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6자회담이 속개됐다. 6주 만에 다시 열린 회담이지만 이번에 과연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아직 비관도 낙관도 이르다. 우선 '2단계 4차 회담'이라는 기상천외한 명칭을 만들어내면서 회담을 다시 개최한 것 자체가 희망을 갖게 한다.
13일 동안 계속된 1단계 4차 회담이 산 정상을 코앞에 두고 8부 능선에서 멈춰야 했다면, 회담 결렬을 선언하고 서둘러 돌아가는 게 정상이었다. 그러나 4차 회담이 종결된 게 아님을 강조하면서 휴회라는 우회로를 택한 것 자체가 성과 도출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미간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북미 양국이 휴회기간 동안 수 차례의 장외 접촉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쟁점과 관련해 타협점을 찾기보다는 각자의 입장을 전달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남북 채널을 활용하고 한미 공조를 동원해 북미간 의견 조율에 나섰지만 아직은 낙관적인 전망을 하기 힘든 상황이다.
문제 해결의 관건인 평화적 핵이용이라는 북미간 쟁점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북미 양측의 주장 모두 나름의 일리가 있다. 주권국가의 일반적 권리로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반드시 허용해야 한다는 북한의 주장은 액면상으로 맞는 말이다. 1차 북핵위기 당시 북한은 미국과 협상을 벌여 경수로를 제공받기로 했고 이는 곧 평화적 핵이용을 전제한 것이다. 당연히 NPT에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도, 그리고 1994년의 북미 제네바 합의에도 평화적 핵이용 권한은 명시되어 있었다. 향후 예상되는 에너지 수요에 대비하여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북한의 절박함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 미국의 주장도 충분히 수긍할 만한 대목이 있다. 1차 핵위기 당시 미국을 위협했던 북한의 벼랑끝 전술은 바로 민수용이라는 영변 원자로에서 폐연료봉을 꺼내 재처리를 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2차 핵위기에서도 북한은 평화적 목적이라던 원자로를 재가동한 후 재처리 완료를 통해 핵억제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용도변경했다고 으름장을 놓고 심지어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큰소리 치고 있다. 당연히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 권한은 사실상 핵무기 개발을 통해 대미 협박의 근거가 되고 있음을 미국이 확신할 만도 하다.
이처럼 팽팽한 북미간 평행선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담에서 양국은 반드시 합의 도출에 성공해야 한다. 결렬되고 만다면 한반도는 급격히 긴장국면으로 빠져들 것이다. 파국을 피하기 위해 북한과 미국은 한 걸음 양보해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시제의 분리를 통해 평화적 핵이용의 난관을 건너는 방법이다.
즉 현재의 시제에서 북한은 평화적 핵이용을 주장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그간 북한이 평화적 핵이용의 진정성을 국제사회에 입증하지 못한 업보다. 따라서 북한은 핵폐기 범위에 당연히 영변 원자로를 포함해 모든 핵관련 시설을 받아 들여야 한다. 이미 1994년 제네바 합의에서도 북한은 영변의 핵관련 시설을 해체하기로 약속했고 지난 해 3차 회담에서도 핵동결의 대상에 영변 원자로를 포함시킨 바 있다.
그러나 미래의 시제에서 미국은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 권리를 인정해 줘야 한다. 지금은 아니지만 북한이 핵폐기를 완료하고 사찰과 검증을 거쳐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게 된다면 그 시점에도 미국이 북한의 평화적 핵이용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전과자도 갱생하면 당연히 사회가 안아야 한다. 이를 그대로 적용하면 경수로 문제 역시 현재 시제에서 신포의 경수로는 미국의 반대와 한국의 중대제안을 감안, 북한이 포기해야 하되 미래 시제에서는 응당 일반적 의미의 경수로, 즉 신포 경수로가 아닌 경수로를 지을 권한이 북한에게 있음을 미국도 인정해야 한다.
1단계 회담에서는 한국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돋보였다. 지금 베이징의 핵회담과 평양의 남북 회담이 동시에 열리고 있는 점은 또 다시 한국 정부가 북미간 합의 도출에 의미 있는 촉진자 역할을 할 수 있는 호조건이 되고 있다. 베이징 회담이 막히면 평양에서 한국이 북한을 설득하고 평양회담이 진전을 가져오면 그것으로 베이징 분위기를 측면 지원하는 선순환의 이중회담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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