"며 "우리 베트남에도 외국인들에게 보여줄 것들이 많은데, 적절한 방식이 개발되지 않아 못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내가 많이 배울 것"이라며 포부를 밝히기도.

이들은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그동안 호치민 대학에 와서 열심히 한국어를 가르쳐주신 코이카(KOICA, 한국국제협력단) 선생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심포지엄 중 너무 시간을 오래 비우면 선생님이 화내실 것"이라며 하늘하늘한 아오야이 자락을 휘날리며 총총 걸어갔다.

---호치민대의 한국어 강사 박스 인터뷰----------

***"한국어의 아름다움에 푹 빠졌어요" 호치민대 한국어 선생님**

호치민대학의 사회과학인문대 동방학부에서 한국어를 담당하는 하 타이 두 튜이 선생님. 현지인 한국어 강사 4명 중 2명이 현재 한국에 유학 중이라 2명이서 힘겹게 한 학년에 70명씩 280명(90% 이상이 여학생)에 이르는 베트남 학생들의 한국어 공부를 책임지고 있다.

1994년도에 호치민대 한국학과에 입학해서 2001년부터 모교에서 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한 그녀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한국말을 잘 하게 될 때마다 너무 보람있다"며 "일본학과 아이들보다 우리 아이들이 말을 훨씬 잘한다"며 자랑에 여념이 없다.

현지 한국어 강사의 월급은 한달에 120달러. 보통 한국기업의 관리직으로 취직하면 500달러는 너끈히 벌 수 있음에도 그녀가 학교를 지키는 또다른 이유는 다름아닌 '한국어에 대한 사랑'에 있다.

한국말은 감정표현도, 형용사도 표현이 너무 다양하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아름답다', '예쁘다', '이쁘장하다'의 차이, 그리고 '노랗다'. '샛노랗다', '누렇다'. '누르죽죽하다' 등의 차이를 베트남어로는 표현할 단어가 없어 그 느낌을 가르치기 힘들지만, 그런 다양성도 매력이고 재미란다.

<사진 9>

교사로서 느끼는 성취감도 보람이지만, 그녀의 희망은 한국으로 유학 가서 본격적으로 한국의 현대문학을 공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 놓고 가기에는 비용이 워낙 많이 들어 한국 정부의 지원이 없다면 엄두도 못내지만, 가게 돼도 교사가 턱없이 부족한 형편에 남겨둬야 하는 학생들이 걱정된다고 한다.

"현재 한국학과는 한 학년에 70여 명으로 한 반 학생이 35명씩 돼요. 외국어 강좌로는 너무 과밀하죠. 학생들의 열의에 수업환경이 못 따르니 너무 안타까워요."

그럼에도 튜이 선생님은 한국문화에 대해 더 공부하고 아름다운 말로 이뤄진 한국문학을 베트남어로 번역하겠다는 꿈을 놓을 수 없다. "지금 베트남에는 한국문학의 번역이 거의 안 돼 있어요. 참 안타깝죠. 그 일을 앞으로 제가 하고 싶어요."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