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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버린 제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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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버린 제우스"

김민웅의 세상읽기 <122>

그리스신화의 제우스는 로마신화에서는 주피터가 됩니다. 그러나 이름만 달라질 뿐이지 신화의 내용은 그대로 전승되며, 등장하는 신들의 역할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제우스는 시간의 신인 크로노스의 자식으로서, 자기 자식들이 자신의 권좌를 노릴 것을 두려워한 크로노스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후 세상을 평정하고 벼락의 힘을 지닌 신으로 등극합니다.

제우스는 세상의 권세를 장악하기 위해 자신의 형제인 하데스 및 포세이돈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이들은 아버지에 대한 반역의 거사를 이룬 후 지하의 세계와 물 또는 바다의 권력을 나누어 갖게 됩니다. 제우스가 천하를 호령하는 신이기는 했지만, 땅 속과 바다에 대한 권력은 하데스와 포세이돈에게 넘겨주어야 했습니다.

이들이 시간의 신인 아버지 크로노스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했다는 대목은 이들의 권세가 세월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 영원한 것임을 상징합니다. 어떤 권력이라도 크로노스의 세계를 넘어서서 자신의 영구적인 성채를 짓고 싶을 것입니다. 제우스가 살고 있던 올림포스 신전은 바로 그러한 성채의 전능한 위력을 드러내는 자리였을 것입니다.

불의 신 제우스는 사실 고대문명 전반에 걸쳐 숭배되던 태양신의 변형이기도 하며, 불을 토대로 한 철기문명의 주도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고대에는 전쟁의 주도권이 화력을 장악한 자에게 돌아갔던 사연이 이 신화에 그대로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인류의 전쟁사는 화력의 지배와 관련된 역사와 다를 바가 없을 정도입니다.

제우스는 바로 이러한 힘을 가지고 최종 심판자로서의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염문을 뿌리기도 했습니다. 이는 아마도 영웅적 위상에 대한 선망과 미인에 대한 탐욕을 동시에 갖고 있었던 고대 권력자들의 내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스나 로마제국 자체도 그런 제우스의 영광을 누리고자 했을 것입니다.

어찌 보면 제우스는 그리스나 로마에 그치지 않고 신적 위상을 가지고 싶어 한 역사상의 모든 국가를 상징적으로 의인화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올림포스 신전은 현실에서 신화의 대리석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 강대한 군사력으로 건설된 권력의 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945년은 미국이 전 세계의 제우스로 등극한 해였습니다. 이 해에 미국의 손에 벼락을 치는 권세가 쥐어졌기 때문입니다.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무기는 그 벼락의 현대적 명칭이었습니다. 미국은 순간 온 세계의 하늘을 지배하는 올림포스 신전이 되었고, 그때까지 역사를 지배해 왔던 유럽이라는 크로노스는 늙고 기력이 없었기에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현실에서 벼락이 언제나 제우스의 손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신으로부터 불을 훔치는 프로메테우스는 신화에도 현실에도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점에서 역사는 엄중합니다. 제우스의 독점체제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신으로부터 훔친 불이 온 인류를 위해 평화롭게 사용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이번 6자회담의 성과가 벼락으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자들의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신화를 쓰는 시작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우스가 제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그 자신이 시간 또는 역사의 신인 크로노스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은 결코 달라질 수 없습니다. 신화에서 역사의 신이 때로는 패배하여 유배되기도 하지만, 그 역사의 신을 그의 어떤 자식도 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살부(殺父)의 죄를 짓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센타'(오후 4-6시/FM 104.5, www.ebs.co.kr )의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에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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