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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결국 패배자가 되고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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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결국 패배자가 되고 말까?"

김민웅의 세상읽기 <121>

페르시아 제국의 전설적 대군주 다리우스로부터 그의 손자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왕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의 중근동 지역과 지중해에는 거대한 제국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계승자 페르시아는 동으로는 인더스 강에, 서로는 이집트를 비롯하여 에게 해 연안의 그리스 도시국가에까지 이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왕 다리우스는 당시의 천하를 두렵게 했던 이름이었습니다.

기원전 520년경으로부터 448년에 걸쳐 페르시아와 그리스 도시 국가들 간의 쟁투는 치열했고, 마침내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델로스 연맹은 페르시아 제국과 전투를 끝내는 협정을 맺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얻은 평화도 잠시, 동시대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기록했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증언하다시피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과거의 동맹관계에서 적대관계로 돌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를 태어나게 한 모태 에게 해는 그만 피의 바다가 됩니다.

아무튼 그로부터 약 100년이 지난 기원전 333년경 마케도니아 평원에서 말을 달리고 있던 알렉산더의 출현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기력을 자초해서 소진해버리고 말았던 그리스 세계의 재기(再起)였고, 페르시아 제국의 몰락을 의미했습니다. 델로스 동맹의 한이 풀리는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동서의 새로운 문명적 융합이 가능해지는 거대한 통로가 열리는 시작이기도 했었습니다.

이는 단지 영토확장을 목표로 하는 군사적 제국의 건설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교류와 결합을 바탕으로 인류사의 역사를 다시 시작해보겠다는 문명사적 프로젝트의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2000년이 지난 훗날,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의 기세를 몰아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 대륙 전체를 석권하고 이집트까지 진격하면서 이른바 동방원정을 완결 지으려 했던 야망은 이미 알렉산더에게서 그 싹을 보이고 있었던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국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를 놓고 겨루던 이 일련의 광활한 전쟁의 역사는 바로 이 에게 해를 중심으로 동과 서가 교대로 서로를 반격하면서 그 주도권을 주거니 받거니 했던 것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쪽의 주도권이 다리우스로부터 시작해서 징기스칸, 오스만 제국에 이르는 계보를 기록하고 있다면, 서쪽의 주도권은 알렉산더를 기점으로 하여 나폴레옹을 거친 후 19세기 서구 열강 제국의 오스만 제국 분할로 이어진 셈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야만과 문명은 서로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뒤섞여 나가게 됩니다. 나중 된 자 먼저 되고, 먼저 된 자 나중 되는 식으로 한번 잡은 주도권이 계속해서 유지되는 법이 없었습니다. 끊임없는 문명사의 주도권 교체 드라마가 펼쳐졌던 것입니다. 19세기 근대 서구가 아랍세계의 낙후함을 비웃었지만, 고대의 현실로 돌아가면 정작 야만의 처지에 있었던 것은 오늘날의 서구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도리어 그 문명의 젖줄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땅에서 비롯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 문명의 시원(始原)인 메소포타미아의 현실은 지금 전란(戰亂)에 여전히 휩싸인 채 야만으로의 후퇴를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이라크는 다리우스 제왕의 페르시아 그 후예로서의 모든 위엄을 잃어버린 채, 파멸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이전 시대가 보여주었던 문명사적 융합이나 그와 유사한 성취를 목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만 문명의 파괴가 이어지고 있을 따름입니다.

세월이 장구하게 흘러, 역사가 헤로도투스나 투키디데스가 다시 등장한다면,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아메리카 제국의 페르시아 정복과 지배의 역사를 과연 어떻게 기록할까요. 그 어떤 위대한 문명의 통로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제국의 야욕만 드러내고 있는 이 전쟁의 참담함 앞에서 정작 누가 패배자로 기록될 것인지 아마도 엄중하게 묻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전쟁에 온갖 구차한 이유를 구차하게 붙여 가담한 이 나라와, 그 지도자에 대해서는 또 뭐라고 기록하게 될까요? 그리고 반전(反戰)을 '명분론'쯤으로 여기고 있는 대통령의 역사인식은 어디에서 멈추게 될까요?

*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센타'(오후 4-6시/FM 104.5, www.ebs.co.kr )의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에 연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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