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를 세 차례나 치르는 진통 끝에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뤄내 구 소련권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우크라이나 '오렌지혁명'이 표류하고 있다.
혁명 주도세력 내부의 암투와 부정부패, 그에 따른 혁명 주역들의 사퇴, 경제난, 러시아와의 갈등이 복합적으로 그 이유다.
***유셴코 대통령 "총리는 인기에만 연연"**
빅토르 유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8일 이같은 총체적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혁명동지'인 율리야 티모셴코 총리 내각을 해산하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유셴코 대통령은 "혁명 동지들이 서로 힘을 합쳐 일해보려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오렌지혁명 당시 인기를 한몸에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여걸' 티모셴코 총리는 취임 7개월만에 불명예스런 퇴진을 맞았다.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보안부장과 페트로 포로셴코 국가안보회의 서기도 이날 자진 사퇴했다.
이에 앞서 알렉산드르 진첸코 대통령 행정실장은 고위 관리들의 부패와 반(反)혁명 분위기를 경고하며 지난 3일 사임했고 토멘코 부총리도 같은 이유로 8일 사표를 던져 오렌지혁명의 주역들이 대부분 물러나게 됐다.
유셴코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내각과 안보회의, 대통령 비서실, 의회 사이의 갈등을 가라앉히기 위해 애썼다"며 "그러나 그들은 내가 보내준 신뢰를 저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집권 1등 공신으로 꼽혔던 티모셴코 총리에 대해 "정치적 인기에 영합해 개인 홍보에만 열을 올렸다"고 비난했다.
그는 또 보안부에 고위 관료들의 부패와 직원 남용 등에 대한 조사를 지시했다. 의회도 포로셴코 서기, 세르게이 테레힌 경제장관, 빅토르 토폴로프 광업장관의 의원직 박탈 결의안을 통과시켜 이들의 유죄가 입증될 경우 의원 면책특권을 누릴 수 없게 됐다.
***암투, 부패, 경제난, 외교정책…**
<AFP> 통신은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좌초가 티모셴코 총리와 포로셴코 서기 간의 끊임없는 갈등과 권력다툼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오렌지혁명으로 집권한 이들이 주도권 다툼을 벌여 잡음이 끊이지 않아 유셴코 대통령이 혁명의 퇴색을 막기 위해 내각 해산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렸다는 것이다.
올리가르키(과두재벌) 출신인 두 사람은 각종 부패 의혹에 연루돼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고 있었다.
포로셴코 서기는 중동 유럽 부호 95위의 재력가로 뇌물을 받고 권력기관을 동원해 경쟁 기업들을 압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진첸코 전 행정실장은 포로셴코를 비롯한 공직자들이 직위를 이용한 부패를 저질렀다고 폭로한 바 있다. 포로셴코는 정치적 야심이 많은 티모셴코 총리를 견제하기 위해 대통령이 기용한 인물이었다.
유셴코 대통령이 지나친 친서방 정책을 펴 과거 동맹이던 러시아와 갈등을 빚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는 유셴코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고 전통적으로 서유럽 국가와 친밀감을 보였던 드네프르 강 서안 출신이라는 데서 비롯됐다. 오렌지혁명 당시 유셴코 후보는 러시아어를 쓰는 드네프르 강 동안 출신 야누코비치 총리의 선거 부정을 규탄하며 재선거를 이끌어내 당선됐다.
혁명세력 집권 후 악화된 경제난도 유셴코 대통령의 정치적 장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대통령의 처방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여전히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티모셴코 총리와 내년 총선에서 경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집권당인 '우리 우크라이나'는 정국 혼란의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인데다 티모셴코 총리 세력에 의한 분당의 위기에도 놓여 있다.
2003년 그루지아의 '장미혁명'과 함께 구소련 지역의 민주화와 친서방화를 상징했던 오렌지혁명은 혁명 당시 혁명세력의 단결과 성공 후의 국정 운영이 별개의 문제임을 웅변하며 빛이 바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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